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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금희 Mar 16. 2024

고갱, 달과 6펜스, 천국은 다른 곳에

최금희의 그림 읽기(14)


 



폴 고갱, [슈페네커의 아틀리에, 슈페네커의 가족], 1889,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슈페네커는 고갱을 따라서 증권 중개인에서 화가가 되었다.


<달과 6펜스>는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1904년 파리에서 화가들과 어울리며 보헤미안처럼 지낼 때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제도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나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의 이야기를 듣고 쓴 소설이다. 특이한 화법으로 내면세계를 탐구한 고갱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고 <달과 6펜스>보다 먼저 발표된 <인간의 굴레>에서 고갱이라 생각되는 화가에 대해 언급하였다. 


몸은 일차 세계대전 중 첩보원으로 활동하는 중, 타히티를 방문하여 고갱의 흔적을 찾아 그가 살던 집도 가보고, 그와 함께 살던 여자도 만나고, 그가 남긴 그림을 사기도 했다. 고갱의 행적을 바탕으로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일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 해인 1918년에 출판되어 몸을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다.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인 개성과 광기 어린 예술 편력 등 고갱의 신화가 서머싯 몸의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 소설은 전쟁으로 대량 학살이 일어나며 인간과 문명에 대한 염증을 느낀 ‘로스트 제네레이션(Lost Generation)’ 세대들에게 영혼과 순수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현실 세계를 떠나 억압된 욕망이 요구하는 대로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 회귀하는 보편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소설이다. 


<달과 6펜스>에서 ’ 달’과 ‘6펜스’는 둥글며 빛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질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상징한다. 달빛은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단단하던 이성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 감춰 놓았던 깊은 욕망을 걷잡을 수 없는 충동으로 이끈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은 달로 상징되어 왔다.


‘6펜스’는 영국의 화폐 단위 중 가장 낮은 은화이다. 그 은화는 둔중하고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 가치는 매우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인 욕망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물질의 가치를 의미하며 고루한 인습의 견고함을 상징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의 마력에 이끌려 6펜스의 세계에서 탈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고갱은 전직 증권 중개인이자 화가로 전업한 에밀 슈페네커와 친밀한 사이였다. 필자는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내내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슈페네커의 아틀리에]가 연상되었다.


1891년 4월 초, 43살의 중년의 남자 고갱은 그때까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알려진 남태평양에서 가장 큰 섬 타히티로 가는 배를 탔다. 수에즈 운하를 거쳐  파피테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63일이 걸렸다.


 현대 스페인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페루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 )는 소설 <천국은 다른 곳에>에서 타이티에 도착하는 고갱을 이렇게 묘사했다. 

 “타히티의 주도 파피테에 도착하자 말할 수 없이 행복하여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심정이었다. 마치 유럽과 파리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겠다는 듯 가진 그림을 팔고 전 재산을 챙겨 타히티로 왔다. 화폭으로 쓸 천 100야드, 그림, 유화물감, 붓, 뿔 나팔 하나, 만돌린 두 대 기타 한 대, 브르타뉴 지방 담배물부리 여러 개, 골동품 권총 한 정 그리고 입던 옷가지 몇 벌이 총재산이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타히티는 인구가 채 3천 명도 되지 않는 섬에 유럽인들이 5백 명이나 살고 있었다. 고갱은 기대를 잔뜩 품고 이곳에 왔으나, 1891년 8월 초 상당량의 피를 토하며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가슴이 벌렁거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증상은 파리에서 몇 달 전에 의사들이 예견한 매독과 가족력인 심장병의 발로였다. 




폴 고갱, 해변의 여인 Femme a la mer, 1892년, 캔버스에 유채, 92.5 ×74cm,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미술관


파피테의 중국인 거리에는 날품을 팔기 위해 이주한 중국인들도 삼 백 명 정도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있었다. 돼지우리가 하숙집을 두르고 있고 근처에 도살장이 있는 냄새가 지독한 하숙집에서 거의 공짜로 살고 있었다. 그런 환경이니 고갱은 그림을 그릴 의욕도 생기지 않아 항구 선술집에서 독주 압생트를 홀짝거리거나 도미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중국인 거리에 사는 고갱은 타히티의 유럽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야만적인 삶이었다. 장터의 야시장에서는 원주민과 평판이 좋지 않은 유럽인들인 군인, 선원, 장돌뱅이, 건달,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섞여 북소리와 함께 축제와 술판이 벌어졌다. 고갱이 거기에서 그들과 어울렸으므로 이제 막 도착한 파리 출신의 화가의 처신에 기존 유럽인들은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졌다. 고갱이 도착했을 때 정중하게 영접을 했던 시장과 총독의 행사에 두 번 다시 초대받지 못했다.  




폴 고갱, 타이티의 여인들, 1891, 69x91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이 작품은 폴 고갱이 타히티에 처음 도착하던 1891년에 그렸다. 커다란 흰 티아레 꽃무늬가 있는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귀에 역시 흰 티아레 꽃을 꽂고 한껏 멋을 부렸다. 구릿빛 피부의 단단한 팔을 드러내고 모래밭에 앉아 있다. 삼단 같은 머리채는 칠흑처럼 빛나고 노란 리본으로 질끈 묶었다. 


그 옆에는 고갱과 동거했던 13살의 테하미나가 약간 돌아앉았다. 열대의 타히티에 어울리지 않는 선교사가 가져온 분홍색 긴소매 원피스를 입고, 우울하고 생기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시선을 돌리고 있다. 매독에 걸린 고갱이 그 병을 옮겨 주기라도 했는지 무언가 편치 않은 자세와 분위기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층층이 쌓인 색채는 평면적이지만 화폭에 가득 찬 타이티 여인들을 뚜렷이 부각한다.


고갱은 원주민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폴리네시아에 온 것이지 유럽인들처럼 살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기말 파리와 매한가지인 그 도시에서 벗어나기로 하여 파피테에서 40킬로 떨어진 마타이에아로 옮겨갔다. 동거하던 혼혈 여인이 떠나고 몇 주 후, 고갱은 말을 타고 동부 해안 마을에서 구멍가게 여주인에게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을까 해서 와봤습니다”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여주인은 자신의 딸인 13살의 테하미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마을 최고의 예쁜이로 고갱을 ‘코케’라고 불렀다. 고갱은 1892년 말부터 1893년 초까지 몇 달 동안 마타이에 아의 오두막에서 테하미나와 살림을 꾸렸다. 그가 평생에 살아오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린 부인은 마르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었다. 테하미나와의 생활은 돈 문제만 아니었다면 좀 더 긴 시간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폴 고갱, [가난한 어부 Poor Fishman], 캔버스에 유채, 1896년, 상파울루 미술관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인습에서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창적인 그림을 위해 고갱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 그랬기에 그의 그림에선 강렬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에 매혹된다. 물질이 지배하는 고루한 인습의 틀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고갱처럼 자유로운 삶을 누릴 것인지,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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