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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과사자 Aug 25. 2021

욱하는 육아

둘째를 잃어버릴 뻔하고도 욱하다

1차전 -둘째를 잃어버릴 뻔하다


첫째 꽃은 학교에 다닌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공립학교 프리 스쿨이라 시간은 아주 (아주아주) 짧다. 오후 12시 40분부터 3시 20분까지 금요일을 제외한 주 4일. 그 소중한 시간에 둘째 사자가 자면 참으로 좋으련만 사자는 끝까지 참다가(왜?) 오후 네다섯 시 넘어서 잠들기 일쑤다.


오늘 남편이 꽃을 데려다주고 와서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사자를 데리고 누웠다. 책을 읽다 보면 스르르 잠들지 않을까? 아니었다. 잊은 물건 가지러 돌아온 남편 때문에 아예 일어나 앉은 둘째.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장난감을 조금 가져와서 침대에서 놀게 하면 못 이긴 척 잠들지 않을까? 아니었다. 등을 침대에 닿지 않겠다는 둘째.


자는 척하면 효과 있을까 싶어서 눈을 감고 있었더니 어느새 내가 잠들었나 보다. 옆에 놀던 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련히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욕실과 빨래실을 둘러봤다. 없다. 작은 방 문을 돌려보니 잠겼다. 열쇠 가지러 간 사이 문득 드는 생각, 문은 잠겨도 방에서 소리가 나야 하는데? 인기척이 없다. 역시나 문을 열어도 사자가 안 보인다.


그때 현관문 자물쇠가 열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설마? 식은땀이 쭉 흐른다. 빨리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사자가 현관 베란다에 서서 나를 뒤돌아 본다. 일단은 다행이다. 다행인데 얼마나 혼자 나와 있었던 거지? 그때 모르는 여자가 한쪽에서 나타나 통성명을 했다. 대각선 건너편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집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기저귀만 입은) 한 아이가 혼자 걸어 다니더란다. 그것도 공사장 쪽에서 놀고 있더란다. (우리는 몇 년째 신축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집인 것 같아 문을 두드려도 (내가 자고 있어서) 반응이 없으니 다른 집에도 가서 물어보고 아이 엄마를 찾고 있는 중에 내가 나왔다고 한다.


수시로 공사 차량이나 택배 차가 지나다니는 곳인데 오늘따라 우리 블록이 조용했던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유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잘 알지도 못 하는 이웃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 또한 백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감사할 일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자를 데리고 들어와 씻겼다. 그랬더니 주스를 달라고 하는 사자.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는지 알리 없으니 주스가 넘어가겠지. 간식을 챙겨 먹이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20여분 전 길 바로 건너 다른 이웃에게서도 문자가 와있었다. 자기 현관 베란다에서 우리 둘째가 혼자 놀고 있단다. 상황 설명하는 답장을 하면서 아직 충격에 빠져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다들 그런 일을 겪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자기도 그런 적 있다거나 자기 아이들도 그렇다고 할 때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없는 말을 위로 삼아 한다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나가면서 보는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은 우리 꽃과 사자만큼 별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탈 것을 내주고 집 앞에서 놀라고 하면 집 앞만 뱅글뱅글 도는 아이들, 차로로 내려가지 않고 보행자 도로만 따라가는 아이들, 도망을 가더라도 부모가 금방 잡을 수 있는 속도로 잠깐 그랬다 마는 아이들. 그것이 내 눈에 보였던 이웃 아이들이다.


그에 반해 꽃과 사자는 뭘 탔다 하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집에서 벗어나기 바빴고 맨발일 때도 100미터 경주를 하듯이 뛰어 도망간다. 울타리가 있는 마당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었다. 제일 넓고 안전한 곳은 버려두고 꼭 자갈 깔아 놓은 곳에 가서 놀거나 나무로 지어진 벽면에 조그만 홈을 밟고 올라서기도 하는 것이 나의 딸과 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자가   없는 것이 안심이 되는   집에 문을  잠가 놓고도 잠깐  붙인 것이 죄가 되는  육아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있을까. 기가 막힌다. 26개월 나이, 아침 7 30분에 일어났으면   넘어서 낮잠  자도 되지 않나? 잠은커녕 혼자 밖에 나가 있었다니.. 그건 사자가 눈앞에 안전하게 있기에   있는 투정이었다.


