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 폭기하고 폭독하기

심지어 폭음까지 곁들이겠다고

by 위시

이틀 연속 같은 카페에 와 있다. 어제는 폭우가 내렸고, 마치 브루클린의 어느 폐공장을 개조한 듯한 높이의 큰 창 밖으로, 작년 여름에도 재작년 여름에도 본 적 있을 성 싶은 풍경을 내다 보았다. 연속으로 같은 카페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근처의 브런치 카페에 가려 했다. 벌써 한 해 전에 새로 생긴 곳인데 여태까지 가 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 어떠한 오기가 있다. 내가 좋아해서 닳도록 많이 가서 그래서 익숙해진 곳이 영원히 최고라고. 아직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몰라서 가지 않아서 그래서 낯선 곳은 영원히 차선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아무튼 그곳을 큰 맘 먹고 탐험해 보기로 했는데, 유럽 교외의 농장 한가운데 지어졌을 법한 이국적인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카운터 앞에 서니 음료만은 주문이 안 된단다, 옘병. 이런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 사실 그렇게까지 빈정상하지도 않았으므로. 요즘은 많은 것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다. 쉽거나 어려운 것과는 별개로.


요즘은 매일 카페에 와서 매일 일기를 길게씩 쓴다. 내가 일기를 쓰는 것엔 무규칙 속에 규칙, 무법 중의 법 같은 것이 나름 있다. '매일매일 쓰지 않을 것', '매일 쓴다면 길게 쓰지 않을 것'. 그런 이상한 고집이 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쿨해 보이는 일과는 거리가 머니까. 난 쓰고 싶을 때만 써. 쓰고 싶은 부분까지만 써. 이런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난 간헐적으로만, 별 고민하지 않아도 튀어나오는 반사적인 문장만을 적어 왔다. 사실 나에게 일기를 쓰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일도 아니어서 더 그렇다. 일상 속 많은 일이 그렇듯이. 하지만 또 일상 속 많은 일이 그렇듯이 이따금 그것이 며칠 동안은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하루종일 그것만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축복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그 욕망을 절제하려 하다가도 요즘은 이내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또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시기가 다시 오겠냐고. 그러니 그냥 실컷 해 버리자고. 그렇게 이렇게 며칠 연속 엄청난 분량의 일기를 쓰고 있다. 이 또한 얼마 안 가 시시해지겠지, 하면서. 최근 일주일 동안 여덟 장 반을 썼는데, 세어 보니 5월과 6월 두달치 분량이었다. 평소라면 두달 걸려 겨우 탐닉했을 페이지를 7일 만에 독식한 것이다. 말하자면 폭식이 아닌, 폭기(爆記)인 것이다.


난 종종 폭기한다. 서너달 동안 소설은 쳐다도 안 보다가 어느 날엔 갑자기 삘이 꽂혀 일주일 동안 십몇 페이지씩 호로록 써내기도 한다. 한 달 동안 책을 안 읽다가 일주일 만에 몇 권이나 독파하는 폭독(爆読)을 하기도 하고, 넷플릭스나 영화를 폭감(爆鑑)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때다 싶어 우걱우걱 삼키지 않고는 좀처럼 빠져들기 어려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학창시절 때는 몇 년이고 매일 같이 우걱거렸다. 지금은 그 지속기간이 짧아져 고작해야 7일 남짓이다. 폭식보다는 일정량을 골고루 매일 먹는 것이 좋다던데. 다들 루틴이 중요하다고들 하고 나 또한 루틴이라는 말에서 오는 산뜻한 어감을 꽤나 좋아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때 참 살아있었구나' 싶어지는 때는 그렇게 폭주한 수많은 폭행(폭적인 행위) 들이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순간들이다.


며칠 전, 카페에 오지 않고는 일기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서늘한 넋두리를 했지만 실은 카페에 오면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는, 더욱 너그러운 말이 더 옳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6월이 막 끝났을 무렵 한동안 카페와 라떼가 지겨워졌던 순간이 있었다. 카페와 라떼를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노트북을 철창 삼아 매달린 개 같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게 자존심이 상해서ㅡ난 많은 것에 자존심을 쉽게 상해한다ㅡ그것들을 다시 좋아하겠답시고 한동안은 노트북 말고 다른 것을 가져가기로 의도적으로 계획했다. 그 사물로 책과 일기가 낙첨되었을 뿐이다. 조건은 하나. 전기를 빌리지 않고도 읽고 쓸 수 있는 것. 그래서 굳이 콘센트가 있는 카페만을 찾아가거나 콘센트와 가까운 자리에 앉지 않아도 되는 것. 이 말을 쓰는데 갑자기, 큰 통창 너머로 갑자기 매미 소리가 찌르르 들려 온다. 그냥 매미에 대해 말해 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한다. 전기로만 작동하는 것들과 찌르르 거리는 매미 사이에는 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매미라는 단어를 꺼냄으로써, 콘센트로부터 해방되어 좋아하는 카페에서 마음껏 폭기하고 폭독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잠식된 여름의 감각이 좋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제는 폭우가 내렸는데, 갑자기 햇빛이 내리쬔다. 토요일엔 초복이라며 닭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K의 메시지. 폭우의 시기가 한차례 지나가면, 그 다음은 폭염이다. 그때까지 폭기하고 폭독하고ㅡ심지어 폭음까지 곁들이겠다고ㅡ단단히 마음을 굳혔다.


22.7.14 a extract of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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