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희의 그림 읽기 (30)
이른 아침 잔뜩 흐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제단화를 만나러 간다.
<어린양에 대한 경배>는 플랑드르 회화에서 불후의 명작이자 15세기 유럽 미술의 초석으로, 벨기에 겐트(Gent)의 성 바봉 대성당(St. Bavo Cathedral)에 소장되어 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는 형을 이어받아 8년 후인 1432년에 완성하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중간에 외교 임무를 맡아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린 상태의 12개 패널
성당 부속관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홀에는 경건하게 성가가 흐르고 본래 빛이 들어오던 대성당에 있는 창의 위치를 똑같이 재현하였다. 하단 5개 패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꽃과 나무, 건물과 도시, 지평선 위의 성채와 하늘이 모두 ‘하나로 배경이 이어지며 파노라마식 풍경’이 펼쳐진다.
열린 상태의 하단 5개 패널 중앙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은 동산 전체와 멀리 보이는 천상 예루살렘까지 자비의 빛을 퍼트리고 있다. 천지만물이 함께 그려지고 수평선 위로 솟아 있는 첨탑과 시계탑까지 모든 세부사항을 인근 도시의 풍경으로 정밀하게 묘사했다.
하단 중앙 패널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초원에서 어린양에 대한 경배를 하고 있다. <어린양에 대한 경배>에서 수직으로 빛, 어린양의 성혈 그리고 세례를 상징하는 물이 삼위일체를 형성한다. 인간과 신이 등장하는 풍요롭고 완벽한 겐트를 소우주로,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설정했다.
제단 앞의 두 천사가 어린양의 신성함을 알리기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뒤에서는 천사 네 명이 가시관과 십자가, 창 등 예수의 수난 상징물을 들고 있다. 나머지 천사들은 제단 주변에서 합창을 하며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있다.
붉은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는 어린양이 서 있다. 어린양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잔에 떨어지고 있다. 원제는 <신비로운 어린양의 경배 Adoration of the Mystic Lamb>였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어 성혈을 흘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린양에 대한 경배>는 16세기에 덧칠되었다. 원본 그림에서 양의 강렬한 시선과 정면을 바라보는 큰 눈이 인간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벨기에 왕립문화재연구소는 원본 양의 눈모습을 알아내려고 3년에 걸쳐 서서히 덧칠을 제거하였다.
반 에이크가 “중세에 흔한 인간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던 신의 어린양을 묘사한 것"이라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덧칠이 제거되고 난 뒤 원본의 모습이 더 낫다는 평가에 따라 덧발라진 물감을 제거했다. 그러나 이전의 모습이 더 낫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연구소 측은 복원 관련자 전원이 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을 설립한 반스 재단의 반스(Albert C. Barnes)는 미술품의 색 복원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은 복원을 하여 ‘야간순찰’이 아니고 ‘대낮’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복원에 대해 상반된 입장이 있지만 후대에 덧칠되었거나 물감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 의해 변색된 상태라면 복원을 하는 게 옳다고 본다.
열 두 제자를 상징하는 열 두 줄기 은총의 물이 흐르는 팔각 분수는 생명수의 샘으로 요한서를 시각화한 이미지이다. “그분께서는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의 의인들로 그중에는 이교도, 시인, 철학자도 있다. 그중 흰 옷을 입고 월계관을 쓴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는 성서가 실제임을 증거 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다.
의인들 반대편에는 종려나무를 들고 오는 성녀들이 있다.
그러나 볼록렌즈로 본 듯한 사진이 이상해서 일행의 사진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5m가 넘는 높이의 제단화를 관람자가 자신의 눈높이에서 볼 수 없으니 반 에이크는 아래에서 보는 이를 고려해, 시점을 감안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도 [다비드]의 5m가 넘는 높이를 감안해 머리를 크게 만들었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 수도원 식당을 들어오는 문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렸다. 이렇게 관람자를 배려한 왜곡된 형상을 왜상(歪像, Anamorphosis)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확신하는 순간 세세한 그의 의도에 전율이 일었다.
