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룰을 깨고 '유급인생'을 선언하다

자본주의가 나를 사육하고 있었다는 서늘한 깨달음

by 유급인생

매월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 스마트폰 진동과 함께 울리는 '급여 입금' 알림. 언제부터인가 이 소리는 내게 축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육사가 짐승에게 던져주는 최소한의 '사료'였다. 다음 달에도 죽지 않고 나와서 이자를 갚을 만큼의 기운만 차리라는, 아주 정교하게 계산된 배급.


직장 생활 10년. 새벽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출근길엔 경제 유튜브를 기웃거리며 나름 자본주의의 파도를 잘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이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투자할 '내 돈'이 없다는 것.


연봉은 조금씩 올랐고 해외여행은 못 가도 1년에 한 두번 여행도 다녔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마주한 내 통장의 잔고는 단돈 3만 원. 그 순간 뒷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은 듯한 서늘한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가장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멈추지 않도록 기름을 치는 '소모품'으로 사육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과 감정을 지불하고 받은 대가는 내 것이 아니었다. 통장에 찍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대출 원리금과 카드값들. 내 노동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라 화면 너머의 은행과 카드사였다.


시작은 '신용'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유혹이었다. 저금리 시절과 코로나19가 만든 폭발적인 유동성 장세 속에서, '마이너스 통장'은 내 능력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사육사는 본색을 드러냈다.


1금융권은 매정하게 나를 밀어냈고, 2금융권을 거쳐 캐피탈의 문을 두드렸다. 연체를 막기 위해 아등바등할수록 나는 더 깊은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리볼빙이라는 족쇄를 차고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 내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이자가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신음이 깊어질수록 머릿속은 '로또 1등' 같은 일확천금의 망상으로 채워졌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 문서가 불타버리길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깨달았다. 사육장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행운이 아니라, 이 시스템의 문법을 완전히 거부하는 '결단'뿐이라는 것을.


연체자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노예로 살다 죽기는 더 싫었다. 그렇게 나는 자본주의가 설계한 '돌려막기'라는 룰을 깨기로 했다. 내가 찾은 탈출구는 '신속채무조정'이었다. 신용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사육사가 채운 쇠사슬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접수비 단돈 5만 원. 그 상징적인 금액으로 나는 나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첫발을 뗐다.

이제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내 인생을 붓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나를 가두었던 사육장의 문을 내 손으로 열고 나가려 한다. 이 기록은 한때 금융사의 충직한 일꾼이었던 내가, 온전히 나를 위해 일하는 '유급인생'으로 돌아가는 첫 번째 독립 선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