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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Jan 29. 2020

삐삐, 휴대폰, 스마트폰

정보 기술의 변화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삶의 통찰력을 갖는데 노력하자

군대 있을 때 주소는 늘 ‘사서함’이다. ‘충북 제천시 xxx 사서함 1-1호’. 사서함이 뭘까? 당시엔 국어사전, 지금은 인터넷 사전을 뒤져보니, ‘말그대로 우체국으로부터 우편함을 구매하는 방식, 초딩 표현으로 하자면, 함을 사서쓰는 사서함, 사서쓰니까 사서함’이란다. 왜 사서함일까 궁금했었는데, 해결됐다. 지금도 산책하다보면 드럼통 2개 크기정도 되는 우편함을 보곤한다. 그게 사서함인가 물어봤더니 그건 우편물을 배송하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한 중간 집결지 같은거란다.

중학교때는 141사서함을 썼다. 다른 용도가 있었겠지만, 삐삐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녹음저장소’정도된다. 한국통신에서 제공하는 141사서함, 전화기를 들고 141을 누르고 몇가지 비밀번호 같은 개인정보 번호를 누르면 녹음 메시지를 들려준다. 참! 전화기를 든다는 표현. 생소할 것이다. 전화기는 주머니에 있고, 전화기는 충전기에 꽂혀있거나 식탁에 놓여있는데 그걸 왜 굳이 ‘든다’는 표현을 쓸까? 흔히 유선전화, 집전화는 들어야 한다. 내려놓으면 끊긴다. 영어에서는 전화를 끊는 것이 hang up이란다. 공중전화는 위에 올려두면 끊기니까.

국민학교 다닐때 국군아저씨, 특히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순철이형’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백령도에 있는 해병대 2사단에 근무하셨다. 그 시절 해병대는 대단했다. 엄청난 훈련과 엄청난 군기, 하지만 순철이형이 써준 답편지에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해병대다운 글씨체에 군기에서 묻어나오는 내용들, 너무 좋았다. 그때도 사서함이다.

중학교 때 사용하던 141 사서함, 너무 불편했다. 가끔 삐삐를 사용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사서함이라는 제도를 무료로 사용하는 ‘정보’를 알고 있는 나, 그걸 모르는 친구들, 이렇듯 정보의 비대칭은 늘 ‘부러움과 질투, 선망’의 대상이 된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삐삐가 나타났다. 정말 ‘삐삐’거렸다.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묶어놓은 벨트춤에 차기도 하고, 뒷주머니에 꽂아 놓기도 하고, 가방에 넣어두기도 했다. 중학교 때 처음본 삐삐는 진동기능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업시간에는 전원을 꺼두어야했고, 그러면 메시지를 볼수가 없다. 부재중 메시지 기능 같은건 없었다. 그리고 길면 한달이지만, 짧으면 2주마다 건전지를 교체해줘야한다. 전원이 꺼지면 삐삐 액정에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 부재중 메시지라는건 없다. 또 하나, 다른 지역에 가면 삐삐가 들어오지 않는다. 광역삐삐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에는 시외버스나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에 가면 삐삐는 그저 시계 역할만 할 뿐이었다. 더불어 초창기 광역삐삐는 지역을 옮길때마다 ‘기지국 변경’을 위해 콜센터 직원과 통화를 해야만 한다. 안동시 0571, 영주시 0581, 예천군 05xx, 대구 053, 기억이 가물거린다. 어느순간 경상북도 전체가 054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광역삐삐의 기지국 변경이 불필요해졌다.

그 시절 삐삐에는 액정이 있었다. 액정에 나오는 전화번호로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신번호 859xxxx 여기까지만 하는게 아니라, 8282 (빨리빨리), 101028282 (열열이 빨리빨리) 이런걸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인들끼리는 486 (사랑해), 1052 (LOVE) 이런 숫자들도 붙였다. 삐삐 액정화면에는 숫자 이외에는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숫자들을 넣었다. 177117 디지털 숫자로 대입해보면 ‘MIN, 민'이 된다. 민이라는 성, 이름 중간, 혹은 마지막 글자인 친구들이 많이 사용했다. 민이 보낸 삐삐니까 전화하거나 만나자 기타 등등. 그러다가 삐삐 기능 중에 녹음 기능이 생겼다. 141 사서함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물론 삐삐 단말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고, 본인의 삐삐번호를 누른다음 번호호출은 1번, 음성녹음은 2번, 음성 청취는 3번이었다. 3번을 누르면, 새로운 메시지의 갯수를 알려주고, 그걸 들으면 된다. 삐삐 단말기에는 연락번호 + [01] 이런식의 수신 여부만 체크된다. 삐삐는 지하에서는 연결이 안된다. 그러면서 삐삐는 점점 작아졌다.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없어졌다. 그러나 작아져서 없어진건 아니고,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대체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휴대전화는 디지털 통신의 SK텔레콤 즉 011, 017 서비스와 신규 PCS (Personal Communication Systems) 서비스 016, 018, 019로 양분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일이다. 10초 18원이라는 저렴한 통화료를 바탕으로 개통한 한솔 018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우세했다. 한국통신 프리텔의 016서비스는 디지털 통신만큼 잘 터진다는 인식으로 두번째, LG통신의 019서비스는 전화단말기가 예쁘다는 특징 정도로 3순위인것 같다. 그 뒤 018, 016, 019의 이합집산은 잘 모르겠다. 현재는 모든 번호가 통합 010이 되었다.