아래 왼쪽 이 부분은 도난당한 <의로운 판관> 패널로 복제화이다. 메인 패널인 [세례자 요한]을 돌려준 도둑에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았나 보다. 후베르트와 얀 반 에이크 형제는 자신들의 모습을 서명으로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 왼쪽 패널 <기사들>
저 멀리 산을 그린 풍경은 후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름을 붙인 ‘대기 원근법’으로 그려졌다. 먼 곳에 있는 사물의 색은 대기 중의 습도와 먼지로 인해 푸르스름하여 채도도 낮아지고 윤곽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래 오른쪽 <순교자> 패널
순교자들의 배경에서 70여 종의 식물과 바위의 묘사가 굉장히 정교하다. 이는 온 세상 만물에 신이 깃든다는 의미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도 50년 뒤 [암굴의 성모, 1483~86]에서 겐트 제단화처럼 사실적인 자연 묘사를 했다.
붉은 옷을 입은 키가 큰 이는 여행자의 수호성인인 성 크리스토퍼이다. 그를 앞세우고 은수자들과 순례자들이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오고 있다. 지중해나 에스파냐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다녀온 반 에이크는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는 특정한 장소가 아닌 소우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려주는 천사들이 입은 비단옷의 광택과 보석의 광채를 표현한 광학적인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생기 넘치는 천사들의 표정이 중앙 인물들의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노래하는 천사들은 입모양만으로 누가 소프라노이고, 메조이고, 알토인지 구분할 수 있다. 왼편 앞줄 세 천사는 고개를 아래로 접고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알토인 듯하다. 오른편 이마를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있는 세 천사는 ‘누군가 뒤에서 음정이 틀려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재미난 상상하게 한다.
화려한 의상의 천사들이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처럼 소박한 얼굴이다. 금발에 웨이브진 머리가 방금 미용실에 다녀온 듯 단정하지만 약간 부스스하여 에센스라도 건네고 싶다.
하느님을 비롯한 상단 천상의 배경에는 시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타일 바닥으로 구체적인 공간으로 한정한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과 이브는 중세 천년 이후 그려진 최초의 누드화이다. 반 에이크는 스스로 검열을 하여 그들의 손에 무화과 잎사귀를 쥐어 주었다. 상단 천상 세계의 인물들이 입은 의상의 호사스러움과 아담과 이브의 누드가 대비되는데 이는 원죄의 크기만큼 날카롭고 매섭다.
아담의 발은 단축법으로 나무를 밞고 한 발 내딛는 듯한 눈속임인 트롱프뢰유(Tromp-loeil)로 우릴 향해 걸어오는 듯하다.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은 체모, 핏줄 그리고 발뒤꿈치의 각질과 발바닥의 굳은살을 가진 평범한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 에이크는 벌거벗은 이브를 원죄로 인해 임신의 고통을 짊어진 여인으로 가혹하게 묘사하였다. 2020년 베르사유 조약 100주년 기념으로 겐트시는 반 에이크의 해로 정하였고, 아담과 이브는 흑백이었으나 겐트 미술관에서 복원하여 공개하였다.
화면 상단 오른쪽 이브 위에는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장면이 조각처럼 그리자이유 기법으로 그려졌다. 인류 최초의 살인을 묘사한 부정적인 장면은 여성인 이브 위에 그려졌다.
제단화에 표현된 인물들은 시간과 공간의 구별 없이, 지위와 인종 구분 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피를 흘린 어린양을 경배하고 영원한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천상 예루살렘에 모이고 있다.
<어린양에 대한 경배>의 미술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성서의 사건을 겐트를 배경으로 한 종교화로, 아담과 이브를 그린 북구 최초의 누드화이다. 그는 미술에서 광학의 혁명을 이루어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 후 500년간의 미술을 선도하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반 에이크는 필립 3세의 도서관에서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37권을 읽으며 자연묘사의 방법을 익혔다. 필립 3세가 가장 추앙한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반 에이크를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그리던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 아펠레스에 비유해 ‘플랑드르의 아펠레스’라 불렀다.
1432년 필립 3세가 브뤼헤와 겐트의 상인들을 압박해 소금 세와 밀가루세를 올리자 상인들이 반발하였다. 그러자 그는 상인들을 참수하여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처럼 참혹한 분위기에서 겐트 부시장이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제단화가 종교를 떠나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예술로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 봐야 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슬픔과 고통을 미리 경험하고, 그로 인해 역경 앞에서 더욱 강해진다. 역경은 삶의 일부이다.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원천이 예술이며, 고귀한 본성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