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호원 Feb 02. 2020

쪽지시험

쪽지 시험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면, 시험은 내손안에 있소이다. 해결하지

용찬이와 용채는 영어 공부를 한다. 용찬이는 ITC라는 interpreter 형식의 수업을 듣는다.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해석하는 수업이다. 초등학교 4학년의 영어라고 믿고싶지 않을 정도다. 주제의 다양성이나 어휘의 수준으로 봐선 수능 모의고사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조기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잠시 뒤로 하고, 용채도 영어 수업을 한다. ‘플브’라고 하는 영어 학원인데, 나에게는 무척 정겹다. Play가 좀 강한 영어학원인듯하다. 쪽지 시험을 보는 것 같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시킨다. 칭찬이 확실하다. 가끔씩은 부모님을 모시고, 피드백 시간을 갖는다. 몇번 다녀온 엄마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 만나러 온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거라 했다. 그래서 더욱 정겹다.

어린시절 쪽지시험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싫었다 - > 좋았다 -> 매우좋았다 -> 좋았다 -> 좋았다’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때, 전국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 같은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리 듣기평가가 많았는지. 국어시간에도 듣기평가가 있었고, 영어수업에도 말하기는 없고 오직 듣기 평가만이 있었다. 말하기를 평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지만, 내가 겪은 평가에선 듣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리반 담임선생님이 아닌, 2반 담임선생님이 국어시간의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셨다. 지금생각하면, 수능시험의 영어듣기평가 문제가 앰프시설을 통해 방송으로 나와야하지만, 실전을 대비하는 성격의 시험이었던지 혀짧은 2반 선생님이 직접 읽어주셨다. ‘할머니는그 야프를 듬뿍 발라주셨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야프? 야프를? 야프가 뭐야, 연필말고 샤프야? 정말 답답했다. 혀짧은 선생님은 본인의 핸디캡을 아셨는지 규정상 읽어줄수 있는 두번을 넘어 4번 가량 읽어주셨다. 나름 받아쓰기에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청력에도 이상이 없었던 나였지만, 너무나 황당했다. ‘좋지 않았다’와 ‘싫었다’의 감정이 제곱이었다. 도대체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할머니는 그 약풀을 듬뿍 발라주셨다.’였다. 깔끔하게 인정했다. 약풀, 논두렁이나 들판, 혹은 얕은 언덕에서 볼수 있는 쑥이나 엉겅퀴같은 것을 곱게 짓이겨 상처부위에 발라주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의 발음과 나의 문맥 해결 능력이 고루 섞여 만들어낸 처참한 결과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보다. 결론은, 귀를 대신해주는 것은 문맥이었다. 그리고 나서 배웠다. 듣기평가에서 중요한건, 받아쓰기에서 중요한건, 쪽지시험에서 중요한건 흐름이라는 것, 흐름을 이해하면 뭔가 수월해진다. 흐름을 이해하면 자칫 넘겨짚는 실수가 발생할수 있지만 마음의 안정이 온다. 오늘로서 혀짧은 옆반 담임선생님을 용서하기로 한다.

그걸 뭐라고 하지?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 이런 경우가 종종있다. 나이가 들면 발생하는 인지기능 장애 이전에, 그냥 깜빡깜빡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용서되지만, 그저 세월의 무게이려거니 하지만, 학생들에게 깜빡깜빡은 용납되지 않는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식 답’이 튀어나와야 한다. 마치, ‘도전골든벨’, ‘장학퀴즈’, ‘우리말 겨루기’ 처럼 단답형 정답을 빠르게 이야기 해야 공부잘하는 학생이다.

과연 훌륭한 학생은 누구인가?

단답형 답안을 익숙하게, 능수능란하게 잘 맞힌다고 훌륭한 학생인가? 반대로 단답형 답안도 모른채 원리 파악도 모르는 것이 훌륭한 학생인가. 그렇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학생이 정답일까? 이 역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위한 질문이다.

