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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미르 Dec 09. 2023

THE  GREAT STORY (2)

-동북, 곰과 인간의 땅 




(사진출처: 구글지도) 


압록강을 건너 북으로 가 보자.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는 곳, 아무르강 유역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장 동시베리아가 이어진다. 이곳의 추위는 한 마디로 ‘미쳤다’. 영하 30,40도는 물론 때로 70도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있다. 그래서 시장 상인들은 냉장고 없이도 생선과 고기를 쌓아놓고 팔 수 있고 주민들은 얼음처럼 딱딱해진 육류의 살을 칼로 저며 먹는다. 지금은 짧은 여름기간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채소를 먹을 수도 있지만 예전엔 어림도 없는 소리. 이곳에서 오랜 기간 살았던 이들은 육류 위주의 식생활 때문에 병도 많고 수명도 짧았다고 한다. 추위에 익숙한 가축들마저 한파가 몰아칠 때는 허다히 얼어죽다는 곳. 만주, 아무르 강 일대, 그리고 동시베리아는 ‘퉁구스’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오래전에 터전을 잡아온 ‘고아시아족’ 에벤인들은 순록에 의지하고 어로와 수렵을 병행하며 전설적인 동물들과 함께 살아왔다. 지금은 거의 주변의 도시로 흩어지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정체성도 모호해졌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 전 그들의 모습, 그들의 생각과 삶을 전해주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벤족의 한 여자가 땔감을 구하러 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었다. 광대한 겨울의  타이가는 여자의 모든 발자국을 눈으로 덮고 바람으로 지웠다. 살을 베는 것 같은 추위 속에 헤매이던 그녀는 눈보라에 갇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몸통만 남아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의 밑둥은 집 하나도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넓었고 몸통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마을의 노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큰 나무 둥치 밑의 동굴엔  숲의 주인이 산다. 겨울엔 거기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숲의 주인은 동물의 몸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신비한 귀를 가져 인간이 오는 소리는 물론 마음으로 하는 말도 다 들을  수 있다. 숲의 주인을 만나러 갈 때는 온 마음의 진실을 다해야 한다. 거짓을 말하면 금방 알기 때문이다. 그에겐 신령한 영혼이 있으며 지혜가 있다. 


처녀는 남은 힘을 다해 나무 위로 기어 올랐다. 숲의 주인이 나무 속에서 내뿜는 입김으로 나무 입구는 하얗게 얼어 있었다. 그녀가 나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숲의 주인은 곰의 모습을 하고 처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의 앞발을 빨아라. 처녀는 그의 말에 따라 복종을 표시하고 그의 품으로 기어들어갔다. 


처녀가 겨울이 다 가도록 돌아오지 않자, 마을에서는 그녀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해 그녀의 집을 치우고 물건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뜻한 봄이 되고 땅의 표면이 녹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알고 싶어했으나 여자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의 가장 외곽에 홀로 오두막을 짓고 가끔 찾아오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출산을 기다렸다. 여자는 곰과 살았던 과거도 잊고 싶어 아무에게도 곰과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곰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으며 심지어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었지만 모두 잊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 두 명 중 하나는 인간의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곰의 모습이었다. 마을이 술렁거렸다 그녀는 인간의 아이만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 살았고 그녀의 부모가 새끼 곰을 키웠다. 곰 아들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집을 나가 숲으로 갔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아이, 영리하고 용감한 토르카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다.  


토르가니는 장성하여 숲으로 형제를 찾으러 가서 만나자마자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자 곰이 말했다. ‘인간의 형제여, 네가 나를 미워하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네 도전을 받아들이마.’ 그러자 토르카니가 말했다. ‘숲의 주인인 나의 형제여. 너는 커다란 발톱과 날카로운 이를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너는 그랬고 힘도 세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니 너의 힘을 다하진 말아다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곰이 말했다. ‘좋다. 네 말이 그럴듯하다.’


곰은 한 번에 토르카니를 죽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 틈을 타 토르카니는 미리 준비한 날카로운 돌맹이로 곰의 가슴을 찍었다. 그래야만 곰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마을 어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곰은 쓰러지며 말했다. ‘부탁한다, 인간의 형제여. 나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다오. 모든 마을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남김없이 먹어 내 영혼이 인간의 몸속에 자리잡게 하라. 나의 두개골과 뼈는 수습하여 가장 현명한 자의 집 안 높은 곳에 올려두어라. 나의 두 눈은 빼어 마을 입구의 나무 위에 걸어 두어라. 나의 앞발을 잘라 마을 가운데 있는 나무 밑에 놓아라. 그렇게 나를 보내주면 내가 내 곰 형제들에게 말하겠다. 너희는 인간에게 더 많이, 더 자주 가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도 그들이 성대한 장례를 치러 영혼을 다시 하늘로 보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겠다.’ 


토르카니는 곰의 말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도 에벤족은 곰사냥이 끝나면 토르카니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지키며 곰의 영혼을 달래준다. 그러나 여자들은 곰의 고기 중 가장 좋은 것은 먹지 못한다. 



