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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Jan 22. 2022

겨울에 태어난 모든 이에게

강릉에서 부친 편지들

1월 19일 수요일



엄마에게.


난 지금 기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어. 홀로 강릉으로 여행 가는 길인데, 선물처럼 이른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려서 창밖이 온통 하얀 세상이야. 난 눈 내린 풍경 중에서도 사철나무 위에 앉은 버섯 같은 눈덩이를 보는 걸 좋아해. 그나저나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쓰는 편지는 매력 있네. 한 문장 쓸 때마다 보이는 장면이 달라지잖아.


엄마가 24년 전 내게 보낸 편지의 첫 답장을 해. 엄마는 20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오랜 편선지에 답장을 쓰게 될 거라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겠지. 내가 전주를 떠나 몇 년째 서울에 살고 있을 거라는 것도. 이렇게 홀로 땅끝 동쪽 마을을 여행할 정도로 훌쩍 자랄 거라고도. 홀로 강릉은 처음이야. 아니, 애초에 겨울에 홀로 어딘가에서 자고 오는 여행이 처음이지. 몇 년 전 베트남도, 겨울에 떠났지만 거긴 여름이었잖아.


겨울에 태어났으면서도 24년째 겨울이 서툴러,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추위를 타고, 삭막한 풍경들을  견뎌해.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나름 즐겁게 나면서도 항상 겨울을 건너가는 스스로를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지. 이런 내가 어떻게  추운 곳을 향해 훌쩍 떠날 결심을   있었겠어.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깨달은  하나 있어. 그렇게 추워하면서도 그동안 나를 위해 목도리나 장갑 같은  사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를 위해 처음  목도리를 두르고, 강릉으로 가고 있어.


요즘 겨울을 어떻게 하면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내가 시작된 계절이잖아. 사주를 봤는데, 나보고 '겨울에 핀 아름드리 나무'래. 그래서 기본적으로 늘 춥다고, 항상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온기를 받으며 함께 있어야 한대. 그 덕인지 내 주변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많아. 스물여섯의 엄마는 내가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 아이가 될 거라고 확신했더랬지. 스물다섯이 된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또 추운 겨울을 나고 혼자 여행을 떠날 힘도 가지는 거지. 여행도 힘이라는 걸 깨달아.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 가면서 눈을 아주 유심히 바라봤어. 비가 눈이 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잖아. 그렇게 눈송이로 불어난 마음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어. 바로 내리는 마음 말고 지연된 마음들 말이야. 나도 엄마에게 그렇게 보내지 못한, 지연된 편지가 꽤 많아. 결국 전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느끼게 되는 편지들. 말로도 상처를 주는데, 시간을 들여 한 자씩 써내려간 편지로 상처주는 일은 역시 할 짓이 못 되잖아. 오래 걸려 썼지만 아마 평생 전할 일 없을 거야. 버리지는 못하겠어서 남겨두고 있지만, 눈처럼 기다려지는 이야기들만 전하면 좋을 거야.


기차는 지금 서울을 벗어나 점점 더 산골을 향해 달리고 있어. 20년이나 늦은 이 답장은 얼마나 지연되었던 걸까. 아까보다 눈발이 더 거세졌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



O에게.


실은 강릉에 오기까지 숱한 의심을 거듭했어. 정말 강릉이었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거든. 원래 제주에 가고 싶은 거였다고 말이야. 강릉에 가지고 갈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난 새로운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리고 일부는 어느 정도 맞지만) 자꾸 익숙한 곳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고. 왜, 스무살이 되고 부터 여름에 일본만 갔잖아. 그리고 은지가 어느 해 문득 베트남에 가자고 했을 때도 새로움에 설레서 티켓은 끊었지만, 마음 한 쪽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일본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이미 수없이 다녀온 곳이니까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잖아. 반면 베트남은 나에게 어떤 정보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결국 그 여행도 무척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지. 일본 외에 처음 가 보는 새로운 나라였어. 이번에도 홀로 여행을 가고자 다짐했을 때, 마음이 계속 제주로만 쏠렸어. 여름에 다녀왔던 제주가 너무 좋았으니까.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난 늘 이런 식의 선택을 반복해. 새로움을 찾아 나서고 낯선 선택을 하지만, 익숙함에 등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남지. 그런데 그거 알아? 그렇게 떠난 곳은 대부분 천국이었다는 거.



