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잎을 혀 안에서 굴려 보며

사탕보다는 어떤 얇은 것을 한 장 한 장 계속 떠내는 감각으로.

by 위시

보릿잎, 이라는 단어를 본 이후로 그 말을 아까부터 계속 혀 안에서 굴려 보고 있다. 사탕보다는 어떤 얇은 것을 한 장 한 장 계속 떠내는 감각으로. 마치 어제 젓가락으로 가까스로 떠내며 먹었던 명이나물처럼. 보릿잎. 보릿잎. 생각으로도 하고 말로도 해 보고 써 보기도 하고 타이핑 해 보기도 한다ㅡ타이핑을 하다 보면 가끔 '모릿잎'이라고 쳐질 때가 있는데 그 단어가 내심 마음에 들어, 어떻게든 앞으로 계속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ㅡ. 어쨌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보린닙'처럼 감각되는 순간이 찾아 오는데, 그 이후로는 돌이킬 수 없이 보린닙, 보린닙 하고 'ㄴ'과 'ㄴ'이 맞붙는 자리에 애틋함을 실어 말하게 되는 것이다. ㄴ을 의식하며 말할 때 혀가 입천장 끝과 앞니 뒤에 야무지게 가닿는 무해한 감촉과 심상이 마치 예쁘게 도려낸 손톱처럼 느껴진다. 손톱달이라고 말할 때의 그 귀엽고 단정한 호 모양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이시옷을 남발하는 말버릇과 글버릇이 생겼다. 단어와 단어 사이를 좀 더 밀접하게 붙이고 얽혀내고 싶은 나의 알량한 욕구에 단어들은 속절없이 문장 위로 끌려 와 'ㅅ' 위에 앉거나 옆에 누워버린다. 베갯잎, 한 입... (쓰고 보니 이건 사이시옷이 아니다). 머릿말, 꼬릿말. 사이시옷이 붙는 모든 말이 ㄴ 발음을 내는 건 아니다. 가령 '맥줏방울'처럼. 아무데나 'ㅅ'을 남발하고 있는데, 카페의 소리를 '카펫소리'로 말하려다 카페가 카펫이 되어버리는 지점까지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파돗소리, 바닷내음, 빗줄기, 종잇자락, 토낏풀, 엄짓손톱... 개중엔 말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있다. 어쨌든 받침이 없는 음절엔 다 갖다 붙여볼 수는 있다. 맘대로 할 수 있는, 몰래 저질러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이다. 동시에 발화되는 글과 말인 주제에 누구도 해할 여지 없는 몇 안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개소리를 갯소리로 말하거나 쓰고, '아, 이것은 갯벌이 아니라 개의 소리를 말하는 것이군요'라고 눈치채고 말해 올 수 있는 사람과는 단번에 친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의 이름도 받침 없이 끝날 경우 사이시옷을 붙여 이런 저런 것들을 그에게, 복종시킬 수도 있겠지. 나의 이름은 'ㄴ' 받침으로 끝나서, 사이시옷을 붙일 여분의 자리도 붙여볼 만한 것들도 없다. 그 여지없음이 마음에 들지만, 역시 내가 발음할 많은 단어들은 받침이 몇몇 결여되어 있어 사이시옷을 붙여 보는 재미를 안겨다 줄 수 있는 것들이 좋다. 사이시옷은 '의' 대신 쓸 수 있는데 가령 나비의 날개를 '나빗날개'라고 말하거나, 매미의 몸을 '매밋몸'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명사와 명사를 이어 고유명사를 만드는 다정한 짓거리, 은밀히 그런 짓을 하다 보면 오후가 꼬박 간다. 언젠가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나만의 사이시옷 사전을 펴내야지, 생각하면서.


22.7.13. a extract of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