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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Jan 31. 2020

자기소개

준비된 자기 소개는 자신감을 준다.

학창 시절에는 뜻하지 않게 자기 소개를 해야할 때가 있다. 혹은, 준비할 시간을 갖고 자기소개를 할 때도 있다. 저학년때는 쭈뼛쭈뼛 거리면서 호응을 유도한다던지, 그냥 웃으면서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고학년때는 친구들 가운데서 제법 잘하는 친구들이 눈에 띈다. 아직 아빠에게는, ‘저, 는, o, o, o, 입, 니, 다, 잘, 부, 탁, 합, 니, 다.’라는 14글자를 또박또박 목이 터져라 소개하고 들어간 친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 1학년 아니 중학생활 내내 기억이 난다. 자기소개가 엄청났었다고. 자기소개 때 춤을 추는 친구들도 있었다. 역시 중학교 때, 개다리춤과 정렬정렬 김정렬, 부채 도사 춤을 섞어서 춤을 췄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주 드물지만 노래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회사 생활할 때, 체육대회 때였다. 행운권 추첨에서 1등으로 뽑힌 친구였다. 기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재치있는 입담과 짧은 노래 한소절, 그리고 웨이브로 표현했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빠도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다. 업무 특성상 내 소개를 해야하는 경우가 참 많다. 다양한 나이, 직업환경, 가족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맞는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라고 하지 않지만, 아빠는 정말 부담을 느낀다) 한두가지 꼭 들어가는 말은 있지만,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상대방을 잘 관찰해야한다. 그 관찰의 시간이 길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짧은 시간내에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 나를 보여줘야한다. 나의 태도, 매너, 말투, 분위기를 전달하여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의지이지만, 자기 소개를 통해 호감이 생기고 신뢰가 생기게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척 중요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자기 소개 시간을 많이 갖는다. 1번부터, 짧게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한다. 1분의 시간을 주는 선생님도 있고, 3분을 넘기지 말라고 하는 선생님도 계신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알아서 친해지고, 알아서 눈치껏 친구들을 가늠해본다. 한두명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머지 사람들과 깊어질지를 결정한다. 대학교에 가면, 누가 누군지 알길이 막막하다. 같은 학번이 있긴 하지만, 나이가 다른 경우가 종종있다. 재수, 혹은 삼수를 통해 대학에 입학하거나, 고학번(예전 학번)이지만 전역후 복학이라던지, 건강 혹은 재정상의 이유로 조금 늦게 학교에 들어와서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가 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대학수업은 ‘나의’ 수강신청에 의해 같은 수업시간이 결정되므로, 같은 반이라는 개념은 많이 사라진다.

같은 반에서 자기 소개 말고 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반장선거, 회장선거, 학생회 선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이크를 사용하거나 평소 목소리보다 큰 목소리로 해야한다.

밝히고 싶지 않지만, 군대에서도 자기  소개를 한다. 이미 정해진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대체로 가장 후임병이 바로 나다. 수십명의 부대원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늦게 입대한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나는 가장 후임병이고, 선임병들의 지원과 관심아래 자기소개를 해야한다. 바로 위 선임병이 알려준다. 짧게 자기소개하고 노래한곡하라고. 춤과 노래를 같이 하면 더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을 것이고, 그 관심과 호응에 따라 앞으로의 군생활이 결정될 수 있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 못한바는 아니지만, 춤과 노래를 섞어서 자기 소개를 하라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점호시간까지 긴장상태의 연속이다. 좌우로 선임병들이 앉아있고 이등병 아빠가 튀어나왔다. 짧은 자기소개, 고향과 학교, 나이, 가족관계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래? 그래 분위기다. 신고 있던 슬리퍼를 오른손으로 붙잡고 눈을 질끈 감고 시작했다. ‘툭하면 멍하니 먼하늘만 바라보곤 해~ 그러다 보면은 어김없이 눈물도 흘러~’ 재작년에 나온 ‘조성모의 후회’를 불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렇다. 아빠는 음치였고, 이 노래는 음치가 불렀을 경우는 여러가지 화를 불러일으킨다. 가창력이 문제였던 아빠에게 최악의 선곡인데다 춤과 노래는 조화를 맞추지 못하고 따로 놀았다. 여기저기서 야유와 베개 등 손에 잡히는 한두가지 물건들이 막 날아왔다. 그만 하라는 신호였다. 노래는 못했지만 날아오는 베개와 슬리퍼가 노래를 그만하라는 신호임은 알 수 있었다. (아빠 다음 순서로 자기 소개를 했던 동기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골반춤에다가 트롯트를 곁들은, 이른바 선수급 무대를 선보였다. 이로 인해 아빠와 그 친구는 다른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을 만회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친구들과 모임이 아닌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한 자리는 더 어색하다. 더 많은 준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남자친구들은 다시 만나면 된다고 하지만, 여자친구는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소개서라는 글을 작성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 입학에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하고, 회사에 취업을 할때도 자기소개서는 필수다. 왜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해야할까. 나는 나인데, 나를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말과 글을 통해서 (심지어는 춤과 노래까지 곁들인다니), 게다가 오래 기억되게끔, 강하게 기억되게끔,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게끔 고민하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는 선입견을 갖고 산다. 본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가늠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 짐작하고 능력을 가늠하기까지 한다. 눈빛과 표정, 어깨와 다리, 손의 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오랜시간 겪으면서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하기엔 여유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자기소개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처음에 잘 준비된 자기소개 때문에 좋은 사람인줄 알았으나, 그것은 연기였다는 것이 들통난다면 후에 느껴지는 배신감은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원만한 학교생활(교우생활)과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자기소개다. 상급학교 진학과 취직을 위한 자기 소개(서)와는 다른 자기 소개, 친구들 앞에서 해야하는 자기 소개, 친척들을 만났을 때 짧게 하는 인사 같은 것도 바로 자기소개란다.

두가지 방식이 있다. 첫번째는 ‘키워드’방식이다. 한가지 단어를 가지고 자기소개를 하면 쉽다. 안녕하세요. 저는 권호원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정약용입니다. 그분이 가진 끈기 때문입니다. 저는평소 끈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을 통해서 많이 좋아진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무난하다. 좋아하는 사람, 물건, 음식, 계절, 시간, 동물, 운동, 스포츠, 영화, 음악, 위인, 유명인 등을 이야기하면 좋다. 평소에 한두가지 생각해두면 더 좋다. 아니면 자기 소개를 해야한다고 준비되었을 때 미리 머릿속에 떠올려두면 쉽다.

두번째 방식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좀 더 쉬워지고 내용이 풍성해진다.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것은 축구입니다. 친구들과 같이 달리고, 멈추고, 패스하고,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축구가 좋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달리기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면 달리기를 좋아할것 같지만,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분명한 달리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은 ‘봉사’입니다. 저도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상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답니다.’

발표를 하거나 이야기할 때는 빠르게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면 된다. 자기 소개를 잘 했을 때 얻어지는 기쁨과 응원 그리고 뿌듯함은 오랜 시간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준비없는 자기소개 역시 군생활때 아빠의 기억처럼 2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길이 없단다. 준비된 자기소개는 자신감을 주고, 그 반대는 낭패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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