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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Sep 03. 2024

아이유 콘서트 후기

노래를 많이 듣는 거에 비해 음악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래서 막 엄청 좋아하는 뮤지션도 딱히 없다. 게다가 야구장 정도를 제외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고 시끄러운 곳은 질색을 하는 탓에 콘서트 같은 곳을 가본 적이 아예 없었다. 그러다 지난번에 친구가 이번 아이유 콘서트에 같이 가자고 권유를 해왔을 때, 200달러를 내고 가는 가치가 있을지 잠깐 고민하다, 한국에서는 보고 싶어도 예매가 안 돼서 못 본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방학 동안 한 번 특별한 경험을 더할 수 있다는 셈 치고 가봤다.


아이유 노래를 옛날부터 들어왔기에 자연스레 대표곡들 정도는 다 꿰고 있지만, 정작 수록곡에는 관심이 없는 데다가 최근에 나온 신곡도 잘 몰라 급한 대로 애플 뮤직에서 최신 노래 위주로 몇 번 듣긴 했는데, 막상 그래도 가보니 처음 듣는 것 같은 노래들이 꽤 있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노래였다면 지드래곤이 피처링한 팔레트랑 Strawberry Moon 정도였는데, 특히 Strawberry Moon은 훈련소 입소한 후 처음으로 나온 일종의 입대곡 같은 노래고, 게다가 그 이후로 전역할 때까지 컴백을 하지 않아 군 생활 내내 올레티비에서 보는 아이유의 최신곡은 항상 그 노래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 노래에서 특히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가 정말 좋아 전역한 이후에도 종종 듣곤 한다.


콘서트에서 부를 거라고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던 Ah Puh(아푸)가 나왔는데, 그 노래에 깃든 과거의 기억들이 멜로디와 함께 반갑게 다가왔다. 이런 부분에서조차 군대와 연결점이 있는 게 생각해 보면 웃기다. 전체 인원이 200명 남짓한 상대적으로 적은 전차대대 특성상 부대에 있는 버스라고는 학원에서 애들을 나를 때나 쓰는 중형 버스 한 대뿐이었는데, 핸드폰을 못 쓰는 운전병들이 심심함을 달래려고 당시 아이유 신곡들을 구워놓은 CD를 차 안에 두고 운전할 때마다 틀곤 했다. 당시 운전병과 짬 차이가 얼마 안 난 데다가, 도대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5곡 정도만 들어있던 그 CD의 노래들만 반복재생해 신병 때부터 거의 전역할 때까지 반복해서 들은 노래들 중 하나가 Ah Puh였다. 한창 군 생활 때 아이유가 컴백하지 않아 신곡을 넣을 일이 없긴 했다만, 1년 동안 그 차를 탈 때마다 거의 똑같은 노래만 들어서 멜로디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을 맴돈다. 뜬금없이 이야기해 보자면 내가 아이유를 한국 가요계 역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그녀의 노래가 내 삶의 특별한 경험의 순간들 속에 수많은 연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콘서트장에 있으면서 응원봉에 유독 눈길이 갔다. 주로 플로어석에 앉은 사람들이 미리 연습을 해온 것처럼 나름대로의 박자에 맞춰 흔들고, 게다가 노래마다 불빛 패턴이 달라져서 문득 저 많은 응원봉들이 동시에 저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는 응원봉이 원래부터 프로그래밍되어있어 세트리스트 곡에 맞는 패턴대로 빛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덕질에 조예가 좀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콘서트 도중에 중앙에서 곡에 맞게 응원봉들을 적외선을 통해 통제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통신의 세계라는 게 배우면 배울수록 신기하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모양새가 되게 이상해질 텐데, 그런 정교함을 갖춘 기술력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감탄만 나오네.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는 뮤지션이라면 대개 그렇겠지만, 아이유를 넘어 인간 이지은에겐 저 수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연장을 뒤덮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 공연장 디스플레이에 담긴, 그녀가 주는 꽃을 받았을 때 감격에 벅차오른 듯한 몇몇 팬들의 모습. 물론 유명세로부터 비롯되는 압박이나 부담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이 표현하는 무언가를 통해 수많은 타인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에는 ㄱ큰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아이유만큼의 노력이나 재능, 그리고 운을 갖춘 인간인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하면서 그럭저럭 체념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 나로선 가명이나 필명을 가지고 내세울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우리 시대에 글이 그런 수단으로써 작용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지만, 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써, 아이유의 노래처럼 글에 좀 더 열정적이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콘서트 후기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덕분에 신기한 경험 한 번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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