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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Jun 27. 2023

소설의 의미

파리대왕

오늘은 랠프를 보았다. 물론 실제로 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 속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종종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곤 한다. 랠프는 파리대왕에

나오는 소년인데 나는 갑자기 그 얘가 보고 싶었다. 물론 돼지나 샘, 에릭, 조니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들이 무인도에서 겪었던 일들도 궁금했다.


나는 평소처럼 성북천으로 나와 러닝을 뛰었다. 오늘은 밥을 든든하게 먹지 않아서인지 기운이 나지 않았다. 종종 그런 날이 있다. 한 2킬로쯤 지났을 때, 문득 랠프 생각이 났다. 그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 장면이. 랠프는 자기 편인 친구 둘이 오랑캐 같은(이것은 소설 속의 표현이다) 다른 또래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고, 혼자 다수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면서 쫓기고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달렸다. 갈비뼈 쪽이 창에 찔려서 피가 흘렀지만 그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순간 마치 내가 랠프가 된 마냥 전력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성북천 한복판에서 무인도로, 나무를 뾰족하게 다듬은 창을 던지면서 쫓아오는 잭, 로저가 나타난 것이다. 이곳은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소설 속의 인물들을 만났다. 만약 지난달에 울산에 있는 용주를 서울에서 만난 것과 오늘 내가 랠프를 만난 것이 크게 보면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용주가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내게 랠프가, 즉 소설이 주는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 한정된 것인데, 내겐 이런 것들이 아주 없지 않았다.


랠프가 현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나는 내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그 얘를 볼 수 있다.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잘생긴 소년을 말이다. 하지만 현생을 살아가는 대학동창 용주와 만나는 것은 여간 쉽지 않다. 일 년에 두세 번을 볼까 말까 한다. 종종 나는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잘 인지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자주 어딘가에 앉아서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주에 살던, 보광동에 살던, 성북구에 살던 크게 상관이 없다. 물론 초여름에 서울숲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과 좁은 원룸에서 책을 읽는 것은 분위기가 주는 물리적인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부수적인 것인 셈이다.


나는 랠프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배웠고, 법과 사회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랠프를 보면서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것과 수영을 잘하는 것과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 것이 멋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잭을 보면서 대장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어떤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러한 면모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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