세상 문제를 5 why를 거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한다. 미국의 제퍼슨 기념관의 외부 대리석이 다른 건물보다 빨리 부식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1why : 기념관의 외부대리석은 왜 빨리 부식될까?

답 : 대리석을 비눗물로 자주 씻기 때문에 부식이 발생한다.

2why : 왜 비눗물로 자주 씻는가?

답 :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비눗물로 자주 씻는다.

3why : 왜 비둘기들이 많이 오는가?

답 : 비둘기의 먹이인 거미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4why : 왜 거미들이 많이 오는가?

답 : 거미들의 먹이인 나방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5why : 왜 나방은 몰려드는가?

답 : 황혼 무렵 점등되는 기념관 불빛 때문이다.

제퍼슨 기념관은 황혼 무렵 다른 건물들에 비해 일찍 점등하여 주변의 나방이 몰려들었다. 제퍼슨 기념관 대리석 부식의 근본 원인을 알고, 기념관의 전등을 2시간 늦게 켜서 대리석 부식의 원인을 해결하였다. 이것이 5why를 이용한 문제 해결 방법이다.

단답형 요약, 개념, 주제글을 잘 찾아내기 위해서는 쪽지시험이 제격이다. 반대로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해석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때는 쪽지시험보다는 서술형 문제에 대한 답이 제격이다.

세상에는 단답형 문제를 잘 맞추기만 해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지금의 로스쿨(lawschool) 제도 이전에 사법시험 제도는 ‘전형적인 정답 찾기’였다고 한다. 물론, 육법전서 (헌법을 포함한 여섯가지 법률서-헌법, 민법, 상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를 통달할 경우, 단답형이건 서술형 문제이건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융합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결합이 중요한 시대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모든 정보는 공개돼 있다.

주변의 것을 모방하고, 많은 것을 접하고, 통섭의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섭은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관통하는 힘이다. 꿰뚫는 힘이자, 직관력이다. 어떤 일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영어 수업시간의 쪽지시험을 내 손바닥위에 올려라. 손바닥 위에 올라온 영어쪽지시험을 판단해보라. 과연 어려운 것인가. 범위는 어디이고, 어떤 문제가 나올것 같다는 상상을 하다보면 오히려 쉬워진다. 영어 시험 시간이 기다려진다.

모방이라고 하면 나쁜 행동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에 얽메이지 말아라. 똑같이 따라하는 것에 그치면 모방은 모방으로 끝나지만, 모방의 과정을 통한 통섭의 과정을 실행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된다.

모방을 통한 통섭의 과정이 끝나면 이때부터 전문화의 길을 가야한다. 전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넘버원(number one) 전략보다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다는 온리원(only one) 전략으로 가야한다. 그런 다음엔 스페셜 원(special one)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그칠순 없다. 다소 길고 어려운 전문화의 길 그 다음엔, 단순화의 길로 접어 들어야 한다.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앞서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누구도 복잡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표현한 영화나 소설, 드라마는  많은 관심과 응원, 지지를 받는다. 얽혀있는 실타래를 한번에 풀어줄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복잡한 기계장치를 단순하게 한다면, 이 세상에 큰 도움을 준다.

모방, 통섭, 전문화, 그리고 단순화의 길은 스티브잡스가 정리한 것이다. 세상에 없던 말이 아닌 4가지 단어를 모방과 통섭, 전문화 그리고 단순화를 통해 유명한 전자제품과 제도, 신드롬 등을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 역시, 10대때는 본인이 어떤 사람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될 자격이 있다.

기록하는 삶, 정리하는 삶을 통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통섭의 지혜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지금같은 책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에 비해 길지 않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어명이요~ 하는 두루마리가 문서가 전부였다. 나무조각에 글을 써서 묶어두니 필요할때마다 찾을수가 없던 것이다. 몇 페이지에 무엇이 있고, 내가 어디까지 읽었고, 나의 기억은 어디까지인가를 찾을 수있는 지금의 책, 그 책이 모방과 통섭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