엄마에게.


오랜만에 두통이 도져서 약을 먹었어. 사실 그래서인 건 아니지만, 오늘 하루는 솔직히 말하면 무척 지루하고 외로웠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투성이였거든.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기대하며 간 서점은 규모만 클 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수 없었고, 실컷 먼 길을 버스 타고 간 외곽의 소품샵도 볼 게 없었어. 여기 떠나오기 전에 시리얼만 먹어서 저녁이 채 되기 전부터 배가 고프더라고. 가고 싶은 카페 근처에 장칼국수 맛집이 있다길래, 추운 바람을 헤치고 구비구비 걸어갔는데 개인 사정으로 임시 휴무라는 거야. 아쉬운 대로 아무 식당이나 찾으려니, 어떻게 된 일인지 죄다 4시쯤엔 문을 닫더라고. 카페는 무척 내 스타일이었지만, 배가 고파서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을 마음이 나지 않고,  영업도 7시까지라서 애매하게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어. 다 포기하고 게스트하우스로 가려는 택시를 잡고자 마음 먹었을 때, 눈 앞에 보인 아무 가게에서 먹었던 장칼국수와 메밀전만이 오늘의 단 한 가지 행복이었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을 땐 너무 춥고 황량해서 싼 값을 찾느라 이곳을 택한 게 슬퍼지기도 했어. 역시 아직은 겨울 여행은 나에게 무리인가봐, 라고 엄마한테 통화하면서 말했지. 원래 2박3일을 각오하고 온 여행이었는데, 그냥 내일 돌아갈까 싶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서울로 돌아가는 KTX를 바로 끊었어. 약을 먹었는데도 두통은 심해질 뿐이야. 솔직히 사뭇 외로웠어.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떤 여행을 가서도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겨울은 아무래도 날 한없이 위축되게 만들어. 난 오랫동안 겨울을 좋아하고 싶다고 말해왔어. 겨울에 대한 애호의 부재가 어떤 결여처럼 느껴졌어. 난 그래서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다고 말하는 대신, 좋아하고 싶다고 말해왔어. 그러면서 줄곧 여름에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단,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도 부러웠고. 겨울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게, 나에겐 나를 이루는 어떤 근원인 무언가를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어. 그래서 겨울에 여행을 떠난 거야. 힌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봐, 라고 말해야만 했을 때의 내 표정은 얼마나 침울했는지. 엄마가 직접 보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일 바로 서울로 돌아갈래.



O에게.


얼음이 녹은 하이볼을 마시며, 강릉의 LP바에서 먼 이국 가수의 음악을 듣는 일. 신청곡을 써서 드리자, 사장님은 준비하는 동안 다른 노래를 하나 틀어주시겠다고 하셨어. '준비'. 난 이토록 낭만적인 준비를 들어본 적이 없어. 음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에 깃드는 또 다른 음악과 짤막한 대화들. 그동안 나에게 '준비'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일 뿐이었는데. 다르게 바라보면, 채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야.



신에게.


