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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May 08. 2020

수학여행 (서울, 설악산)

여행은 어디를 가는지보다 누구와 함께인지가 보다 중요하다.

경상북도를 비롯 대한민국 대표 국민학교 수학여행 여행지는 ‘경주’일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신라, 통일신라 시대의 많은 유물들과 수학여행지로서의 상징성이 작용했다. 등록 문화재 갯수 기준 전국 1위 경주인터라, 전국 2위 안동의 학생들도 수학여행 1순위는 경주 일 수밖에 없다. 선배들도 그랬고, 나중에 들어보니 후배들도 전부 경주에 다녀왔다. 나도 경주 다보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고, 불국사를 보고 싶었고, 석굴암도 보고 싶었다. 6학년 수학여행을 몇주 앞두고, 갑작스런 ‘설문조사’가 있었다. 내용은 ‘수학여행지, 경주 or 다른 지역’이었다. 나는 경주에 가보고 싶었지만, 대부분 경주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안동에서 가까운 거리니까 경주는 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경주에 가보고 싶었고, 오매불망 6년을 기다린건 아니지만, 평생에 한번 있는 국민학교 ‘경주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는게 달갑지는 않았다. 학교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모르지만, 합리적 시도임은 분명하여 설문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설문조사 결과 ‘설악산 & 서울 & 독립기념관’으로 정해졌다. 네비게이션이나 검색 프로그램이 없었고, 설악산, 서울, 천안 독립기념관을 알려면 지도를 펼쳐야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는 ‘사회과부도’와 집에 있는 지도가 전부였다. (‘나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참조)

지금 다시 설문을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안동 출발 속초 설악산을 구경하고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날 서울을 거쳐 천안을 지나 돌아오는 1박 2일 과정과 경주 2박3일 일정을 고르는 설문이다. 비용 설악산과 서울, 천안의 여정은 굉장한 일정이다. 버스 여행이지만,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1박 2일이라는 것이 더 힘들다. 실제로 설악산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일찍 숙소로 들어갔다. 아무리 빼곡한 일정이지만 수학여행의 필수품은 ‘얼굴 낙서’였다. 밤 늦도록 조잘조잘, 재잘재잘,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얼굴에 낙서 당한 종현이와 동석이 얼굴은 기억나지만’ 대화의 내용은 전혀기억나지 않는다. 남학생 20명이 한방에서 묶었다. 비몽사몽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탔다. 오전에 63빌딩 앞을 지났다.

경주가 아닌 속초, 서울, 천안이라는 수학여행 일정표를 받아보신 부모님은 상당히 만족하셨다. 특히 63빌딩을 간다고 하니, 아이맥스 영화관을 비롯한  아쿠아리움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경주가 아닌 ‘속초, 서울, 천안’ 쪽으로 동의하셨다. 그러나 속초를 떠난 수학여행 버스는 구불구불한 국도, 올림픽대로를 거쳐 63빌딩이 아니라, 여의도공원으로 향했다. 여의도 공원에서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 자전거를 대여하고 싶은 친구들은 빌려서 타보라고 했지만, 1시간 남짓 시간 안에 점심 도시락까지 먹어야 했기 때문에 자전거는 못탔다. 원래 안내장에는 여의도 공원 일정은 없었다. 63빌딩과 KBS 방송국 사이에 있는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여의도 공원은 63빌딩 구경도 못하고, KBS구경도 못하는 장소가 돼 버렸다. 그렇게 한시간 남짓 63빌딩과 KBS방송국을 모두 구경하고, 우리는 천안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도 멀리서 보았다. 속초에서 서울로 가는 내내 국회의사당 상단의 둥근 아크 안에는 ‘태권v’가 있는지 없는지 설전도 벌어졌다. 63빌딩, KBS방송국, 국회의사당은 과연 내부를 봐야 보는 것인가? 겉만 보고도 봤다고 할 수 있는가? 내부를 봤다고 다 아는 것인가? 겉만 본다고 뭐가 잘 못된 것인가? 중요한 결정에서 나오는 ‘마음속 천사와 악마’처럼 ‘서울 왔으니 됐다’ 부류와 ‘이게 뭐냐’ 부류로 나뉜 채 우리는 천안으로 출발했다. 당시 우리반에는 6학년 1학기 때 우리반으로 전학온 김경은이란 친구가 있었다. 5학년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경은이는 서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지만,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서울을 다녀가는건 서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기에는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했다. 그러나, 단체행동이었고 우리는 안동국민학교 110년 역사상 경주가 아닌 곳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첫번째 기수였다.(나는 81회 졸업생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커플 자전거를 꼭 타고 싶었다. 앞에 한명 뒤에 한명이 타는 자전거였는데, 시간이 없어서 구경만 했다. 국회의사당은 멀리서 태권v의 존재를 떠올렸을 뿐이고, KBS 방송국은 집채만한 신호 송출 안테나를 봤을 뿐이다. 63빌딩을 뒤로하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그외 서울에서 확실히 기억나는 건, 경부고속도로의 어마어마한 폭이었다. 부산 방향 서울 요금소를 앞두고 판교 지나 내리막 구간에서 우연히 고속도로를 보았다. 엄청 넓었다. 내가 본 도로 가운데 가장 넓은 길이었다. 이것은 길이 아니었다. 미국 항공모함을 떠올렸다. 내 수준에서 가장 넓은건 왠일인지 항공모함이 떠올랐다. 왕복 2차선이 고작이었던 안동에서 온 학생이 왕복 20차선 가까이 되는 톨게이트 부근의 내리막 길을 봤다는 것은 수학여행의 백미였다. 정말 제대로 ‘수학’했다. (수학여행의 최대 ‘수확’이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는 많이 걸었다. 발에 땀이 나도록 걸었다. 겨레의 문에 대해서 들었다. 준공된지 얼마되지 않은 독립기념관이었지만, 겨레의 문은 87년 즈음 화재가 발생했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으로부터 겨레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문’이 일본 기술자들에 의해 공사가 이뤄지던 도중 발생한 화재라고 했다. 속초를 떠나, 서울에서 도시락 먹고, 녹초가 된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니 수학여행의 두번째 확실한 ‘수확’이었다. 역사에는 ‘만약(if)’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펼치는 건 자유라는 것을 느꼈다.

