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가방 하나 메고서 기차를 탔다. 여수엑스포역에 오전 열한 시쯤에 도착했다. 역 주변을 잠깐 배회하다가 버스를 타고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다. 혼자 꿋꿋이 밥을 먹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집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가면 저녁에는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버릇처럼 숙소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서 갔다. 오늘도 저녁이 되어서 여느 때와 같이 스타벅스로 가서 따뜻한 자몽 허니 블랙티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적었다.
예전에 혼자서 배낭여행을 왔었던 여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고 대학 친구도 마침 배낭여행을 하게 되어서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친구와 여행을 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지금까지 거의 혼자서 계속 여행을 해왔지만 오랫동안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온 터라 약간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다. 게다가 하루 먼저 도착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 오기로 했던 대학동창 용주가 갑자기 오늘 오게 되어서 우리는 밤늦게 이순신 광장 근처에서 만났다. 우리는 배가 고팠기에 곧장 바닷가 근처 포차 거리로 갔다. 처음에 봐 둔 조개구이집으로 갔지만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너무 시끄럽지 않은 분위기를 피해서 나름 적당히 한산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았고 최근에 소주를 잘 못 마셨던 기억이 있어서 안전하게 맥주를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여수 맥주가 따로 있어서 용주가 그걸 시켰는데 맛이 별로였다. 생각만큼 취기가 오르지도 않은 채 맥주는 바닥이 났다. 돌문어가 들어간 삼합과 딱새우 회 그리고 전복이 나오는 해산물 모둠을 시켰는데 안주에 비해 술이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주를 한 병 달라고 했다.
용주는 일상이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고 말을 재밌게 하는 편도 아니라서 주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먼저 하게 되었다. 보통 그렇듯이 스무 살에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던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 소주를 한 병씩 마시게 되었다. 오랜만에 취기가 올랐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종종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항상 술이 몸에 안 맞아서 못 마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용주는 그것은 사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취기를 한껏 내뿜으면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한참 걷다 보니 문득 예전에는 밤늦게 술에 취한 채로 집까지 걸어갔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잊힌 기억이 떠오르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급하게 예약한 숙소는 오래된 여인숙이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오늘 친구와 함께 자겠다고 했더니 만원을 더 달라고 했다. 친구는 이런 방에 돈을 더 받는 것에 대해서 비합리적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획기적인 방법이 없어서 얼른 만원을 더 주고 방으로 올라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성비가 별로인 것은 인정하지만 당장 잠만 자면 되는 우리의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었다. 내일 묵을 숙소는 쾌적하고 가심비가 좋은 곳으로 미리 잡아 놓았다. 나는 먼저 얼른 씻고 나서 바닥에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 용주가 타고 온 차를 타고 여수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용주가 아버지의 차를 몰고 온 덕분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십 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십 분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생각보다 오래 기다린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기다리면서 할 일이 없어 식당 리뷰와 메뉴판을 여러 번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미리 봐 둔 메뉴를 주문했다. 왜냐하면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뭐 시킬 것인지 물어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수육과 국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평소에도 혼자 밥을 먹다 보니 엄청 빠르게 먹는 편이었다. 용주는 아무 말 없이 태연한 척을 한 채로 나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뒤쫓아왔다.
우리는 쾌적한 숙소로 가서 편하게 짐을 풀고 쉬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세 시가 되었다. 나는 피곤해서 한숨 자기로 했다. 그리고 여수 스페셜티 커피를 검색했다. 여행을 갔을 때 현지 식당을 찾는 것처럼 그 동네의 카페를 찾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사전에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찾아본다. 그것을 종합하여 선택하는 것이다. 숙소 바로 앞에 검색했었던 카페가 있어서 거기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숙소에서 쭉 쉬다가 나는 혼자서 숙소 앞 카페에 가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커피는 맛 자체는 무난하고 구수한데 아이스커피에 비해 농도가 조금 진해서 먹기가 조금 버거웠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더 타서 마셨다.
사실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괜찮은 커피를 하는 것은 대게 드물거나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양한 커피를 접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우연에 기대어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여행의 소소한 재미이자 시간을 때우기 좋은 일이었다. 관광지의 경우에는 풍경이 좋은 위치에 크고 세련된 카페들이 많지만 그 외에 작은 동네에서 오래 영업을 유지한 매장들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드물게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배가 고플 시간이 되어서 용주가 미리 봐 둔 삼겹살집으로 갔다. 차로 이삼십 분 정도의 거리였다. 손님이 꽉 차있어서 전화번호를 남기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신도시처럼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다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았다. 잠시 후에 매장에서 들어오라고 전화가 왔다. 우리는 이번에도 미리 봐 둔 메뉴를 주문했다. 그때 먹은 삼겹살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을 법한 프랜차이즈 느낌이었다. 얼른 식사를 해치웠다. 그리고 주변에 해수욕장과 볼거리가 있어서 산책을 했다. 풍경이 엄청 좋았다. 용주는 "여수는 밤에 풍경이 굉장히 좋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용주는 “좋다. 좋다.”라는 말을 아주 여러 번 반복함으로 강조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지금까지 겪었던 직장생활에 대해서 한참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주가 말했다. “ 네가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니까, 어디에 얽매 혀 있는 것을 싫어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