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답은 없지만 답은 있을 것 같은 인간의 삶 속에서

by 해질녘

하이데거는 존재를 중심으로 논하는 철학자이다. 그의 책 제목이 ‘존재와 시간’이듯이 철학은 존재함으로써 인식하는 것이지 인식이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존재의 가치가 인간의 인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 인식 자체만으로는 인간에겐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없다. 하루를 살더라도 그 하루의 존재 가치가 중요하지 몇백 년을 살아도 허공에서 맴도는 인간의 정신은 살아남은 자에게만 중요한 것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존재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것은 인식의 힘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 실체를 드러내고 나중엔 자연으로 돌아간다. 존재는 그렇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와서 그렇게 껍데기는 자연에게 남겨두지만 인간의 껍데기는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상호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태어났다고 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


삶과 자연을 인식하고 학습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연을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배워온 대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자연과 동화되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나의 존재는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길들인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자연의 숨어 있는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 모든 행위가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한 단계인지도 모른다.


존재의 의미를 모르고서 존재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자연이 모든 만물을 길들이듯이 인간이 인간을 길들이고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인간의 삶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삶 가운데 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존재함으로써 삶의 다양성을 체득하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인간의 길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 열심히 살고 하루아침에 죽어버릴 수도 있고, 삶의 수많은 갈림길 속에서 인간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떤 강한 운명의 힘이 인간을 움직이는 것 같다.


존재는 수많은 갈등 앞에서 갈등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보다는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삶인듯하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준 삶의 의미라면 인간은 참 애매모호한 존재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인식하는 존재이면서도 자신을 옭매고 있는 운명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자연이 그렇듯이 항상 순환을 하며 인간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탄생, 삶, 고통, 죽음 삶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공기호흡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긴 시간인듯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현재의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다가 죽음의 운명 앞에서 무기력해지면서 눈을 감는다. 그 시일이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태초에 인간이 어디서 태어나서 존재하게 되었는지 모른 체 항상 그 의문을 가진채 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신을 섬기며 살아간다.


굶주림 속에서도 먹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하면서 외면적인 삶을 중요시하면서도 내면적인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왔다. 인간이 단순히 동물처럼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삶도 인간이 지닌 인간만의 본능인가? 로뎅이 무엇을 생각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등이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신은 인간의 생각을 중지시킬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지만 인간에겐 그 스스로 생각을 끊을 수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는 상상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통속적인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인간 일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오로지 인간이기 때문에 방황하고 좌절하고 시련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참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처한 인식의 상황에 대해서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며 혼란스러워하며 방황하지만 인간 내부엔 그런 혼란 속에서도 인식의 정당성을 인식하며 인간을 이해할 순 없지만 자신도 하나의 자연의 일부처럼 살다가는 자연적인 존재로서 인식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이 세상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사유에 대한 관념적 개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대부분의 인간에게 인지되어 왔지만 그런 인식의 혼란을 감소시킬 수 있는 어떤 발견도 하지 못했다. 단순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답은 없지만 답은 있을 것 같은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존재의 외로움과 고독감속에서 자신의 가상 세계 속에서 진실 아닌 진실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삶을 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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