천안을 떠나 고불고불,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문경쪽으로 왔다. 아마 이화령을 넘은듯하다. 이화령 제일 꼭대기에 있는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여자친구들 대부분은 입맛이 사라졌고, 몇몇 친구들은 멀미로 녹초가 돼 있었고, 양쪽 귀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걸친 애들도 여럿 있었다. 2박 3일이 아니라 1박 2일 여행이었으므로 부모님이 주신 용돈들이 대부분 남았다. 그걸 위안 삼으라는 담임선생님의 안동 도착전 멘트는 우리들에게 ‘썩소(썩은 미소)’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저녁 늦게 운동장에 도착했다. 정말 피곤했고, 고속도로의 넓이와 독립기념관 화재, 동석이와 종현이 얼굴의 낙서가 남긴 수학여행은 잊고 싶었다. 하지만 부반장이었던 나에게 또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그건 바로 수학여행 기행문을 쓰라는 것이었다. 내가 쓸수 없다면 다른 친구들이 쓰면 됐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교내 방송이나 학교 신문 같은 게 태동하던 시기라 기행문이나 독서감상문을 많이 요구했다.

여정, 견문, 감상을 기행문의 3요소라고 한다. 기행문은 여행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기행문에는 여행을 한 경로,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 여행하는 동안 느끼고 생각한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들은 기행문의 세 가지 요소로서 여정(旅程), 견문(見聞), 감상(感想)이라고 한다. 기행문에서 여정은 언제, 어디를 여행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생생한 기록의 역할을 한다. 견문은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쓴 것으로, 기행문의 내용을 다양하게 만들고 흥미 있는 글이 되도록 해 준다. 감상은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글쓴이의 느낌과 생각이며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난다. 좋은 기행문이 되기 위해서는 여정과 견문, 감상의 세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어울려야 한다. 여정과 견문만 있고 감상이 없으면 딱딱한 여행 안내문이 되기 쉽고, 감상에만 치우치면 기행문으로서의 성격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요소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내용을 구성하여야 한다. <대교 학습 백과, 기행문의 3요소>

도무지 수학여행 기행문을 쓸수 없는 상황과 기억이었지만 용케마무리까지 했다. 경주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부터, 경주는 꼭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가능하면 신라의 수도 경주 뿐만 아니라, 백제의 수도, 고구려의 수도까지 가보고 싶다고 썼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가본건 참 의미있는 결정이었다는 결론이었다. 중학교때 가볼 설악산을 가본 것은 상당히 좋았지만 머무른 시간에 비해 이동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냉정함도 유지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국민학교 수학여행이 경주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것은 상당히 오랜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63빌딩, 여의도공원, KBS방송국, 국회의사당 등은 30년전에 본 곳이므로 익숙하다. 지금 바라보는 이 공간은 30년 전에도 봤던 공간인데, 내가 다시 볼 수 있을까는 생각은 못해봤다. 수학여행 뒤 기행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공간도 언젠가 다시 만날 공간일수 있다. 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랑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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