2차전 -욱하는 육아


오후 세시 즈음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지난주 개학 이후 둘째와 함께 가는  처음. 차로 가려다 아까부터 outside라고 외치던 둘째 생각이 났다. 물어보니 헬멧 쓰고 밸런스 바이크를 타겠다고 한다. 분명 힘들 테지만 카시트에 앉히는  쉬운가 , 사자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웨건에 꽃의 헬멧과 바이크도 싣고 출발했다.  살은  길을   가는 나이다. 궁금한  많아서 이것저것  둘러봐야 하고 학교  거라고 여러  말해놓고  한가운데 멈춰 서기도 한다. 그래,  정도는 이해하자. 누나와 누나  선생님 이름을 반복하며 사자를 학교 쪽으로 이끌었다. 너무 더워서 사자는 웨건에 앉았고 얼음 태워서 준비해온 콜라도 나눠 마셨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꽃을 픽업했다. 실전은 그때부터였다. 꽃에게 헬멧 씌우고 바이크 내리는 사이 멋대로 가려는 사자를  번이나 잡았다. 하교 차량이 많아 조심해야 하는데 사자는 도로와 보행로 사이에 진하게 칠해진 페인트가 신기한지  위로만 타려고 했다. 겨우 보행로로 올려놓으니 꽃은 너무 빨리 가고 사자는 느릿느릿. 나한테  이러나 싶다.


꽃이 빨리 오라고 해도 사자는 풀밭에 밸런스 바이크를 세우고 가만히 서있었다.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니  흔들어 인사까지 한다. 남의 애라면 나도 귀엽다 했을 테지.


 걸린 듯한  상황을 벗어나니 횡단보도다. 잠깐 섰다 건너는 꽃과 달리 사자는 바로 뛰어들려고 했다.  동네는 스쿨 존을 철저하게 지키는 곳이라 다들 멈춰 섰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일 가까운 곳에 경찰차가! 구경하기 바쁜 사자와 밸런스 바이크를 들어 올려 웨건을 밀면서 길을 건넜다. 이번에도 경찰은 우리를 보며 웃고 있다. (나도  입장이었으면)


그다음 갈림길에서 집으로 바로  가고  길로 돌아가겠단다. 그때까지 꽃은 분명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가 자기를 앞서가기 시작하니 열이라도 받은 것처럼 질주를 했다. 다른데 관심 쏠린 사자는 그런 누나를 따라잡을 마음이 없었다. 32 넘는 날씨에 굳이 돌아와서는  이러고 있는지 나는 슬슬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꽃을 향해 기다리라고 소리쳐도 우리 존재만 확인하고 계속 달린다. 사자한테 웨건에 타라고 해도 싫다며 속도는 내지 않는다. 평소대로 하면 거리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일  있을 터였다. 나는  명이고 애는 둘인데 어느 누구도 말을 듣지 않는다. 최대한 꽃에게 안전 지시를 하며 최대한 참으려고 했지만 사자가 보행로를 벗어나는 순간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하고 말았다.


이름도 부르기 싫어서 야!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식식거리며 거센 손길로 사자를 웨건에 던져 넣고는 꽃을 따라갔다. 멀쩡히 가던 아이가 우리 단지에 들어가면서부터 차로로 달리고 있는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양방향 확인은 가능했지만 내가 예상한 곳에서 사고 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다고! 꽃도 웨건에 (그야말로) 집어넣었다.


육아. 도대체 뭐 이 딴 게 다 있을까! 다시 한번 아니 백 번 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로 바이크 타게 해 줄 테니 너희는 내 말 좀 들어줘라는 타협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고 그럼 내가 100까지 받아들일 테니 그것만 넘지 않게 해 줘 같은 것도 될 리가 없다. 너희 목숨이 달린 일이니 제발 엄마 옆에 붙어서 가든가 아님 제발 그냥 웨건에 앉아줘라는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 두 아이를 건사하고 있는 내 처지가 우습기까지 하다.


그렇게 집에 와서 샤워를 시키려는데 그 와중에도 두 아이는 하지 않겠다고 칭얼거린다. 기쁘다 슬프다 화났다는 감정을 아는 아이들이 엄마가 얼마나 더 화나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누군가는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게 내 화는 고이고이 접어두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샤워를 시키라고 하겠지. 기저귀를 입지 않겠다고 난리 치는 아이들을 구슬려 입히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하겠지. (그런 말은 접어주세요.)


밤에 잠을  때도 나를 끼고 있어야 하고 완전히 잠들기  내가 나갈까   목에 손을 올리고 자는  아이들. (아이들이  동시에 자는 것도 아니라  시간 소요될 때도 있다.)  숨이  막히는  알턱이 다. 기술이 발달해서  노동 강도와 분노 게이지까지 가상현실로 겪어보고도 엄마가 되겠냐고 물어본다면 나의 선택은 예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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