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이 보고 싶다
소라가 죽던 날 아침, 현우는 소라의 집에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은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소라가 다짐하듯이 말했다. 괜찮으니 가보라는 말에 현우는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소라가 죽었다.
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가끔은 웃고, 잠을 자는 자신을 증오했다. 위선적인 얼굴을 검게 뒤덮고 싶었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평생토록 수염을 길러 자신의 완전히 묻혀버리고 싶었다. 윤주는 그런 현우를 강제로 일으켰다. 옷을 벗기고, 욕실에 넣었다.
인간의 마음이 어찌나 간사하던지.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몸이 늘어지고, 정신이 아둔해졌다. 그리고 살고 싶어졌다. 그날 오랜만에 소라가 찾아오지 않았다. 현우는 늦게까지 틀어놓은 TV의 볼륨이 멀어져가는 걸 느끼며 까무룩 잠들었다.
윤주는 현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집에 들었고, 그녀가 있으면 안도감이 들었다. 집에 윤주가 있다고 생각하면 소라의 모습도 견딜만했다. 그런데 성범이 나타난 거다. 성범을 본 이후로 그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잠이 들면 고요한 방안에 연필이 쓱싹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보이는 건 소라의 뒤통수뿐인데도 얼굴에 담긴 고통이 훤히 보여서, 안쓰러워서, 벗어나고 싶어서, 망연자실한 소라의 눈동자가, 뭉그러진 시선이, 그 끝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여서 고통스러웠다. 그가 물었다. 김현우, 너는 나와 다르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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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 또 왔어?”
이른 오후. 가게를 찾은 성범을 보며 정양의 남편이 볼멘소리했다. 마침 짬뽕 그릇을 들고 호실 안으로 들어온 정양이 곱빼기로 시킨 그릇을 성범의 앞에 놓았다. 그 모습이 고까운 듯이 정양의 남편이 성범이 분지른 젓가락을 빼앗아 갔다.
“왜 남의 젓가락은 뺏어!”
정양이 다시 젓가락을 놓아주며 소리를 빽 질렀다. 부부가 지겹게도 말씨름을 하는 동안에 성범은 제 앞에 놓인 그릇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입맛도 없었고, 무엇보다 빨간 국물만 보아도 술 생각이 간절히 났다.
“먹어. 그래야 힘내서 뭐든 하지.”
정양이 성범의 손에 젓가락을 억지로 쥐여주자, 그녀의 남편이 콧방귀를 끼었다.
“제 남편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웃기고 있네. 넌 나 마누라로 생각이나 하냐?"
눈을 부라리는 그녀의 말에 정양의 남편이 조용히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성범이 그런 정양을 가만히 응시했다. 소라의 엄마도 정양처럼 늙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둥서방이라도 얻어서 제구실하며 살기를. 성범은 겁이 났다. 소라의 엄마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이나 망가져 있을까 봐서.
“나 그냥 소라 장례 치를까?”
“짜증 나네. 정말.”
정양이 단무지 그릇을 팍, 하고 내던지듯 내려놓는 바람에 두 남자가 깜짝 놀랐다. 짜증스러운 그 눈빛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성범 또한 알고 있었다. 엄마가 딸을 버렸다고 해도, 딸은 엄마를 버릴 수 없다고. 자신이 없던 시간 동안 소라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러니 애도할 시간도 없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다면, 딸이 정말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쉰 소리 말고 먹어. 먹고 가서 찾아.”
어느새 정양의 단호한 목소리가 지표가 되었다. 힘주어 젓가락을 쥔 성범이 한입 가득 면발을 밀어 넣었다. 입안에서 씹고 있는 게 면인지, 고무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성범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 면발을 삼키며 소라의 목소리를 상기했다. 만날 때마다 들렸던 들뜬 음성을.
“길고양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키우잖아? 그럼 뇌가 작아진대. 이 신경세포가 작아져서 생각을 멈추게 하는 거지. 생각을 멈추게 되면 뭐냐, 의지가 없어지잖아? 그때부터 길드는 거야.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양의 남편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듣기를 바라며 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성범은 소라가 생각났다. 그래서였을까. 잔뜩 쪼그라든 소라의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래서 그 애는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 걸까. 성범은 울컥 욕지기가 들었다. 밖으로 뛰쳐나간 그가 화장실을 찾았다. 어딘가로 비워지고 싶었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다가 보면 죄가 씻기지 않을까.
