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
주말에 엄마집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부부와 엄마를 모시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엄마는 돼지갈비를 좋아하십니다.
소고기도 사드리지만 당신은 돼지갈비가 더 맛있다고 하십니다.
엄마의 진짜 속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소고기가 훨씬 맛있거든요.
여러 식당을 모시고 다녀봤지만 유독 좋아하는 곳은 돼지갈비 전문식당입니다.
그날도 엄마의 최애 식당인 돼지갈빗집에 가서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친정엄마는 자식들에게 싫다는 내색을 잘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이든 사드리면 맛있다. 이쁘다. 좋다고만 하시니 자식들 입장에서는 고맙기도
하지만 딸인 제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어릴 적 학교 다닌 답시고 일찍부터 엄마 곁을 떠난지라 사실 우리 엄마지만 엄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살았던 못된 자식이었습니다.
엄마는 자식들이 선물을 해드려도 좋아하는 걸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고 늘 고맙다는
말씀만 하셨기 때문이었지요.
결혼 후 시어머니를 만나고 나서야 우리 엄마가 정말 화가 나도록 답답한 분인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호불호가 확실하셔서 자식들에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셨지요.
서운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며느리 입장에서는 편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걸 사드리면 되니까요.
친정엄마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다 좋다 하시니 친정 엄마의 속마음을 가늠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자식들을 위한 엄마의 끝없는 배려심이셨다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자식들이 편하라고 하신 행동이었지만 저는 그게 싫어서 저희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런 거 좋아하니까 꼭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할머니 되면 이런 거
사 줘야 해"라고 일찌감치 교육을 시키기도 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동생네 부부와 차를 마시로 카페로 갔습니다.
메뉴판을 보신 엄마는 여전히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하셔서 엄마께는 수제 대추차를
주문해 드렸습니다.
5명이 골고루 종류별로 차를 하나씩 주문하고 나니 엄마는 딸과 사위들이랑 함께 한
카페 나들이가 기분 좋으신지 표정이 밝으셨습니다.
엄마는 평일에는 주간 보호센터( 일명 노치원)를 다니십니다.
자식들이 이렇게 모시고 나오지 않으면 절대 카페는 가시지 않는 분이시지요.
카페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시고 작은 목소리로 예쁘다고 하십니다.
허리에 큰 수술을 받으시고 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퇴원하시더니 생각지도 않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오래된 시골집이지만 부지런히 쓸고 닦아 무엇이든 반질반질
윤이 나게 청소하시는 깔끔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치매가 찾아오니 집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변화를 그때부터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아파트 이사도 고려했지만 당사자인 엄마가 극구 싫어하셔서
지금도 그 집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병원에 가서 담당선생님과 상담하니 치매환자들에게는 오래되고 익숙한 곳이 차라리
더 낫다며 굳이 환경변화를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십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이 엄마께 더 좋지 않다는 말씀에 자식들은 또 어쩔 수 없이 엄마를
그렇게 혼자 사시도록 두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맞벌이를 핑계로 친정 엄마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치매 초기 단계라 혼자서 생활은 가능하시지만 점점 더 걱정이 됩니다.
아들, 딸 며느리들에게 부담될까 혼자 사시는 것이 속편하다 하셨지만 엄마의
속마음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자식들이 많아도 선뜻 모시겠다는 효자, 효녀 하나 없는 우리 엄마는 참 불쌍합니다.
우리 엄마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보는 효녀 딸이 되고 싶은데 시어머니 모시고 살아서
안된다는 핑계만 자꾸 만드는 못된 딸이 되어 갑니다.
본인이 힘들어져도 자식들 생각만 하시는 우리 엄마의 끝없는 희생정신은 닮고 싶지가 않습니다.
"나이 들수록 점점 당신 하는 행동이 장모님과 똑같아" 진다는 남편의 말에 버럭 화를 내었습니다.
엄마처럼 희생만 하시며 살고 싶지는 않은게 저의 속마음입니다.
우리 엄마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자식이 알아줄까요?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