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사

프랑스 철학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by 해질녘

프랑스 철학사를 읽기 위한 시도는 프랑스 철학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읽고 싶었고 프랑스 교육과정에 있는 철학을 도입하여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철학적인 글쓰기와 생각하기를 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게 되었다. 어쩌면 프랑스 철학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p11. 명석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적이 아니다.

p12. 프랑스인에게 있어 철학이란 추상적이고 난해한 이론체계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p16. 철학은 모든 인간의 정신적 양식이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사고하는 것에 인색하고 기존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경쟁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 시대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났다. 지식의 성장은 거북이걸음이고 몇몇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있지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외국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우리 인습에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형상이 눈에 보이는데도 우린 따뜻한 물속에 개구리가 되어 물이 끓기 전에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지식의 역사는 70~80년대 이후로 진보하기보단 계속 하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 시각이 지식만큼은 비껴갔더라면 우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로 된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었더라면 일본의 많은 지식들을 쉽게 우리 것으로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일본의 책에는 이데올로기를 배경에 깔지 않았다. 오직 인간의 중심에서 서양의 지식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책의 레벨이 달랐다. 비교대상도 되지 않겠지만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 철학사, 이광래의 프랑스 철학사는 베이스가 다른 지식인의 저작물이었다. 불모지이기도 한 프랑스 철학사를 한국에 소개한 시도는 좋았지만 러셀의 철학사처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 책이 아니었다. 단순히 기존 지식들을 시대별로 논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조차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프랑스철학사 2권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21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 철학사 2권은 우리 손에 쥐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철학사를 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 철학의 광대함을 한 사람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지식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다른 나라의 철학을 함부로 논한다는 것은 자칫 돌멩이를 맞을 수 있는 위험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알량한 지식으로 지식인의 행세를 한다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 대부분 한국사회의 보편적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왔고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익숙한 억압에 쉽게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의 지위와 업무가 올바른 일을 수행하는가. 자신의 직업이 진정으로 내적 열망과 재능에 부합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일에서 얻고 싶어 하는 보편적인 만족을 주는가를 자문할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특히 그런 구속에 빠지기 쉽다. 일상은 매일 새로운 일을 던져주어 목표치를 끝내지 못한 채 밤늦게 침대에 몸을 던지게 만들고 아침이 되면 다시 전날 못다 한 일을 서둘러 계속하게 한다. 세월은 흘러가도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도 그랬다. 출처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한 혁명가의 회상’ 우물이 있는 집 (길 끝에서 길 찾기 이효정 초록물고기에서 발췌)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글쓰기보다는 현체제에 가장 적응을 잘하는 사람을 우선하고 있다. 글쓰기조차 표절에 대해 너그럽고 인용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지식의 행태는 종교 앞에서 쉽게 무뎌지고 서로가 암묵적인 묵인과 그것을 논하는 것이 쓸모없다고 여겨버리는 인식이 팽배하다. 깊은 사고의 부작용은 인간을 혼돈과 분열의 세계로 안내할 것 같은 인간의 심오함을 모르고 지나쳐 버리게 만든다.


몽테뉴의 수상록과 같은 저작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그 사회적인 영향을 우리가 무시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 내면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주입한 체계에 익숙해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의 명문처럼 우린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알아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p316. 우리들이 누구나 내부로부터, 즉 단순한 분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 파악하는 실재가 적어도 하나 있다. 그것은 시간을 통해서 흘러가고 있는, 즉 지속하는 우리의 자아이다.

p365. 인간의 정신이란 가치에 대한 끝없는 긴장이기 때문이며, 가치의 개념을 불확실한 것으로 보게 되면 존재 자체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과 그것을 탐구할 것이라는 것을 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철학은 인류 문명의 크나큰 흔적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이 책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나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한다.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면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창조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신의 존재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사유의 힘으로 극복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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