성범은 화장실 벽에 기대어 앉아 한참이나 울음을 쏟아냈다. 현우를 만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궁창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날, 현우는 성범에게 소라와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그래. 쏟아냈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분과 후회와 상실이 섞여있었으니까.
다만, 자신은 정신병동으로 택배를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성범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고민 끝에 성범은 현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러모로 홀로 끝을 볼 자신이 없었다. 딸 아이의 친구인 그 어린 남자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면대 앞에 선 성범이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거울을 보니 얼굴이 꽤 수척해져 있었다. 세수하고, 대충 입가를 닦으며 바깥으로 나간 그를 맞이한 건 정양의 아이였다.
“아저씨!”
성범을 알아본 아이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순간, 성범은 아이가 소라로 보였다. 우리 소라도 어렸을 땐 저렇게 싱그러웠는데. 제 아빠보다 성범을 더 좋아한다며 정양이 농담조로 말했다. 주머니를 뒤진 성범이 아껴두었던 현금을 꺼내며 정양의 아이에게 건넸다. 언제든 만나면 주려고 가지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나도 줄 거 있어요!”
두 손 모아서 공손히 인사를 남긴 정양의 아이가 여태껏 손에 쥐고 있던 흰색 봉투를 내밀었다. 아저씨에게 편지라도 쓴 거냐며 즐거운 얼굴로 받아들던 성범의 얼굴이 단박에 굳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곱씹고, 또 곱씹던 그놈의 글씨체였다.
“뭔데? 뭐라고 썼어?”
“내가 쓴 거 아니고 누가 전해달라고 해서.”
“누가?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 손 안 놔?”
대화를 주고받던 모자(母子)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성범이 아이의 어깨를 꽉 쥐었다. 겁먹은 아이가 아저씨 아파요, 하며 몸을 비틀었다. 정양의 높아진 언성에도 성범은 얼굴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눈동자에서 분노가 지글지글 끓었다.
“이거 누가 줬어?”
“몰라요. 그냥 어떤 사람이 줬어요.”
“그러니까 누가! 어떻게 생겼는데?”
“선글라스 끼고 빨간 코트 입은 아줌마가….”
“어디서?”
“가게 앞에서요.”
정양의 외침을 뒤로 하고 성범이 가게에서 뛰쳐나갔다. 휑한 골목을 걷는 사람이라고는 폐지를 줍는 노인이 전부였다. 오로지 빨간 코트만을 생각하며 성범이 길가를 뛰었다. 골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한참을 찾던 성범의 눈에 빨간 코트의 끝자락이 보였다.
전봇대를 끼고 안쪽으로 사라진 그녀를 따라서 성범은 죽어라 달렸다.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마을의 꼭대기까지 섰을 때. 후미진 골목에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3층짜리 연립주택이 보였다. 성범이 지저분하게 쌓인 쓰레기봉투를 넘어 공동 현관으로 향했다.
오른편 문짝에는 광고 전단뿐만 아니라 여러 장의 경고문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고정문, 고정문, 고정문.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가 어지러울 정도로 적혀있었다. 건물에는 물비린내가 진동했다. 계단이 젖어있는 걸 보아하니 청소를 마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성범은 계단의 위층과 아래층을 번갈아 보았다.
왠지 이곳에 소라의 엄마가 살고 있을 거 같았다. 그가 지하층부터 3층까지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계세요, 하는 물음에 반응하는 집은 아무 곳도 없었다. 결국에 포기한 채로 나가려는데 지하층에서 기척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숙인 성범이 지하층을 주시했다.
문이 열리고, 쓰레기봉투를 든 여자가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엄마야!”
무심결에 고개를 든 여자가 놀라자빠졌다. 반 계단 위에서 아래를 응시하던 성범이 얼른 정색을 풀며 계단을 내려왔다.
“놀랐잖아요! 아저씨 뭐하고 섰어요?”
“혹시 빨간 코트 입은 여자 못 봤어요? 이쪽으로 갔는데.”
“몰라요!”
기분 나쁜 기색으로 쓰레기봉투를 주운 여자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문득 걸음을 멈춰서 뒤돌아 성범에게 말했다.
“빨간 코트? 그 정신 나간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