지금 강릉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 어제 충동적으로 KTX 표를 끊었거든. 혼자 온 여행이야. 아침부터 서울엔 눈이 왔는데, 기차가 달리는 내내 창밖이 온통 설국이더라. 근데 강릉에 오니 눈은 한 줌도 볼 수 없었어. 밤이 된 지금에서야 내리기 시작했거든. 새벽 내내 내릴 거래. 내일은 눈을 헤치고 동해 바다를 보러갈 거야. 실은 오늘 풀리는 일이 없어서 시무룩한 여행이었는데, 지금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LP바랑 같이 하는 곳이거든. 아까 하이볼을 마시면서 엄청 크고 좋은 스피커로 명곡들을 몇 시간이나 듣고 왔는데 무척 좋았어. Queen, The Beatles, Oasis, 김광석, 유재하, 이선희 등... 너도 음악 좋아하니까 이런 데 오면 좋을 거야. 전역하거나 휴가 나오면 LP바 같은 데 가서 시간을 보내 봐. 아까 침대에 누워 친구와 1시간 넘게 통화했는데, 각자 걱정이나 불안에 관한 얘기를 했거든. 통화를 끊고 샤워하면서 든 생각은,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하겠다는 거야. 내 자신을 친구 삼고, 내일은 조금 덜 외로운 여행을 해 보려고! 바다가 예뻤으면 좋겠다.




1월 20일 목요일.



은지에게.


거리에 온통 눈이 왔어. 어제는 눈이 없어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단숨에 기분이 좋아진 아침이야. 체크아웃을 마치고 카페에 왔는데, 여행지의 아침에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사람이 별로 없는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고, 커피와 디저트를 음미하며 시집을 읽는 기분을 아니? 아침에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카페에서 여유를 가진 게 얼마만인지 싶어. 나에게 카페는 대부분 작업을 위해 오는 곳이라, 늘 콘센트가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이었거든. 어쨌든, 다다미 위에 다리를 펴고 시집을 폈는데 너에게 기쁜 소식이 와 있었어. 우수장학생으로 고등학교까진 졸업할 수 있다고 쳐도, 대학은 어떻게 가능한 거니? 세상은 역시 우리 촌년들이 지배하게 될 테야. 아침부터 먼 곳에서 너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기분 좋은 아침이야. 그러고 보니 너는 서쪽 끝에, 난 동쪽 끝에 있네. 이곳에서도 너를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는 찰나를 가지게 되어서 행운이야.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거든. 홀로 여행에 꼭 필요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 여름 여행을 각자 다녀와서도 편지를 주고 받았잖아. 제주에서 돌아왔는데, 나보다 한 발 앞서 돌아온 너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지. 한라봉을 직접 그린 엽서에 적힌 마지막 말은 이랬더랬지. '너만큼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는 사람은 없을 거야. 여행 후기 알려줘'. 그렇게 제주 여행 후 여름 감성이 물씬 나는 답장을 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난 겨울의 고장에 와 있어. 넌 그 편지에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해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가면 아침에 꼭 카페를 한 곳 들러보는 건 어때? 넌 부지런하니까 아침 일찍 카페에 가는 것쯤 누워서 떡 먹기겠지!



세음씨에게.


'그런 날이 있지. 내일은 더 잘 될 거예요.' 어젯밤 세음씨의 위로는 제게 큰 위안을 줬어요. 단순할수록 전해지는 마음이 있죠. 어제와 오늘은 다를 거라는 말은 기분 좋은 리셋을 하게 해 주네요. 그 덕분인지 아침에 일어나 카페로 걸어 오는 내내 상쾌한 기분이었어요. 바닐라아인슈페너와 당큰케이크를 먹으며 시집을 읽고 있는데, 시집의 모서리에 무지개가 내렸어요. 잔에 비친 아침 햇살이 일곱 빛깔로 쪼개지는 동안 전 겨울을 음미하고 있었어요. 마침 산뜻한 소식이 도착해서요. 참, 공교롭게도 무지개가 가리킨 단어가 뭐였는 줄 알아요? '오늘 아침'.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요. 세음씨도 연차를 내고, 새로 산 테이블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죠. 좋은 하루가 되기를!



윤정에게.


