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철학사상

나는 딜레탕트인가.

by 해질녘

하이데거를 읽을 수 있었던 배경은 대학시절 교양철학 교수의 전공분야였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 읽어야지 했던 게 이제야 읽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먼저 읽어봤어야 했는데 하이데거의 철학사상을 먼저 읽게 되었다.


30년도 더 된 책을 그 당시의 가격으로 사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먼저 읽었지만 책은 한자와 라틴어가 뒤섞여 있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요즘엔 한문과 병행하여 쓰인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때 그 시절 대학 도서관의 오래된 책을 뒤적이거나 헌책방의 책들밖에 없어서 그런 책을 만나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


오늘날 오래된 책의 책 가격은 그대로였고 지식의 가격은 더 낮아졌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존재에 관심 없거나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존재를 논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책을 읽으려고 하지도 않는데 하이데거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책을 썼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가벼움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한국 사회의 결과인 것이다.


사상은 불온서적이고 필요 없는 생각의 쓰레기라고 치부하는 인간이 많을수록 철학은 그 존재의 깊이로 인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특히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필독서에서 빠질 수밖에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난 여전히 도서관에 꽂혀있기만 한 책들이 내 손을 만나고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문송한 아이들의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책이 그렇게 없는 것일까.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하이데거였기에 존재에 대해 한번이라도 어떤 물음(what)이나 왜(why)라는 생각이 들면 하이데거의 책을 강추하고 싶다.


살면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은 삶의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해 준다. 존재는 존재를 탐한다. 그것이 존재의 제한성에 맴돌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할 줄도 알고 존재의 난해함에 빠져 내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생각은 항상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자신을 깊은 생각의 부작용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의 존재는 지금의 존재를 알뿐 그 이상은 모른다. 지금도 인간은 그 제한된 존재를 탐할 뿐 진리에는 이르지 못한 채 존재를 맴돌다. 존재에 대한 자기 정의를 내린다. 하이데거의 책은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카뮈의 해석은 가히 모범적이다. 신화란 거기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기 위해서(시지프의 신화) 마지막 장 참조) 있는 공상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지식을 생명처럼 여기는 현대인의 눈에는 지식욕 때문에 저주받은 인간에 관한 철학과 또한 존재론 이전에 있었던 이러한 신화적 증언들이란 마치 홀로 애쓰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라고 명령하는 서명 없는 유언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들어있는 모럴은 인생이 비록 끝없는 방황과 편력일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가장 고귀한 것임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174페이지 실존철학 조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