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이게 했던 것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뭐든 똑바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날이 늘었다. 늘 뭔가를 똑바로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똑바로 걷는 것. 똑바로 앉는 것. 똑바로 내려 놓는 것. 똑바로 자는 것. 똑바로 웃는 것. 똑바로 말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똑바로, 생각하는 것. 하지만 방금 쓰면서 깨달은 것은, 읽거나 쓰는 것만큼은 지금 똑바로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지도 않다는 거다. 굳이 말하자면 마구잡이로 읽고, 엉망진창으로 쓰고 싶다. 다만 그 외의 것들은 정갈하고 가지런히 행하고.
원래 정말 엉망이 되어가는 것은 금세 바로잡고 싶지 않은 법이다. 바로잡고 싶은 것들일수록 엉망이 되어가기 마련인 여름에는ㅡ그러나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ㅡ습관 깨뜨리기가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똑바로, 괴멸하기. 즉, 나답지 않은 것들을 원래 해왔던 듯이 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한 듯이 하기. 예를 들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다거나(그러면서 이미 읽은 부분이라며 지루해하거나), 마구 줄을 그어가며 책을 폭행하듯 읽는다거나(그러면서 조금 더 가지런히 그었다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라떼 말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거나(그러면서 역시 라떼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거나),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만을 하거나(그러면서 삼마고(삼십일마다 고기 먹는 모임) 때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거나), 연필 대신 샤프를 쓰는(그러면서 실제로는 해 본 적 없는) 일들. 나다움으로부터 나다움으로의 일탈을 꾀하는 일종의 규칙 도미노. 은근히 흔들리고 있는 것들을 옳다구나, 아예 쓰러뜨려보는 정성스럽고 악착스러운 일들. 가령 지금처럼, 더이상 집에서는 진득히 앉아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되어 카페에 와서야 아무 말이나 몇 장씩 써내려가는데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다음 장으로 휙 넘어가 버리는 일상의 페이지가 어떠한 망측한 선고를 내리는 것만 같을 때. 더이상 나를 나이게 했던 것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동시에 옳다구나! 굳이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할 때, 통쾌하게 외쳐보곤 한다.
"CHECK MATE!"*
실은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이면서, 폼 좀 내려고 말한다. 하지만 이따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다 안다는 듯이 내뱉을 때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이 있다. 이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발칙하고 솔직한 고백들이 마음에 든다. 언젠가 이 뻔뻔한 마음들을 글감으로 써먹어야지, 생각하는 속물적인 마음까지도. 이건 슬쩍 끼워넣는 고백인데, 요즘은 말야. 잘 써진 글 말고 어딘가 엉망진창으로 써진,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타인의 '망작'을 마구잡이로 잡식하듯 쳐읽고 싶다. 그러니 별로인 별별 글들이 요즘엔 꽂힌다. 그러면서 함께 괴멸하는 비열한 즐거움을 몰래 만끽한다. 당신도 체크메이트군요, 나의 메이트(mate)!
* 체스 용어. 무슨 방법으로도 킹이 붙잡혀 버리는 'CHECK(체크)' 상태에 직면했을 때를 지칭한다. 말하자면, 완전히 패배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