임선기 시인의 시집 <거의 블루>를 읽다가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어서 말이야. 우리 어젯밤에 통화하면서 속도와 집요함에 대해 대화했잖아. 치열하게 살고 싶은데 타협하게 된다고. 그렇게 늘어지는 순간마다 자괴감과 조급함이 들고. 하지만 대개 그 치열함의 반복 끝에는 번아웃이 있다고 말이야. 그럼에도 우린 더욱 부지런히, 열심히, 알차게 살고 싶어하는데, 그러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보폭이 옳은 걸까 싶었지.


<눈 4>라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을 해. '눈이 참 느리게 내린다 / 초고속의 시대에 눈은 / 빠르게 내려도 / 참 느리게 내린다. (중략) 눈 보고 / 게으르다 하지 않으시니 / 부지런하다 하지 않으시니 눈은 / 참 / 그대로 내린다. /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그대로 내린다 ...' 눈은 단지 있는 그대로 내릴 뿐이라는 거야. 느리게 내려도 빠르게 내려도, 그저 내릴 뿐 그 속도를 두고 게으르다느니, 부지런하다느니 해석하지 않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도 그냥 있는 그대로 달려볼까? 어떤 고집을 부리고 어떤 타협을 하더라도, 결코 게으르다거나 부지런하다고 말하지 말고.


그리고 <추일서정>이라는   하나를 전해. '우리는 언제나  위에 있다 / 한없이  곁에 있다'. 각자 길은 다르더라도, 함께 걸어간다는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여행지에서 편지와 시집과 함께하는 일은  뜻깊은  같아. 이렇게 건넬  있는 언어들이 있다는  기쁜 일이야! 아, 참! 어제는 정말 생일 축하했어.



O에게.


창 밖을 보면 곧장 다른 계절을 상상하게 돼. 가령 눈 덮인 나뭇가지를 보며 여름을 상상해 보는 식인 거지. 여름에 다시 온다면 창이 온통 초록으로 무성하겠구나, 하고. 그 상상력이 오늘을, 다음 계절을 살아가게 해. 이 마을도 사랑하게 되고. 내가 앉은 다다미와 작은 소반에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드리워지고 있어. 이럴 때면 때로 볕 또한 셀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볕을 세는 수사는 뭘까. 개, 쌍, 줄기, 자루, 점 이런 것 외에... 모금과 움큼 사이 그 어디쯤?



윤정에게.


어제 우리 전화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잖아.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난 것 뿐인데, 거기에 해석을 더함으로써 걱정과 불안으로 만드는 거라고. 난 이런 예를 들었고. 난 아침잠이 많아서 좀처럼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데,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거의 항상이지만) 기분이 몹시 나쁘다고. 어느 날, 그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그건 바로 내가 '등호(=)'를 쓰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이야. 늦게 일어난 날은 그날 하고자 했던 것들을 다 못하고, 나의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생산적인 에너지를 잃는 날로 귀결된다는 듯이 동일시를 하고 확대 해석하는 거야. 벌어진 일은 단지 '12시에 일어났다'는 사실 뿐인데. 그 사건에 부정적인 해석을 더하면서 '걱정화'시키는 건 늘 나였어. 이런 경우 외에도 난 대부분의 순간을 고단히 해석해 왔어. 그러다 오늘, 바다를 보고 깨달았어. 이 이야기를 말하고자 해.


난 지금까지 바다에 가면 파도만 봤던 것 같아. 뭘 봐야 할지 몰랐거든. 시선을 사로잡는 거라곤 끊임없이 생성되고 모습을 변주하고 다가오고 몰아치고 부서지는 역동적인 파도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 파도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더 먼 곳, 수평선과 가까운 중심이 보였어. 그곳은 놀랍게도 평정의 상태더랬지. 그 어떤 파도도 중심에서 시작되지 않고 있었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모래사장으로 다가오는 어드메쯤부터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야.


