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없이는 힘들다
"그분 결혼한대요. 비혼주의자였는데 최근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네요"
최근 다른 회사로 이직한 A선배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워커홀릭으로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깊은 얘기를 해보진 않았지만, 사랑보다는 일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구나 생각했다. 그런 사람까지 결혼을 한다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출근시간은 7시 반으로 정해져있지만, 퇴근시간은 명확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4시 반인데 매일 해야하는 팀장보고가 6시 반에 있다. 거래처와의 술자리도 페이퍼 업무만큼 중요한 시간이다. 물론 개인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일 욕심 있는 사람은 거의 매일 업무적인 저녁 약속이 있다.
그런 탓에 회사 내에는 누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면 "남자(여자)친구는 너 저녁 술자리 많은 거 잘 이해해주니"라는 물음이 필수적으로 나온다.
사내 운동회가 끝나고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A 선배는 다른 선배의 "연애는 하고 있니?"라는 질문에 "바빠서 못해요"라고 답한 적도 있다.
그런 선배가 IT회사로 이직하자마자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한 지 1년도 안 돼서 결혼을 한다. 워라밸의 힘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 나오는 시대의 금명이는 별종이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 내조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던 시절이다. SKY 중 한 대학교의 80년대 학번 졸업사진에 있는 남자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자들 대부분은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은 금명이가 당연하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대학을 가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다. 특히 과거보다 입시와 취업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 현재는 그동안의 노력으로 얻은 것들을 결혼이라는 이유로 놓아버리기 어렵다. 동시에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월급 탓에 남자들도 여자가 일을 그만두는 걸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워라밸이 없다면 결혼하기 참 어려운 시대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40대 이상 여자 선배 중 절반만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