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와 한 입 거리 불안

이후에 남겨진 사랑에 대해서

by sai




말랑한 것들, 을 사랑하는 일,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자주 숨기며 한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을 보니 나는 진정 사랑을 해본 적 있을지 의심한다. 아프다고 자주 말하는 내가 아프고 싶은 건지 그러지 않고 싶은 건지 의심하는 날들이 오래였고. 이제는 답을 알아냈으니 많이 걸어내서 돌아옴과 동시에 떠나가야지. 어떤 어제들을 놓아내야지. 누워내야지.


뻐근한 마음들에 대해서 생각해. 마음 한편에 주사를 놓은 거야. 나는 명백하게 아픈 문장이 좋다. 그것들은 대개 침묵으로 이뤄져 있지.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지원되는 음성들이 있어. 내게 어떤 소리가 남아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가끔. 혹은 아주 가끔. 그 애의 침묵을 읽어내기 어렵다면 돌아봐야 한다.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소음을 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리가 두 개뿐인 의자처럼, 내겐 눈 하나가 부족해서 덜컹거리는 마음을 이고 지내왔다 생각했다. 덜컹거리는 마음들, 그것은 불안의 시초가 되고 그것은 멀미를 동반하고.

불안은 멀미 나는 슬픔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아, 나는 구토에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곪아버린 시간들을 모두 토해내려 얼마나 애써왔던가. 글자들만이 어떤 것들을 구토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좇았다.

내게 진작 눈이 하나 더, 내가 걷는 길을 정확히 따라올 수 있는 그런 눈이 하나 있었다면, 멀미 나고 눈앞이 흐려지는 날들이 보다 적었을 텐데. 맑은 눈으로 나를 쫓아오는 사랑들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살아 어떤 마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다. 나는 바람을 잔뜩 맞는 순간을 좋아하는데 (바람과 음이온과 기분의 상관관계에 대해 증명된 것은 없다지만 좋아하는 가설이다.) 마음이란 그저 부는 바람과 같다고 생각해. 그러니 그저 맞아야지. 기쁘게 맞이해야지.

좋아하는 작가의 스물셋 여행기를 읽는다. 그녀의 비행을 읽어낸다. 나도 늘 떠나고 싶었지, 버리고 싶었지. 늘 떠나고 버리는 동사들을 동경했지.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동사들에게 매일같이 생경함을 느낀다. 내가 결국 무얼 버릴 수 있을까, 내가 무엇에게서 떠날 수 있을까. 그러나 혼자 우는 밤마다 누군가의 앞에서 울 날을 고대하다 커버린다. 그날이 아직은 멀게만 보여서. 아쉬워. 그저 아쉬울 뿐이야.

나의 일기엔 온통 불안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뿐이다. 떼어낼 수 없다면 내 손으로 다뤄내야지.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음악을 틀어두고 요리를 했다. 내게 내려진 여유에서 살아 있음을 만끽한다. 가랑비 같은 바람만이 내게 남았다. 고요에 수렴하는 날들이다. 이제 하찮은 마음들이 전부 사랑으로 들려온다. 온전히 소망하던 바이다. 나도 곧 나무에 대해 말하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