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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Feb 03. 2022

우리는 언제까지 설익으려나

성숙으로의 역행, 영화 <해피아워>

해피아워(2015)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러닝타임 : 328분



등 돌리고 있을 때, 마주치는 것



녹음이 울창한 숲 속 깊이 올라가는 전차로 시작되는 영화.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인생의 성숙한 중반부로 진입하는 네 명의 여성 친구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각자 현실을 잠시 벗어나, 친구들끼리 여행하는 행복한 시간, 해피아워 속으로 진입하는 듯 보인다.



오랜 친구 사이인 네 명은 어느덧 각자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신경 쓰이는 시부모도, 권태로운 직업도, 이혼한 과거도 있다. 저마다의 사정을 이고 만나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처음 만났던 젊은 날의 소녀처럼 서로를 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어느 날 준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사정을 대뜸 폭로하고, 이후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네 사람의 우정에 불안정한 파장이 일기 시작한다.




극도로 인간화된 관계에서의 동물화



극 중에선 다소 기묘한 신체 워크숍이 등장한다. 바로 '중심잡기'. 타인과 등을 맞대고, 이마를 맞대고, 단전의 소리를 들으며 원초적이고 긴밀하고 동물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묘한 끌림과 원초적인 두근거림이 형성되는 일.



우리는 때로 예의를 갖추고 미소를 띠며 대화를 주고받으면 그걸로 훌륭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고 믿지만, 실은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감추거나 정제했던 모든 대화  말들은 어쩌면 허울이었을지 모른다. 탐스럽게 매달려 있지만   베어 먹으면 떫은맛이 나는 설익은 과일처럼. 삼켜내기 어려운 배려와 진실들. 나의 중심을 타인과의 접촉과 교감을 통해 바로 세우는  동물적 행위는, 우리가 사회적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동물성을 상실시킨 현대의 문명사회에 역설적인 힌트를 던진다.




25년 만에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오랜 우정을 확신할 때 흔히 '몇 년 지기'라는 증표를 내세운다. 숫자가 클수록 공유하는 게 많은 깊은 관계라는 게 증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씁쓸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 세월만큼이나 각자의 격차도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나 40대가 된 두 사람은 안타깝게도 영원히 중학생 소녀가 아니다. 손바닥을 마주치며 살을 맞대고 소꿉장난을 하던 어린 시절은 지났다.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사이는,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오래 알았다는 것이 그만큼 그만한 세월을 훌쩍 넘어 서로 변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서, 겨우 새로운 중심잡기가 시작된다. "넌 예전부터 그런 식이었어"란 말로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월을 포장하는 허울을 벗어던지는 리셋(reset)이 필요하다. 25년이 지나 40대가 된 우리의 중심을 다시 잡아 볼 차례다. "25년 만에 다시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아주 정중한 인사를 건네본다.


"계속 알고 지냈는데도 처음 알게 된 느낌이야."

"그럼 처음 뵙겠습니다."

"응, 25년 만에 드디어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는 무르익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익어간다



어른의 내밀한 삶을 다룬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타 영화의 대사가 있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 말.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됐어?" 이 말에 흔쾌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어른이 되면 갈수록 무르익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상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만 역행할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을 거듭해도 언제까지고 미성숙한 나로 남아있을 뿐이다.



덜컹거리는 전차 안에 몸을 싣고 녹음 속 미지의 터널을 향해 올라가는 그들은 여전히 시시각각 새롭게 마주하는 풍경 대신, 이미 지나온 풍경을 바라보는 걸 택한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각자의 시선에 담기는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모르는 건 등지고 싶고, 어깨는 맞대고 싶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푸르른 성숙 속으로 내몰리고 싶은 이들.



"나도 겁나는 것 투성이야. 계속 제자리걸음이고.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진정한 삶의 한 토막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거든.


이제 타협 대신 질주를 하고, 안정보다 위험을, 체면보다 욕망을 향해 마음이 가는 대로 삶을 내걸기 시작한 이들은 흡사 사회가 아닌 야생에 던져진 동물처럼 새로운 교감을 시도한다. 각자의 삶을 마주할 뿐인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비로소 찾아온다. 그렇게 인생의 또 다른 막으로 갈아탄 진정한 성숙을 위한 역행, 그들만의 해피아워가 시작된다.


"전차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고 나면 이제 목적지까지 역 하나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커브를 돌자, 앞쪽에 검은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향해 좌우의 녹음 사이로 선로가 한 줄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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