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으로 산 다시 시작할 용기

지옥의 문턱에서 만난 신용회복위원회 상담 후기

by 유급인생

영업일 기준 연체 4일 차. 내일이면 전 금융권에 나의 연체 정보가 공유된다.


그동안 처절하게 지켜온 신용점수는 곤두박질칠 것이고, 끈질긴 추심의 파도가 나를 덮칠 일만 남았다.



벼랑 끝에 서서 나는 깨달았다. 무턱대고 전화를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모든 순간을 정면으로 돌파할 유일한 해결책은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뿐이었다. 접수와 동시에 모든 추심이 중단되고, 원리금 상환 유예가 시작된다는 희망 하나를 붙잡고 예약해둔 지부로 향했다.



"벽 너머로 들리는 절박한 생존기"


예약제 덕분인지 센터는 예상외로 한산하고 정적마저 감돌았다. 출입문을 열자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직원분이 먼저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신분증을 가져갔다. 간단한 인적 사항과 상담지를 작성하고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옆 창구의 목소리들이 파편처럼 들려왔다.


"최근 대출이 너무 많아 자격이 안 됩니다"라는 말에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사람, 원금 감면이 안 된다는 말에 결정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사람, 예약없이 방문했다가 발 조차 들여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


그 짧은 시간에도 수많은 삶의 비극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곳은 단순히 '나 좀 살려달라'며 읍소하는 곳이 아니다.


상담사는 가이드를 줄 뿐, 결국 내 인생의 경로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최소한의 신청 자격과 제도의 구조를 스스로 숙지하고 오지 않는다면, 상담 시간은 그저 막연한 하소연으로 낭비될 뿐이다.



"채무 목록에 현재 잔액을 적으세요"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상담사는 수많은 이들을 겪어본 듯 무표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말투로 내 신용 조회를 시작했다.


잠시 후, 내 인생을 사육하던 채무 목록이 한 장의 종이로 출력되어 건네졌다.


상담사의 지시에 따라 채무 목록 옆에 현재 기준의 정확한 금액을 적어 내려갔다. 카드 앱에 접속해 결제일을 기준으로 남은 잔금을 하나하나 적어 넣었다.


내 삶의 무게를 숫자로 직면하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다행히 모든 채무가 실행 후 6개월을 넘긴 상태였고, 신용점수 하위 10% 기준도 충족하여 신속채무조정 자격을 얻었다.



모든 결정은 결국 나의 몫이다

상담사는 신속채무조정에 포함될 채무와 제외될 채무(햇살론 등 보증대출, 전세자금 대출)를 명확히 구분해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월 납입액이 소득 대비 너무 높으면 오히려 연체를 더 버텨 원금 감면을 받는 '개인워크아웃'으로 넘어가라고.


순간 고민이 밀려왔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신속채무조정'을 선택했다. 신용점수를 지키고 싶었고, 지금의 현금 흐름만 개선한다면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를 충분히 공부하고 가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상담사의 말에 휘둘려 또 다른 방황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5만 원으로 산 8개월의 골든타임

약 1억 원의 채무를 120개월 동안 매 월 120만원씩 갚는 조건.


결과적으로 10년 동안 원금의 절반에 가까운 4,400만 원을 이자로 더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누군가에겐 가혹한 숫자겠지만, 이 조건 속에는 '8개월의 유예'라는 숨겨진 기회가 있었다.


접수 후 확정까지 2개월, 이후 6개월의 거치 기간. 이 기간 동안 나는 이자만 내며 현금 흐름을 재정비할 소중한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터치스크린에 서명을 마쳤다. 이제 신용회복위원회가 나를 대신해 채권사들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접수비 5만 원과 첫 회 이자분에 해당하는 예납금.


이 작은 준비물로 나는 비로소 추심의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접수비는 접수일 기준으로 1주일 이내, 첫 회 이자분에 해당하는 예납금은 접수일 기준으로 2주일 이내 납부해야한다.


15분 남짓한 상담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이 활기차게 느껴졌고, 나도 다시 열심히 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솟구쳤다.


버스 정류장 앞, 유독 밝게 빛나 보이던 복권 판매점에서 5천 원짜리 복권을 한 장 샀다.


예전처럼 인생 역전의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이 아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없이 고뇌하고, 마침내 스스로 공부하고 결정하여 내 삶을 구조조정한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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