에벤인의 분포지역. 시베리아의 극동북지역에 주로 살고 있다. 진녹색은 현재의 사하공화국으로 야쿠트 족이 주로 거주하고 있고 에벤인들은 사하공화국과 그 근처의 오츠크해와 아무르강 부근 넓게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약 2만여명. (출처: 위키피디아)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단군 신화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단 곰이 인간화 된다는 점, 그리고 곰과 천신(환웅)의 결합에 의한 반인반신반수라는 복잡한 존재 단군과 반수반인인 에벤의 형제들. 무언가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단군이 고조선이라는 국가까지 세우는 성공한 존재인 반면 에벤의 형제들은 살육전 끝에 인간이 승리하며 의례를 남기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서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지. 인간과 동물의 직접적 결합,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형제 살해는 물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까지 ‘이거 뭐야’하는 생각이 드는 요소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에벤의 전통복장을 한 여성들. 20세기 초의 사진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다음, 오로치족의 이야기도 한 번 살펴보자. 현재 퉁구스계열의 부족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살아남은 이들 오로치족은 아무르강 유역과 사할린 일부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 역시 곰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오로치족의 어느 마을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남동생은 누나와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누나는 원치 않았다. 그러나 동생의 고집을 꺽지 못할 것을 알자 몰래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누나는 숲에 들어가 곰과 살며 새끼 곰을 두 마리나 낳았다. 허나 누이를 포기하지 않은 남동생이 숲을 뒤져 누나가 있는 곳을 찾아 냈고 매형, 조카인 곰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어느 날, 남동생과 매형 곰은 숲으로 사냥을 떠났다. 먹을 거리가 떨어지는 계절, 멀리까지 위험한 사냥을 나간 매형과 처남. 남동생은 사냥 도중 실수로 매형을 죽인다. 

누나는 남편 곰의 죽음 후 새끼들을 데리고 더 깊은 숲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숲으로 떠나기 전 누이는 말했다. 숲에서 곰을 만나 불가피하게 사냥하더라도 결코 암곰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동생은 누나의 부탁을 어기고 어느날 커다란 암곰 한 마리를 사냥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암곰의 배를 가르자 곰에게서 누나가 차고 다니던 가슴 가리개와 목걸이가 나왔고 동생은 그 암곰이 누이의 변신한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 

동생은 누이를 성대하게 장례 지내고 남은 새끼 곰 둘을 키우며 살아가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새끼 곰들이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끼 곰들은 빈집에서 아궁이를 뒤지며 놀다가 불의 정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오로치족 사람들은 곰에 대한 수많은 금기를 만들어냈고, 곰을 사냥하면 성대히 장례 지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금기가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여자는 곰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오로치족은 백석의 유명한 시 <북방에서>에 나오는 ‘오로촌’과 같은 부족이라는 설이 있으며 곰 이야기도 공유하고 있기에 우리와 친연성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오로치족의 이야기에는 근친혼의 흔적, 형제살해 등 역시 마음이 한구석이 싸해지는 요소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이야기에는 에벤족과 오로치족의 공통점, 그러니까 곰을 죽이고 난 후의 의례도 나타나는데, 사실 이런 의례와 금기의 기원을 알려주기 위해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사실’로 받아들여져 실제 의례가 행해지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동북지역의 많은 부족들이 곰 새끼를 데려와 정성을 다해 키우다가 어느 정도 곰이 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곰을 살해한 후 축제를 벌였다. 오로치족의 곰 의례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으나 우리와 친숙한 이웃나라 일본의 아이누족 곰 의례 “이요만테‘는 비교적 풍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오로치 부족 사람들. 몽골리안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러시아 국적으로 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에벤과 오로치, 아이누에게 있었던 곰 이야기와 의례는 우리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곰 의례는 혹시 고조선에도 있었을까. 누구의 말처럼 곰과 호랑이를 지배했던 환웅이 동북아의 가장 큰 신이었던가? (그래서 퉁구스가 다 우리 땅이라고?) 아니면 곰처럼 크고 강한 동물에게 정말 어떤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는지. (우리의 반려동물들에게는?) 


또 한편으로, 이런 의구심도 고개를 든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원시부족의 원초적인 생활상과 의식수준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연과 멀어진 현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민속학적 지식을 쌓아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한 것일까. 그저 조금의 교양을 쌓거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면, 굳이 이런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런 이야기는 근대화에서 소외된 소수부족의 미신일 뿐이라 여길 수도 있다.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에벤과 오로치의 이야기는 저런 혹독하고 잔인한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라는 교훈과 위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아이누족의 곰축제 의례 이요만테의 한 장면. 일본 본토에서 건너온 사무라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이 이야기에 대한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저 이상한 이야기들이 종교학적으로, 민속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이러한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쯤에서 권위있는 연구자의 말을 빌려 이야기들의 가치에 대한 내 의견을 갈음하고자 한다. 수 많은 연구자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며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신화학자 조셉 켐벨의 말을 빌려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 신화는 충격적이고 낯선 사건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고대와 만남으로써 우리 심층의 영적 잠재력에 이르는 실마리를 찾고......강력한 복합 문화적 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조셉 캡벨, <신화의 힘>)


다소 뜬금없고 거창한 담론이라 언뜻 다가오진 않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들이 무언가 심오한 것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심오할까. 그것이 무언인지 파헤쳐 보기 위해서는 먼저  ‘신이한 이야기’ 즉 ‘신화’란 무엇이며 우리 이야기의 주무대인 동북아 지역은 어떤 곳인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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