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푼의 언어 vs 포크의 언어
어느 날, 라멘집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성분이 점원 분께 말을 거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장실 어딨어요?”
그 질문이 매섭게 날아와 제 귀에 박혔는데, 고작 별 것 아닌 한 마디인데도 왜인지 서늘하고 날카로운 도구로 한 번 꾸욱 찔린 것마냥 아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점원은 태연하게 ‘바깥으로 나가셔서...’하고 대답하고 있었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꽁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분의 말투가 무척이나 차갑고 퉁명스럽게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고작 화장실이 어디있냐는, 어떻게 말해도 상관없는 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요. 조금 더 부드럽게 물어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면발을 호로록 삼키며 곱씹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을 이렇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요리조리 혀 안에서 말을 굴려보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화장실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그동안 나는 어떻게 말을 걸곤 했는지 떠올려 보면서요.
라멘집에서의 일화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버스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좌석인 앞자리에 앉아있다 보면, 문이 열리자마자 한 승객이 정류장에서 “OO역 가요?”하고 툭 던지듯 기사님께 묻는 것을 듣게 됩니다. 글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마치 ‘어서 대답이나 들으면 된다’는 듯한 어딘가 다급하고 성난 목소리로 원하는 답을 돌려받기 위한 질문을 들이밉니다. 그럴 때면 반대로 질문이 부드럽고 상냥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저조차도 종종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방금은 조금 더 친절하게 묻고 싶었는데, 너무 내리꽂는 듯한 느낌이었어.’ 이런 반성을 하며 뱉자마자 속으로 부끄럼을 감춘 적도 꽤 많답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고민하며 ‘질문을 어떻게 건네면 좋을까’하고 궁리를 했을 때 제 안에 슬며시 떠올랐던 것은 스푼으로 수프를 한 숟갈 부드럽게 뜨는 장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스푼의 언어’와 ‘포크의 언어’가 있는 것입니다. 숟가락의 옆태는 미소 짓는 입모양이나 초승달을 뉘인 것 같이 ‘호’ 모양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작은 접시의 모습 같기도 하고 두 손을 공손이 모아 내미는 동작과도 비슷합니다. 바로 그런 모양으로 말끝을 부드럽게 떠올리는 느낌으로 건네는 질문은 훨씬 따뜻하고 상냥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포크처럼 툭 내려찍는 듯한 말투는 어딘가 공격적이고 ‘빨리 대답이나 내놔’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질문은 스푼처럼.
부드럽게 떠올리는 느낌으로.
타인에게 건네는 모든 말은 무릇 스푼처럼 하는 것이 기분 좋지만, 그중에서도 질문의 말은 조금 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란 모르는 사람의 세계를 처음으로 똑똑 두드리는 ‘노크어’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묻기 위해서 모르는 것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넬 일이 종종 생깁니다. 이거 써도 되나요? 티슈는 어디 있나요? 이건 어디에 두나요? 어떤 용건으로 묻든 나는 그럴 작정이 아니었더라도 갑자기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경계심이 바짝 든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러니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런 배려가 무척 어여쁘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나 고양이의 보드라운 등을 톡톡 두드리듯이 살며시 다가가 물꼬를 트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혹시’라는 말도 그러한 쓰임으로 종종 말 앞에 붙습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질문이 당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사려 깊은 마음입니다. 이외에도 ‘실례지만’, ‘저기’, ‘안녕하세요’ 같은 말들이 더 있겠지요.
질문은 답을 요구하기 위해 쓰이는 단순히 기능적인 말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을 노크하여 처음으로 물꼬를 트고 서로의 목소리를 나누는 소통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대답을 듣는다’는 나의 의도만을 일방적으로 들이미는 듯한 저돌적인 말투는 상대에게 위협적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사려 깊게 다가가는 핵심은 결국 ‘저는 당신을 해할 사람이 아니랍니다’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고작 화장실이 어디 있냐는 질문만으로도 누군가와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조금 더 포크의 언어보다는 스푼의 언어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 한 가지 요령이라면 ‘나’라는 글자를 슬쩍 끼워 보는 것도 담백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해도 돼요?” 보다는 “해도 되나요?”, “어딨어요?” 보다는 “어디 있나요?”가 상냥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닢(라이프마인드) 네이버 블로그에서 소소하고 편안한 일상 이야기도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