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몸으로 만나는 '투명인간'들의 사회
강서구 오션시티 하면 철새도래지와 더불어 대중목욕탕이 유명하다. 시에서 운영하여 저렴한 이용료와 쾌적한 환경으로 낮과 밤, 시간과 관계없이 이용자가 많다. 원래 그 열기에 숨이 막혀 멈춰 서지만 어디로 향해야 하는 선택의 고민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과연 옷을 벗는 순간, 사회의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한증막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직업도 나이도 잊고 순수한 몸뚱이만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모두가 '투명인간'이 되어 유쾌함이 몰려왔다.
땀으로 범벅이 되는 순간은 무념, 무상, 무아의 경지에 들어선 순간이 될까? 생각이 멈춰지자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수함과 열정, 나태함과 게으름, 욕심과 무질서, 교양에서 지적인 면까지 여기서는 모든 행동이 명료했다.
앗, 냉탕에서 놀든 아이들이 급하게 빠져나온다. 그곳엔 건장한 중년 사내가 냉탕의 폭포수를 강하게 틀어 놓고는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찬물에서 놀다, 더 강한 차가움에 놀라서 허겁지겁 탈출한다.
밖으로 나온 다섯 아이 모두 그 사내를 쳐다보며 원망 어린 레이저 눈빛으로 쏘아 보지만, 사내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계속 큰 동작으로 첨벙거린다.
연거푸 얼굴의 물기를 털어내면서도 혼자 신이 나 있었다. ‘아, 이 맛이야.’ 하는 표정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 공간을 빼앗겼다는 아쉬움으로 아빠 곁으로 각자 흩어진다.
다시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는 벌러덩 누워 남산만 한 배를 실룩이며, 수건으로 눈만 가리고는 이미 꿈나라로 떠난 사람. 그 옆에는 온몸을 비틀며 바닥을 헤엄치는 동작과 허우적거리는 자세로 열심히 운동하는 이도 있다.
온탕에선 한바탕 잠수질이 시작되었다. 누구의 것을 훔쳐보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신의 호흡 길이를 재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참 열심히 잠수질하고 있다. 그러다 숨이 차면 힘차게 머리를 걷어 올린다.
맨몸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그 아슬아슬한 거리'조차 허물어져 내린 곳에서, 이럴 순 없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그는 아무것도 보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사우나실 뜨거운 열기를 잊은 지 오래고, 모래시계가 멈춰선지 몰랐다. 다시 뒤집어 놓으며 안쪽의 세신실로 시선 여행을 떠나 본다. 거긴 모두 여섯 줄로 한 칸에 3명씩 앉게 되어 있어 비좁다.
덩치 큰 사람은 조금 큰 동작을 하면, 옆 사람에 닿게 되어 다소곳이 조용하게 할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다.
세 사람씩 서로 등지고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데, 두 곳이 아직 비어 있다. 언제부터 놓여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져온 물건이 덩그렇게 놓여 있는 것을 보아 수영장이나 헬스장 어디에선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 화상이 자리 잡아둔 듯하다. 그래서 공간이 조금 여유롭게 보여도 건장한 남자들에겐 비좁은 공간이다.
몸뚱이를 씻다 잘못된 동작으로 가끔 서로 놀라기도 하고, 이어진 동작을 잠시 멈추기도 한다.
아차, 샤워기 물줄기가 너무 강해 바로 뒷사람 쪽으로 향했는데, 그게 찬물인가 보다. 움찔 놀라며 뒤돌아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 잠시. 잠깐만 인상을 쓰고는 다시 돌아앉아 뭔 일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태연하게 본래의 일에 몰입한다.
여기저기 좋은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까닭에 늘 그랬듯, 분쟁은 생기지 않는다. 모두 투명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그런데, 즐기고 있는 나의 시선을 가리며 사우나실 앞의 이 아저씨는 벌써 몇십 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다. 키는 백팔십 센티미터 정도에, 몸무게 구십 킬로그램이 넘을 것 같은 튼튼한 체격에 피부는 까맣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탱탱한 피부로 보아 마흔의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 정도, 그리고 검은 피부 때문에 목에건 체인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직업이 무엇일까? 이 동네 사시는 분? 참 순할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아저씨는 검은 봉지를 뒤져 양파 같은 것을 드신다. 요즘 흔한 건강식품 같기도 하다.
잠시 후 혼자 박자를 맞추며 온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두 발과 두 손, 그리고 하나의 머리, 몸통과 그 중요 부위까지 각각 따로 흔들며 요란스럽게 뛰고 있다. 풋~, 크게 웃을 뻔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역시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다. 저 투명인간의 동작은 상당히 운동이 될 것 같아 나도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여긴 원시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다. 종잡아 백여 명이 넘을 것 같은데 직업, 나이, 어떤 종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홀딱 벗은 원초적 인간의 모습으로 모여 있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대중탕은 우리를 크로마뇽인이나 네안데르탈인으로 되돌려 보내, 잠시 문명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성스러운 동굴일지도 모른다.
투명인간이 되어 서로 보이지 않는 척, 불편이나 부끄럼 없이 공존하는 이곳. 그러나 아무리 맨몸이라도, 투명인간이라도, 물리적 거리는 허물어져도, 그 사람의 교양과 매너는 물기처럼 몸에 투영되어 남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