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맡에 두는 책
저의 침대 맡 책상 귀퉁이에는 늘 책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늦은 밤, 자기 전에 반 시간 정도 짧은 독서를 위해 두는 책입니다. 낮에 한창 읽던 이야깃거리 넘치는 책을 이어 읽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엔 하루 끝에 마음을 차분하고 깨끗하게 정돈할 수 있는 책을 읽습니다.
그런 저의 책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책은 다름 아닌 법정 스님의 책입니다. 최근에는 <산에는 꽃이 피고>라는 낡은 옛 책을 읽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늘 강조해 말씀하셨던 무소유의 즐거움과 침묵의 품위, 소박한 생활 등을 엿보며 마음에 꼭 새기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연필로 고이 밑줄을 그어 보기도 합니다.
꼭 법정 스님의 책 외에도 너무 깊지 않은 정도의 불교 서적을 자주 읽습니다. 선승들의 일화집이나 또 다른 스님의 편지 같은 글을 읽기도 하지요. 불교 신자냐고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속세에서 한 발짝 떨어져 맑은 생각과 행동으로 생활을 검소히 정돈하셨던 스님들의 글을 읽고 있자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더라도 자기 전 그런 책들의 구절을 읽다 보면 하루 동안 마음을 괴롭혔던 날카로운 감정들과 각종 욕심 등이 사라지고 본래의 둥글고 맑은 감정만이 남습니다. 그렇게 한층 편안한 기분이 되어 다시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마음 상태를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더라도 자기 전에는 꼭 나의 영혼을 다시 순수한 상태로 정화시킬 수 있는 사물들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이른바 ‘영혼의 시간’이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정화의식인 셈인데요.
간단한 동작을 취하며 긴장을 풀 수 있는 요가 매트,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아로마 오일, 카페인이 없는 따뜻한 차 한 잔, 손때 묻은 일기장 등. 마음이 끌리는 ‘소울템’들을 자유롭게 활용합니다. 제가 침대 맡에 두는 책은 ‘소울 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좋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역시 자기 전 침대 맡에서 즐기기로서는 소박한 책 한 권으로 충분합니다.
‘그래, 나 이런 삶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이런 생각에 평온함을 느끼지’,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싶지’. 책의 속삭임이 제 안에 스며들면서 이런 생각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포근포근 퍼져 오릅니다. 좋은 영혼의 시간은 종종 고요한 ‘아하-!’의 순간들을 심어주곤 합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내 안에 갖추고픈 상태를 다시 점검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돌보고 있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책인가 영상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생각했습니다. 아, 영혼의 시간을 갖자 하고 말입니다. 나름 몸과 마음을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영혼이란 말은 너무 심오하게 느껴져서였던 걸까요? 그 말을 듣고서 비로소 처음으로 영혼을 돌본다는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지만 영혼이란 것은, 마음속에 고이 놓여 있는 작은 돌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이런 비유를 쓴 것은 문득 한 강 작가의 시 <파란 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거기 있었네 /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저자가 선잠 속에서 손 뻗어 줍고 싶었던, 그저 고요히 놓여 있을 뿐인 희고 해맑은 돌. 그런 게 영혼이라고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졌던 말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 돌을 고요한 곳에 소중히 두는 연습, 그것이 험난한 풍경 속에 휩쓸리기 쉬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에 한 번 의식해 챙겨야 하는 영혼의 시간인 것이 아닐까요?
영혼의 시간을 꼭 밤에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한가로운 주말 아침도 영혼의 시간을 잠시 누리기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해가 떠서 점차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하는 새벽 산책도 꽤나 홀리(holy) 한 걸요. 그렇듯 평소에 접하는 것과는 어딘가 한 겹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나의 영혼을 맑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소박한 풍요의 시간을 가져봅시다.
신체를 돌본다, 라는 것도 좋지만 영혼을 돌본다, 라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한 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글은 제 영혼을 늘 맑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