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제껏 늘 날이 좋았는데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래? 그럼 목요일에 고고!"
이렇게 근교 나들이를 가기로 했던 오늘의
내 일정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모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꿈을 꾸고 또 깨어나기를 몇 번 반복 후
최대한 늦잠을 잤다.
잠을 깰 겸 노트북을 켠 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엿보고
때론 댓글로 참견도 하고,
추천 노래에 들썩이기도 하고.
오늘은 혹사시키고
이런저런 핑계로 돌봐주지 않던
내 손목을 위해 병원에 갔다.
쉬는 날이니, 최대한 꾸질하게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바지에
화장기 없이 모자 하나만 쓰고 외출한다.
돌아오는 길엔
치료를 위해 주사도 맞았으니
달달한 디저트를 사 왔다.
버터향 가득한 빵냄새는
생각보다 안정제 역할을 잘해준다.
나를 위한 점심을 만들고
얼마 전 도자기 선생님이 추천한 드라마도 시작했다.
잔잔한 로맨스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남의 추천은 되도록
눈으로 보거나,
먹거나 마셔보거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려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평생 내 취향만으로 사는
재미없는 삶을 살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가끔은 보물 찾기에 성공하기도 한다.
저녁은 강아지들에겐
닭가슴살과 당근을 쪄주고
날 위해선 이른 저녁부터
푹 삶아온 감자탕을 먹었다.
거기에 화분 분갈이도 두 개나 클리어!
과거엔 뭘 하지 않으면 늘 불안했다.
약속이 미뤄지면
다른 약속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집에만 있는 게 이렇게나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었다니..
이젠 누군가 약속을 취소하면
은근 미소부터 지어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덧붙이자면
오늘은 결국 비는 오지 않았다.
병원은 오전에 갔는데도 예약자가 많아
오늘 해야 할 치료를 내일까지 나눠서 하자고 하셨다.
귀찮지만 두 번으로 나눠 가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하나뿐인 베이커리 가게는 휴무라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디저트를 샀다.
강아지들 삶아주려고
닭가슴살을 사 온다는 게 다른 것만 사 와서
마트를 두 번이나 갔으며
나의 늦은 점심은
배고픔에 다급하게 밥통을 열었으나
텅 빈 밥솥이라
더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래도 오늘처럼 여유 있는 날은
이 모든 게 다
순두부보다 더 말랑말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