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의 사물 여섯 번째, 흰 양말
언젠가부터 흰 양말만을 신는다. 단돈 1천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의 흰 양말을 기껏해야 다섯 켤레 정도 가지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 서랍을 열어 롤빵처럼 둥글게 수납된 흰 양말을 가볍게 꺼낸다. 한 발씩 쑥쑥 집어넣고, 발가락부터 자연스레 감싸오는 안온한 감각으로 하루를 시작할 태세를 갖춘다. 이토록 깨끗하고 무해한 무장이 있을까. 예외 없이 여름에도 복사뼈 위까지 덮는 기장의 양말을 신는다. 발꿈치를 훑고서 착, 하는 만족스러운 소리와 함께 발목에 안착하면 발아래가 든든하다. 하얗고 단순하게 덮인 두 발을 내려다보는 것도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양말을 신고 잠시 방 안을 몇 걸음 걸으면 발이 닿는 곳마다 적당히 수줍고 쾌적한 느낌이 들어, 공간이 눈금 하나 정도 애틋해진다.
균형 있는 신체의 코어가 발에서부터 오듯이 편안하고 단순한 기본의 옷차림의 코어는 역시 이 흰 양말에서 나온다. 오늘 어떤 옷을 입었든 구애받지 않고, 늘 같은 감각으로 같은 양말을 꺼낸다. 출근할 때도 놀러 갈 때도, 셔츠를 입을 때도 반팔티를 입을 때도, 슬랙스를 입을 때도 운동복을 입을 때도 언제나 마무리는 흰 양말이다. 서예가가 하얀 종이 위에 농밀한 획을 내리긋고 회심의 일격을 찍듯이, 의심 없고 단순하며 겸허한 마무리를 짓는다. 그러니 갑작스레 신발을 벗어 두 발을 보여야 할 때에도 당황하거나 부끄러울 일이 없다. 내세울 것까진 없어도 어디에서든 적당히 떳떳한 기분, 그게 다름 아닌 흰 양말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흰 양말일 뿐이다. 구멍이 나면 언제든 무리 없이 교체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일 것이 이 고집의 핵심이다. 흰 양말만 신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한 짝이 구멍 나도 두 짝을 모두 버릴 필요 없어 남아 있는 흰 양말로 대체해 신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모양과 색깔이 모두 같으므로 짝이랄 것이 없다. 일일이 짝을 맞추지 않아도 되어 고민할 것이 없고 양말과 관련한 모든 동작이 부드럽고 지체 없다. 자유롭고 쾌적한 생활을 만드는 힌트다. 빨래를 하고 난 뒤 세탁기 안에서 죄다 똑같은 흰 양말이 줄줄이 하나씩 나오면 차례대로 건조대에 건다. 갤 때도 손에 집히는 순서대로 만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똑같이 발을 감싸는 의식 속에서,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의 균형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늘은 또 어떤 것을’이라는 형태의 선택을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하는 가운데, ‘오늘도 어김없이 이것’이라는 질서가 주는 순수한 안정감이 일상을 조금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갑자기 구멍이 나고 헤져 버려야 할 때도, 다시 똑같은 걸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느긋한 풍족감도 든다. 모든 것이 매일 달라져도 흰 양말만큼은 매일의 풍경에 소박한 추를 단다. 자신은 신발 안이나 바짓자락에 몸을 감추고서 시선이 가야 할 주연의 존재를 부각시켜주는 가볍고도 친절한 중심, 그것이 흰 양말의 미학이다.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양말이다. 양말은 무조건 흰 양말이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규칙은 무용하다. 누군가가 얌전히 흰 양말을 고집하는 동안, 또 누군가는 즐겁게 매일 다른 양말, 특별하고 예쁜 무늬가 있는 양말을 고르며 하루의 시작을 맞이할 것이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맨발을 살포시 감싸는 이 주머니는, 가뿐한 걸음마다 우리는 이 작은 사물과 함께하고 있다. 별 것 없는 나날 속에 가지런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을 심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