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부 고군분투기 3
유난히 아침잠이 많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건 괜찮은데 새벽 일찍 일어나 뭔가 하는 건 정말 죽음이다.
밭일도 한밤중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건만 그럴 수가 없다. 해 떨어질 시간부터 밤늦게까지 하면 좋겠는데 감귤밭에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햇살 아래 일하지 않으려면 별수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비가 예보됐던 지난 주말, 비가 올 듯 말 듯하면서 햇빛 쨍쨍한 날을 맞아 오전부터 예초를 시작했다.
예초기라는 기계를 처음 본 게 군대였다.
시골 출신 선임들이 예초기를 메고 시원스럽게 풀을 깎아 내면 예초기가 닿지 않는 곳들은 나처럼 실력도, 힘없는 병사들의 몫이다. 이빨 빠지고 닳고 낡은 낫 하나 들고 산언저리를 낑낑거리며 풀을 깎던 기억의 한편에는 칼날이 튀고, 예초기 반대편에 서있다 봉변당하는 모습들도 남아있기에 나에게 예초기는 '공포스러운',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 예초기를 내가 만지고 있다니!
제주에 와 밭에서 일을 하려고 보니 예초기 사용은 트럭 운전과 더불어 기본 중에 기본인지라 “저 무서운걸 내가 어떻게 쓰나” 겁내며 사용한지도 벌써 2년 여.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젠 예전같이 공포스럽지 않으니 장족의 발전을 하긴 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감귤밭은 장마철이 되면 귤밭인지 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풀들이 자란다. 어느 정도 속도냐면 오른쪽 먼저 깎고 며칠 후 왼쪽을 깎으려고 보면 오른쪽도 비슷한 속도로 자라나 내가 풀을 깎은 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마음 같아선 저렇게 살겠다고 자라는 검질(풀의 제주어) 매야 할까 싶지도 하지만 검질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 초보 농부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 감귤나무를 타고 감긴 덩굴도 마찬가지다.
한 달 여 전, 감귤나무의 목을 옥죄는 덩굴들을 일일이 제거했건만 엄청나게 자라난걸 보니 깜짝 놀랄 지경이다.
매 주말마다 특별한 일 없으면 밭에 가는 게 일상이건만 그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 좀 하다 출근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밭에서 일하는 즐거움이 새벽잠을 이겨낼 것인가 나 자신이 궁금하다.
지겨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온단다.
짓다 만 창고도 마저 지어야 하고, 창궐할 벌레를 잡기 위해 약도 한번 뿌려줘야 할 테고... 할 건 많은데 시간도 체력도 안 따라 주니 버겁긴 하다.
콩알만 했던 감귤이 이젠 탁구공만 해졌다.
올해는 솎아낼 겸 청귤을 팔아볼까 생각 중인데 어떨는지 모르겠다.
내가 힘들이고 관심 가져주는 것만큼 잘 자라는 게 농사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또 농사일이니 장담이나 과신 없이 부지런한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