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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Oct 20. 2024

조언을 건네는 겸손한 방법

아이디어를 선물합니다

카페에서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J님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침 일찍부터 10km를 달린 후 낮잠을 자고 나와, 작고 조용한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마시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빵이 발효되듯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나른하게 무르익다가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가요?”

“이유를 모르겠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요.”

어떤 조언이었냐고 물으니 그냥 시시콜콜 모여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상대는 저도 그동안 들은 바가 있어 알고 있는 사람으로, 저희보다는 열댓 살 정도 많은 철학이 깊고 세심한 분입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하며 조언을 건넸다고 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동생이라서 하는 말인데···.”

“평소 소원님이나 다른 분이 조언을 할 땐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거든요.” J님은 그 점이 오래도록 의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묻는 것입니다. “뭐가 달랐던 걸까요?” 그 질문에 저도 뭔가 신중하고도 도움이 될 발견을 찾아내고 싶어 흠, 하고 어떤 답을 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쩌면 세간에서 말하는 맨스플레인*(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이나 으레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저지르게 되는 ‘꼰대스러움’의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서로 존중하는 사이의 두 사람 간에 오간 말을 그렇게만 단정 짓는 것도 조언을 건넨 분의 마음씀이나 상대를 향한 깊은 진심을 일축해 버리는 듯하여 내키지 않았습니다.

“음···. 제가 J님에게 어떤 조언을 할 땐, J님을 아끼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일단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아끼는 동생이라서’라는 말이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상대를 놓아두었다, 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J님께 그동안 조언을 할 때도 그런 마음이냐고 하느냐면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저는 상대를 내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에 건네는 조언은 잘 하지 않습니다. 조언을 건네는 상대가 아니라, 그 조언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정말로 올바르다면 아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조언이라기보단 아이디어를 건네는 사람이에요.”

"오, 맞는 것 같아요.”

“꼭 이렇게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거든요.”

어드바이스(Advice)가 아닌, 아이디어(Idea).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저는 곧잘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건네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고민을 상담해 오면 보따리를 멘 사탕 장수처럼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사탕처럼 꺼내 놓는 것이지요. 그게 저에게도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이건 어떤가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저렇게 해도 괜찮겠는데요? 하지만 또 이런 방법도 있어요. 저것과 비교하면 조금 이럴 수는 있지만요. 어떤 게 좋을 것 같아요? 하고요. 그 사람이 꼭 택하길 바라는 ‘내 안의 No.1’은 없습니다. 그저 선물 보따리를 톡, 하고 탁상 위에 펼쳐 보인 뒤 함께 열어 보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대화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조언은 어떤가요? 이미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내’가 중요해집니다. 조언을 건넨다고는 하지만, 그 조언을 입 밖에 내뱉고 있는 내내 머릿속엔 오직 ‘나’로 꽉 차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 말 안에 자신이 담겨 있지 않다는 걸, 듣는 사람이 느끼지 못할 리 없습니다. 그러다 의견을 내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토를 다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내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관대로 살아가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야 편안하고 어디 가서 마음 다칠 일 없고 안전할 거라는 믿음이 드니까요. 그래서 간혹 아끼는 사람일수록 조언을 하게 됩니다. 진로를 잘 고민하고 있나 의심이 되는 남동생에게 ‘내가 인생을 더 살아 본 누나라서 하는 말인데”하고 가르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솟는 것처럼요.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 내가 아끼는 동료나 후배,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더욱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도록 조정해 주고 싶어지는 기분이 됩니다. 양을 모는 양치기처럼요.

제가 존경하는 70세 일본 디자이너 아키타 미치오 씨는 책 <기분의 디자인>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상대의 고민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며, 그저 “새로운 시점을 하나 선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있으려고 합니다”라고요. 그 문장을 읽고, 그날 제가 J님께 카페에서 해 주었던 말이 다시금 기억났습니다.

나의 것을 주려 하지 말고, 상대가 기분 좋게 고를 만한 것을 선물한다. 그것이 조언을 건네려는 사람이 참고하면 도움이 될 힌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늘 고민합니다. 문득 어떤 사람을 보고 ‘이러면 참 좋을 텐데’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상대를 조정하고 싶은 느낌인지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은 느낌인지요. 마치 양치기가 된 듯 고민합니다. 양을 몰아 울타리에 얌전히 두고 싶은 것인지, 풀도 뜯어 먹고 구름도 구경할 수 있도록 더 넓은 초원으로 내보내 주고 싶은 것인지를요. 그러다 전자라는 것을 알면, 겸손하게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킵니다. 늘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웃음).

그렇게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아이디어를 선물한다는 자세로 있고자 합니다. 어떤가요? 별다른 조언을 한 기억도 없는데, 어느덧 당신에게 고민을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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