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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31. 2023

친정에서 느낀 점.

친정에 와서 느낀 점.

1.나는 친정에서는 잘 먹지 않는다.

먹는 양 자체가 많이 줄고

끼니를 챙기기 귀찮아 거르기도 한다.

마음이 편해서인건지(사실 편한건지도 잘..)

좁은 집때문에 활동량이 확 줄어서인지

식욕자체가 별로 없다.


2.친정에서 나는 잠을 많이 자고 하루 종일 늘어져 누워 있다.

내가 결혼전 키가 크고 날씬했던 이유인 것 같다.

늘 자느라 먹을 시간이 없어 한끼는 걸렀던 것 같다.

많이 자니 키는 컸고 자느라 끼니를 잘 안챙기니 살은 안쪘다.


3.친정은 너무 좁고 불편하다.

이런 집에서 12년을 살아온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된다. 공부 뿐만 아니라 너무 좁아 몸이 움직일 거리 또한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자격시험  공부거리를 가지고 왔음에도 이 좁은 공간에 이걸 펼쳐두고 여백하나 없이 공간을 가득 채워 어지럽게 공부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27년을 여기서 산 엄마는 오죽했으랴.


4.나는 엄마의 눈치를 많이 본다.

늘 일하느라 바쁘고 아픈 엄마, 그리고 늘 그것을 입밖으로 내뱉으며 자신의 힘듦을 매일매일 토로하던 엄마.(이해한다. 고단한 삶이다.)

그런 엄마는 집에 오면 상대적으로 덜 바쁜 우리가 집안일 하나 해두지 않는다며 불평불만을 한다.

특히 그 화살은 아빠에게 가장 많이 향했고, 다음은 나였다.

이번 설연휴때도 회사에 다녀온 엄마는 집에 있으며 빨래도 안돌려놨다며 날 탓했다.

순간 난 또 죄책감에 시달리고 눈치를 봤다.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바쁜 엄마가 종종거리며 회사를 다녀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요리를 할 때에도, 모찌 병원을 쫓아다니느라 힘들다는 말을 할 때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갈 준비를 할 때에도, 엄마가 가만히 쉬고 있지 않는 순간에는 나는 계속 눈치를 봤다.

엄마의 힘듦과 고단함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 그것이 늘 날카롭게 날이 서 가족들을 향할까 불안에.


5.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빠는 엄마 이야기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빠를 보며 마치 나같다고 느꼈다.

출산 전까지만 해도 남편에게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 공격하고 비난하고 화를 냈다면, 출산 후 아이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강제로 억눌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삭제된 자리에는 아빠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나의 화내는 성격패턴이 사라지니, 아빠의 눈치보는 모습이 남아 남편의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수동공격적인 남편이라 기분나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수동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침묵하고 기분나쁜 티를 은근히 내는 방법 등으로 분위기를 흐린다. 그리고 그것은 시댁어르신의 방법을 닮아있다.) 나는 눈치가 보이고 가슴 한켠에 돌덩이를 올린 듯 무거워진다. 차라리 아이가 없었으면 대판 엎어버리고 싸움이라도 할텐데, 나의 화를 억눌러야 할 이유가 생기자 나는 엄마의 패턴을 버리고 아빠의 패턴을 선택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레파토리는 단 두가지, 엄마의 화 혹은 아빠의 눈치였나보다.


6.엄마에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는 자신의 힘듦을 타인에게 죄책감이 느껴지게끔 표현한다.

엄마의 희생을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희생조차 감당하고 산다.

그러한 엄말 보며 자라 시댁과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감과 헌신을 가지고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 죄책감을 느꼈다.

대학원을 다니며 코피쏟을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나는 늘 밥을 내 손으로 손수지어 챙겨놓고 나왔다. 딱 한번 반찬가게를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죄책감을 느꼈고 눈치가 보였다.

엄마가 내게 준 책임감, 죄책감, 아빠에게 학습한  눈치였다.


7.그리고 이러한 나 역시 남편과 아이에게 늘 바쁜 날 대신해 집안일을 하지 않는 남편(주말 아이를 보라고 하면 딱 아이만 보고 있다. 나는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데) 에게 원망과 화, 그리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를 해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눈치가 함께 올라온다.

이전이었다면 엄마처럼 왁 하고 쏟아냈겠지만 아이앞에서 싸우지 않으려 나는 비언어적인 공격이나 비꼬는 듯한 말투를 내보이며 수동공격적 양상을 띈다. (개인적으로 수동공격적인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아이때문에 이걸 누르다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은 감정은 피식피식 세어나와 비꼬는 형태로 수동적 공격을 한다. 이또한 아이가 배울 수 있거늘..)


