#1
학교 폭력 문제가 교육계의 관심을 넘어 대중에까지 확대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대구 학생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대중의 관심에 더해 평소 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폭력의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고 공언했고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이주호 현 교육부 장관이 학교 폭력 처벌 시스템을 만들고 학생부에 처벌 사실을 기재하도록 했다. 형법적 엄벌주의가 강하게 도입된 것이었다.
이런 조치가 효과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 폭력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켰고, 이런 주의 환기가 전반적으로 학교 안에서 약자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뿌리뽑아버리겠다는' 그 공언이 실현되지 않았음은, 이번 정순신 아들의 학폭 문제에 대한 '폭력을 뿌리뽑겠다는' 재공언을 통해 알 수 있다.
#2
정순신과 아들이 선택했던 학폭 소송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육계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학폭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처벌을 감수할 것이라는 감상적 이타주의는 학교 현장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 벌이 엄해질 수록 법을 따져 벗어나려는 의지는 강해지고 법이 도덕의 최대한이 되는 순간,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이혼소송, 자동차 충돌 사건, 폭행 및 명예 훼손 등 성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어이 지지 않고자 하는)그 다툼의 방식이 학교에서는 다르리라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학폭 문제 해결에법의 영역을 끌여들여 도덕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다소 모순적이다.
#3
이명박 정부 시절 학폭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거보다 폭력이 더 심각해진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시절도 그 학폭문제에서 자유로운 루소적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다. 만연한 정도로 보자면 훨씬 폭력의 정도가 많았다. 운동장을 독차지 하는 선배들의 폭력, 퉁이라 일컫는 친구들의 언어폭력과 금전적 갈취를 경험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도로 보자면 어떨까? 도심 슬럼가 중학교의 경험을 짚어보면 그 강도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질문을 2023년 엄벌과 법치주의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현정부에 똑같이 던져보게 된다.
폭력을 당연히 여기자는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그때 폭력에 못이겼던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폭력을 엄벌하겠다는 정의의 실현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그런 일들을 저지르는 학생들을 엄벌하는 것은 통쾌한 일이다. 하지만 실현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다른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은 법세계와는 다른 생활세계의 파괴이다.
엄벌주의가 학교 안에 깊숙히 들어올 수록, 진정한 사과에 기반한 관계의 회복은 요원해지고, 문화적으로 조정되고 통합되어야 할 것들은 힘을 잃고 만다.
#4
'내면 소통'의 저자는 학교 폭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엄벌에 처한다'라는 규정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아이들의 뇌의 전전두피질(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관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가도 엄한 처벌 규정을 떠올리며 '처벌'이 가져올 고통을 '예측'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기로 '의사결정'한 다음, 그러한 의사결정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전전두피질의 신경망이 잘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모든 처벌 규정은 뇌의 전전두피질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뇌에서는 그러한 처벌 규정에 반응하기 위한 전전두피질 활성화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편도체(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유발하고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중심 축)가 이끄는 대로 감정의 폭발에 따라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김주환, 내면소통, p 53).
#5
'학교 폭력'의 방점을 '학교'에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의 근대적 학교시스템은 그 기간이 길지 않다. 학교의 어원인 스콜레는 한가하게 걷는다는 뜻이었으며, 교육의 어원인 페이다고고스도 교육노예가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한다는 뜻이다. 공장과 같이 학생들을 한 장소에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시간을 구획하고 통제를 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발달단계에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공교육이 졸업장이라는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학생들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학교 폭려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는 학교를 벗어나 대안적 교육을 선택하기 쉽지 않고 학교 안에서는 죽도록 괴로운 딜레마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물론 성인도 쉽지 않지만)성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직장을 옮기는 것 같은 대안적 모색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대안적 모색을 하기 어려운 두 곳은 바로 학교와 군대이고 가혹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곳이기도 하다.
#6
현 정부가 '학교 폭력 근절'의 포부를 밝혔다. 공교롭게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정권에 동일한 장관이다. 이런 정책은 인기가 있다. 정의의 실현이라는 국민 감정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기획은 결국 실패할 기획이 될 것이라 본다. 심리, 조직, 법의 효용과 한계, 학교 공동체 문화의 재건 등 간학문적 숙고를 통한 대책이 아니고 정치적 분위기에 편승한 스테레오 타입의 대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