이건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발견이야. 말하자면, 우리가 시달리고 있던 것은 단지 파도였던 것 뿐인 거지. 모래를 향해 몰아치면서 생겨난 어떤 임의의 해석 같은 거야. 실은 우리의 아주 깊은 중심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던 거지. 그 어떠한 순수도 진심도, 그저 변두리로 가는 과정에서 편견이 생기고 잡념이 더해진 파도 같은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스스로 부서질 뿐이었던 거야. 그렇게 우리에게 몰려오는 그 파도들만을, 우리는 당장 감당하기 버거운 온갖 불안처럼 괴로워하고. 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니까. 무서운 기세로 달라드니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인간 중심의, 나 중심의 너무 편협한 해석이 아닐까? 파도는 그냥 생기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 건데, 모래사장에 서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늘 '다가온다'고 생각하잖아. 바다의 입장에선 그냥 멀어져 가는 것, 뻗어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그래서 말이지, 나 이제 불안의 실체를 조금 알 것 같아. 우리를 압도하는 불안과 걱정들은, 말하자면 그냥 파도인 거야. 우리의 진짜 마음은 수평선 가까이 바다의 중심에 있어. 우린 흔들리지 않았던 거야, 실은.



O에게.


어쨌거나 나아가야 하니까, 한 방향을 향해 계속 걸었어. 눈이 많이 쌓여서 내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 발끝만 보고 걸을 수 밖에 없었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막상 절경인 바닷풍경은 곁에 내버려 두고, 내 발만... 하얀 설원만 보고 걷게 되는 거야. 옆에선 파도가 어김 없이 내 쪽으로 몰아치고. 실컷 바다를 보러 동쪽 끝까지 왔는데 발만 보고 걷는다는 게 내심 아깝게도 느껴졌는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옆에서 파도가 생성되고 몰아치는 걸 알면서도 꿋꿋이 내 발끝만 보고 가게 되더라. 난 그게 나의 하루하루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 매일 눈이 수북이 쌓인 해변가를 묵묵히 걸어가고, 옆에는 바다의 형상을 한 거대한 마음이 있는 거지. 그 마음에서 생겨난 파도들은 나를 향해 계속 몰아치고, 난 그러려니 말거니 계속 걷는 거야. 가야될 곳을 향해. 충분히 감당해 볼 수 있는 일상일 듯 싶더라고. 영화 <러브레터>의 ost인 a winter story를 들으며, 혼잣말로 속삭여 봤어.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그 대사만 몇 번이고 거듭해서. 겡끼데스, 겡끼데스, 말하다 보니 정말 겡끼데스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뒤돌아 보니, 태아의 형상을 한 구름이 (알고 보니 공장의 연기였던 듯 해) 웅크려서 숲 위로 떠오르고 있었어. 난 아주 중요한 어떤 처음을 목격한 사람처럼, 아니 처음이 아니라 재생일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온 길을... 하늘을 올려다 봤어. 그 눈길을 걸어 온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져 있다고 느꼈어. 한낮의 태양이 나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아주 동그란 빛으로. 하나의 거대한 세상으로 품고 있었어. 이제부터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지.



란에게.


홀로 강릉 바다를 보러 왔어. 숲을 헤치고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다였어. 새벽 내내 여긴 눈이 왔거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이런 말이 있잖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난 고작 숲을 빠져나온 것 뿐이었지만, 어쨌든 앞엔 눈부신 설국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 오랫동안 넌 바다를 좋아하고 난 산을 좋아했잖아. 근데 네가 왜 바다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 산에선 한 번도 난 적 없던 눈물이 났어. 그동안 난 겨울이 좋다 말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아. 난 겨울에 태어났으면서도 겨울에 동화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었거든. 그런데 마치 고민처럼 때론 삶 그 자체처럼 몰려 오는 파도를 옆에 끼고 겨울의 눈밭을 끈질기게 걸어 오면서, 이제서야 내가 겨울을 닮은 사람이란 걸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 기분이 꽤 좋더라. 마찬가지로 겨울에 태어난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란아.



윤정에게.