8.남편 또한 내게 수동공격적 양상을 보인다.

아버님으로부터 학습한 정서적단절(밥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들어가 폰만 보고 침대에 누워있고, 심지어 누워있다 일부러 일어나 안방 문을 꽉 닫아버린다. 물론 남편이 그만큼 혼자 있고 싶을 것임을 이해해 거기에 대해 터치하지 않지만 가정에서 남편의 상호작용은 매우 적은 편이다. 아이와의 상호작용양을 살펴보면 내가 훨씬 풍성하고 남편은 사실 정서적 단절이라 느껴질 정도로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단절되어 있음을 느낀다.)


9.엄마의 책임감이 우릴 무능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과도한 책임을 짊어진 이가 있으니, 나머지 사람들인 배우자와 자식들은 책임에서 많이 벗어나 무능하게 있었다.

아빠의 무능은 (여기서 말하는 무능이란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일손을 보태지 않음) 할아버지를 닮기도 했지만, 사실 엄마 또한 과도한 책임을 지며 아빠를 세탁기 하나 못 돌리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과도한 책임감을 물려받은 나 또한 남편을 집안에서 무능하게 만들고 있진 않나 생각하곤 한다. (주말 청소를 제외하고는 내게 집안일의 많은 것을 의존한다 느낌.세탁기 못돌림, 요리 못함, 설거지 느림, 욕실청소 한번 안함 등등)

즉, 합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남편의 시댁 또한 어머님의 과도한 책임감으로 남은 이들이 무능해짐.) 결혼을 했고, 그것은 각자가 점점 강화시키고 있다는 생각. 내가 이것들을 유도하는 에너지가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


10.나는 아빠의 순수함과 천진함을 닮았다. 아빠는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연령이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같았다. 60대인 지금까지도 아빠는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때론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웃음을 보인다. 본인이 이야기하고 웃기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하하하하 과장된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것은 타인에게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자신의 전략인것 같고, 그것은 나의 친할머니인 아빠의 엄마를 닮아있다.

아빠는 장난기어린 농담과 대화를 좋아했다. 진지한 이야기보다는 늘 피상적인 대화를 했고, 그러한 아빠를 학습한 나는 유아틱한 모습이 있고, 피상적 대화에 능했다. (그냥 가벼이 웃고 넘길 수 있는 농담을 자주 했고, 그래서 어찌보면 B급 블랙 코미디같은 대화만 하며 깔깔대고 진정한 감정을 교류할 줄 몰랐다.)

아이 역시 엄마는 아이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부모로서 아이같음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아빠가 내게 했던 방식대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깔깔대고 뛰어놀고, 아이 수준에 맞는 이상한 농담을 잘한다. 아이는 내가 말하면 웃기고 재밌다고 하고, 아이의 친구들은 너희 엄마는 너랑 잘 놀아주고 맨날 웃어주고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그리고 중딩시절 내 친구들은 지금도 우리 아빠를 회상할때면 농담과 장난을 좋아해 편안하게 친구들을 잘 수용해주던 아주 좋은 아빠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이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진 않았다. 부모로서 보여야 할 권위가 바닥인 느낌이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내 아이에게 나는 너무나 자연스레 행하고 있다.



친정에 오니 모든 심리적 역동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역동들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쳐 내가 이런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가족의 영향이 현가족에게 나타나는 행동의 맥락을 통해 이해가 된다.

그러다보니 이전이었다면 단순 짜증에서 멈추었을 법한 일에 몰입되어 불편감이 주욱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남편의 수동공격적 행동과 정서적 단절, 나의 원망과 비난, 죄책감과 눈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가진 불평불만을 건강하게 표현하지 않으니 그것이 아이에게 불똥이 튈 때가 있다.

남편때문에 눈치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그 답답함은 아이에게 짜증이나 설교, 차가운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억눌린 감정은 절대 눌러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향해 에너지의 방향이 전환되어 표출된다.

남편 또한 내게 불만이 있을 때면 아이에게 짜증과 정서적 단절을 통해 드러낸다.


이러한 우리의 행동이 아이에기 미칠 영향 또한 여실히 그려진다.

아이는 남편을 닮아 수동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것이며, 불편한 일을 직면하기 보다 정서적 단절을 보일지 모른다.

나를 닮아 타인에게 원망과 비난을 하고 요목조목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며 따지고 들 것이고 그러면서도 또 죄책감과 눈치를 보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런 내 모습을.


오랜 기간 상담을 통해 자기분석시간을 가졌지만

35년간의삶을 다 풀어내기엔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파도파도 끝이 없고, 알면 알수록 더 큰 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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