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크게 싸우다
엄마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도로가에 할머니 한분이 쪼그리고 앉아계셨다.
끌고 오신 수레를 앞에 세워두시고.. 나는 그 모습이 할머니가 걸을 힘이 없으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더워서 쉬고 계신 것인지 애매해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왜 위험한 도로가에 저렇게 앉아계시는 거지?"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쉬고 계시는 거야. 하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나는 계속 힐끗힐끗 뒤를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신경이 쓰였다.
"쉴 곳이 많은데 왜 하필 도로에 앉아 쉬고 계시는 걸까? 혹시 몸이 불편하신 거 아니야?"
엄마와 나는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코너를 돌아 할머니가 눈에서 보이지 않을 무렵, 내가 혼잣말로 말했다.
"아.. 계속 생각날 거 같아."
그런데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비꼬는 말투로 "네가 그렇게 착하면 지금이라도 가서 할머니 도와드려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요즘 길에서 저런 노인분들 엄청 많이 본다고
보아하니, 쉬고 계시는 것 같은데 오지랖 넓게 이 사람 저 사람 어떻게 다 챙겨주냐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손 아픈데 먹고살려고 억지로 참고 살아간다고..
늙는 건 그런 거라며, 본인 앞가림하기도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 참 이기적이라고. 그냥 엄마 마음 편하려고 그 할머니가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며 엄마를 질책했다. 엄마도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데..
작은 관심, 도움의 손길이 그분들에게는 아주 크게 와 닿을 수도 있다고. 내가 도움받아봐서 안다고
그렇게 투닥거리며 할머니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나 역시도 말만 그렇게 했다. 막상 다가가서 도와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 싸움의 작은 불씨가 근방에 떨어져 있던 마른 낙엽들로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성을 높여 길거리에서 싸웠다.
엄마는 맨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나의 태도를 지적했다. 내가 맨날 이런 식으로 엄마를 무시하니 마니,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들 생각할 시간 있으면 네 부모나 똑바로 챙기라는 둥
누가 들으면 나는 집에서는 완전 불효자인데, 밖에 나가서는 선행하고 다니는 줄 알겠다.
내 나름 엄마 도와준다고 집에서 집안일 다 하고 아프다고 하면 마사지해주고 밖에서 힘든 일 있었던 거 들어주며 딸 노릇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런 것들 싹 다 무시하고 지금 싸우는 이 상황에서 말대답하는 내 태도로
내가 얼마나 나쁜 딸인지를 판단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막말은 끊이질 않았다. 글 쓴다고 하면서 행동은 이따위로 한다느니.. 주워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때 마침 아빠의 등장으로 우리의 싸움이 잠시 중단되었다.
이 싸움 자체가 이해가 안 갔다.
엄마의 마음속에 큰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살아온 환경과 경험한 것이 다르고, 주변 친구나 근무환경 등이 다 다르니, 사건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특히 나는 전 세계를 지난 9년간 활보하며 안목이 아주 넓어졌지만 한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온 엄마는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당연한 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맞니 네가 맞니 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싸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왠지 내면에 말 못 할 사정들이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내 속을 들여다봤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3개월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 중이다. 매일 변하는 날씨와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끔찍한 자연재해들을 매일 뉴스로 접하며 하루하루를 혼돈과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뉴스에서 집 잃은 사람들의 고통 섞인 절규가 나온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수많은 가축들이 생명을 잃고 우리 역시도 서서히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 들이 너무나 많은데, 많은 이들이 못 본 척하고 지나간다. 우리 엄마가 그러했듯.
엄마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이 더 크게 보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