어제 통화했을 때, 네가 이렇게 말했지. 나답지 않은 여행을 했네, 하고. 말마따나 어제부터 오늘 내내 나답지 않은 결정들만 했어. 충동적으로 열차 표를 끊은 것부터 이 지독한 여정의 시작이었지. 여행지에서 (어제) 커피를 마시지 못했고,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맥주 대신 하이볼을 마셨지. LP바로 록음악을 듣는 것도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고. 나답지 않은 여행은 오늘도 이어졌어. 아니, 오늘이 더 절정이었어. 어딜 가나 카페라떼만 마시는 내가 오월에서는 바닐라아인슈페너를 주문하고, 디저트를 먹지 않는 내가 당근케이크까지 먹었지. 그리고 추위에 끔찍이도 연약한 내가 겨울의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맹렬한 해변가를 몇십 분이고 걸었고, 아무리 맛집이라고 할지라도 줄 서서까지 먹지는 않는 내가 30분 가량의 웨이팅 끝에 지금은 카페 툇마루 안에 들어와 있어. 그런데 여기서조차 카페라떼가 아닌 흑임자라떼를 시키고, 감자치즈마들렌까지 먹은 거 아니?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가장 할 법하지 않은 선택들 끝에 남은 게 완벽한 하루라고 한다면. 무언가를 모르는 새에 훌쩍 넘어온 기분이 든다면.



O에게.


난 겨울에 태어났어. 그런데도 겨울을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려 했던 적 없었어. 추위를 품은 만큼 남들보다 배로 힘껏 더 따뜻한 쪽으로 걷는 것만이 내게 부여된 숙명 같았어. 그런데 겨울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게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다는 선고를 받았어, 이 파도로부터. 발목을 시리게 옥죄어 오는 드넓은 설원으로부터. 그렇게 난 내가 시작된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처럼 파도를 눈으로 좇았어. 추위에 두 볼이 빨개진 유년의 나를 만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과거로, 기억으로. 그럴 수 있었던 건 이틀 뒤 내 생일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야.


바다를 바라보며 수지가 부른 <겨울아이>를 듣는데, 내가 펑펑 울어버렸던 까닭이 뭔지 알아? 내가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도, 눈처럼 깨끗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서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난 나를 시작하게 한 계절인 겨울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각오로 겨울 바다 앞에 섰는데, 나는 사계절을 모두 건너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실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겨울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의 시작은 내가 이 계절에, 한 해의 시작인 1월에 태어났음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어. 그토록 좋아하고 싶어 애썼던 계절 한가운데 생(生)이 시작되었음을 확실히 인식하는 일이었어. 겨울을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해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마침내 난 어쩌면 또 한 번 태어났다고 느꼈어. 해는 어느새 완전히 저물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이야. 난 또 걸어보려고 해.



어라,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해변가를 따라서 몇십 분을 계속 걸어나갔던 일이 이제껏 단 두 번 있었어. 오늘, 그리고 아주 먼 유년의 기억이야. 말하건대, 아마도 그 사건이 나에게 고질적인 불안을 심어준 결정적인 일이었던 것 같아. 갑자기 그때가 생각이 나네.