삐삐 단말기의 구입비용은 10만원에서 1만원으로, 그리고 나서 무료 가입으로 바뀌었다. 무료 가입이라기보다는 012, 015 둘 중 하나를 지속적으로 1년 이상 사용하는 이른바 ‘약정'일 경우, 신형이 아닌 구형 단말기를 무료로 준다. 대신 중간에 약정을 해지하면 경과 기간만큼의 차액을 물어내야 한다. 삐삐가 사라질 즈음 단말기 판매점이나 통신사 대리점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삐삐 개통시 100원'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때즈음 나는 삐삐를 사용했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사용하던걸 물려받았다. 조금 컸지만, 믿을수 있는 (당시 그냥 믿고보는) 모토로라 제품이었다. 삼성이나 LG를 비롯해서 군소 전자제품회사에서 만든 삐삐에 비해서 클래식한 느낌 (아재들이 쓰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다. 아버지는 LG에서 나오는 PCS를 사용하셨다. 면사무소에 단촉 판촉온 분들을 통해서 가입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대학생이었던 형도 PCS를 사용할 수 있다는 허락을 해주셨다. 지난 6학년 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를 때처럼 조르고 싶었으나, 학업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핸드폰은 삐삐보다 비싼 요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멋져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때맞춰 삼성전자 애니콜, LG싸이언 등 브랜드를 내세운 광고들이 나오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는 묵직한 핸드폰이 멋져보이긴 했다. 심지어 애니콜 제품중에 하나는 플립을 내리면, 안테나가 저절로 올라가는 핸드폰도 있었다. 휴대 기능과 손(핸드)안에 기능이 다 장착된 휴대 핸드, 핸드 휴대 폰의 시대가 열린것이다. 하지만 나는 군입대 즈음에 얻을 수 있었다.

삐삐에 비해 획기적인 통신수단이었던 휴대전화 시장은 경쟁일로에 들어갔다. 많은 가입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품과 통신비 할인 등의 경쟁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소득이 없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여전히 부담이었다. (나도 대학 2학년이 돼서야 PCS 019가 생겼다. 핸드폰 요금이 연체돼서 부모님이 한번 해결해주신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자한통에 50원, 10초 통화료 18원이라는 사악한 요금제 앞에서 대학생 나는 늑대앞의 순한 양이었다.) 삼선전자 갤럭시, 엘지전자 싸이언, 현대전자 걸리버, 팬텍앤 큐리텔, 모토로라 스타택 등 춘추전국시대 PCS단말기와 디지털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벽돌이라 불리는 플립형 전화기, 절반으로 접히는 폴더형 전화기, 컬러가 나오기 시작한 폴더형 전화기, 16화음의 전화벨소리가 나오는 전화기, 그리고 전면 올컬러에다 쌩쌩한 음악원음이 흘러나오는 전화기의 등장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작아지다가 없어진 삐삐는 내외과 의사들의 전유물로 잠깐 명맥을 유지하다가 완전히 사라진듯하다. 700-5425, 700-5845 등 삐삐 연결음, 통화연결음 서비스 업체들도 동시에 사라졌다. 비디오 테이프가 없어질때 그 많던 영화마을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해주던, 소위 비디오 가게)은 어디로 갔을까, 경차가 유행하던 시절 그 많던 티코는 어디로 갔을까. 삐삐와 PCS를 이어주던 씨티폰도 있었다. 공중전화 요금제 그대로였지만, 공중전화 반경 30미터가 넘어서면 통화가 안되는 단점이 있었단다. 공중전화 근처에서 통화가 되었다가 버스가 출발하면 통화는 끊긴다. 공중전화도 많이 사라졌다. 3분에 100원 정도 요금제였던 통화요금, 삐삐요금,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휴대전화 등 공중전화는 요금제도 달랐다.

집전화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이얼식 전화, 버튼식 전화, 무선전화, 유무선 겸용 집전화 정도 분류할 수 있다. 맥심, 바텔 등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회사들의 제품들은 있을지 모르는 전화박물관이나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기억속에 남는 TV광고들 가운데 통신제품 광고가 참 많다. 20세기말에는 너나없이 미래학자를 자처하면서 21세기를 내다보는 책들이 넘실댔다. 미래의 방향에 대해서 예측을 내놓았다. 지금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에 대한 예측이 불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식 2배 증가 곡선 (Knowledge doubling curve)에 따르면 ‘인류 지식이 두배가 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990년대 25년, 2018년 1년, 2030년 이후엔 3일이 걸린다고 한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쌓는데 집중하라고 전하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를 인식하고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의 우선순위를 적절히 배분하라.

나는 누구에게 누구인지, 내가 관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있는지, 지금은 어떤 시대인지, 이곳은 어디인지, 지금 내가 해야할 일 가운데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 그리고 시급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한다면 훨씬 더 지혜로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대체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처리하면 우물쭈물 허둥대다가 그르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인생의 노하우(know how)와 노웨어(know where)를 차곡차곡 다져가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위문편지 사서함에서 시작된 통신, 141 사서함, 삐삐, 휴대전화, 현재의 스마트폰 (스마트 폰 이후의 통신수단은 25살 이후 이야기에서 언급 할 예정) 까지 ‘과연 나와 타인을 연결해주는 나의 통신수단은 무엇인가’는 고민을 줄여줄 것이다. 고민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심플하게 문제해결의 방향성을 고민하면 된다. 중요도와 긴급성을 다루는 시간관리 매트릭스를 할용하면  굉장히 편리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응과 자기주장을 적절히 활용하는 행동유형 매트릭스를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시간관리 매트릭스였던 것 같다. 결국 수업시간에 놓칠 것은 없고, 수업시간을 열심히 소화한 학생들이 선생님들로부터 지식은 물론 더 많은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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