기억에 의하면 여덟 살 전후의 일이야. (동생이 적어도 걸어다닐 수 있는 나이였을 테니까) 물 속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다 해변가로 나왔을 땐, 엄마아빠가 보이지 않았어.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돗자리도 파라솔도 익숙한 얼굴들도 보이지 않았지. 그렇게 해변의 끝과 끝을 절벽과 절벽 사이를, 호를 따라 걸었어.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두어 번을 왕복했을까. 그때의 내게 하나의 해변이란 거대한 세상과 같았고, 난 동생에겐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란 각오를 다졌어. 아마도 그때 난 불안이란 손님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아닐까. 그게 이어져 여지껏 평생. 난 그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런데 공교롭게, 오늘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해변의 끝을 좇아 걸으면서 불안이라는 걸 제대로 마주하고, 이 녀석과 제대로 싸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아니, 싸운다기보다 화해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내가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잖아.  생각해 보면 난 내가 내 친구라고 생각하면 든든할 것 같아. 어둑해진 해변을 걷다 다시 멈췄는데, 내 옆에 두 개의 그림자가 더 있더라고.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일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다 나의 그림자였어. 조명 때문에 하나의 나로부터 세 개씩이나 되는 그림자가 뻗어나온 거였어. 내가 손을 들면, 그 친구들도 손을 들고. 내가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들도 올려다 보았어. 그러니까 이 든든한 느낌. 난 분명 혼자 여행 온 셈인데, 셋이서 바닷가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 옆에서 어느 커플이 불꽃놀이를 쏘네. 그 불꽃놀이를 나와, 나와, 내가 봐.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실없는 생각을 하는 내내, 한없이 수평선으로 달아나는 빛.


겨울에 태어난 나에게, 생일축하해 원아.



란에게.


작년 여름, 제주 밤바다 저 먼 곳을 가리키며 우리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 했잖아. "진짜 까맣다. 아무 것도 안 보여. 마치 우리의 미래처럼." 근데 오늘 저 멀리 수평선 가까운 곳, 바다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되었어. 마음. 개인의 마음이었어. 변두리로 들이박을 때마다 산산히 부서지길 반복하는 연약하고 덧없는 불안 너머에, 실은 굳건하고 고고하게 자리한 마음의 중심이 있던 거야. 다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던 그곳에 있던 건 바로 내 마음 가장 깊숙한 자리, 흔들리지 않는 뿌리였어.



가은언니에게.


실은 그저께 언니가 선물해 준 꽃병이 깨졌어. 설거지를 하다가 도마가 꽃병을 향해 쓰러졌지 뭐야. 뭔가가 깨지다니, 왜인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해 있다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그 연락을 받자마자 이러려고 이랬나 싶더라고. 그런데 엄마가 딱 두 글자로 말하더라고. '액땜'. 거의 동시에 난 왠지 언니가 선물해줬던 그 꽃병이 엄마를 대신해 다쳐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 대신 화를 입어준 거라고. 소중한 마음이 담긴 사물은 기물이 되기도 한다잖아. 언니가 꽃병에 담아 준 마음이 엄마가 더 큰 화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준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예쁜 꽃병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휩싸일뻔 한 일이 되려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어. 언젠가 나도 언니를 보호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오후 홧김에 강릉에 오는 KTX 표를 끊었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여기 오게 된 그 최초의 출발점이 어쩌면 그 꽃병이었을지도 몰라. 좋은 여행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난 곧 서울로 돌아가.



함께한 노래들.


Flower Flower - 冬

"언제까지나 이어져 나를 있게 한 공기를 들이마셨어. 보였던 것은, 그저 보였던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어. 돌아왔어. 이곳에.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 그저 눈물이 나. 다시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 진심으로."


Flower Flower - 春

"그래, 인생은 돌고 돌지. 형형색색의 일상에 멈추는 때도 나아가는 때도 계속 곁에 있을 거야. 두려워도 분해도 지금은 지금 뿐이야. 나아가자."


The Beatles - Norwegian Wood

"내가 잠에서 깼을 때 난 혼자였고, 이 새는 날아가 버렸어. 그래서 불을 질렀지. 멋있지 않아? 이 노르웨이산 나무 말야"


The Beatles - In My Life

"제가 기억해야 할 장소들이 있어요. 살아가는 동안, 일부는 변했죠. 하지만 어떤 건 영원해요."


Sing Street - To Find You

"난 내가 누군지 알아내야 해. 그리고 이제 뭔가가 바뀌기 시작한듯 해. 아직 갈 길은 남았지만, 내가 태어났던 그 날부터 나 널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널 만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널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수지 - 겨울아이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 하지만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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