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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c Apr 20. 2022

GRADO GS2000e로 최고의 정찬을

사운드디자이너의 헤드폰 이야기 

이번 리뷰는 미국의 헤드폰 제조사 GRADO의 GS2000e. 스테이트먼트 시리즈의 최상위에서 2번째에 해당하는 모델로서 우드 헤드폰의 하이엔드 기종에 해당한다. GS2000e의 우드 하우징은 2종류의 목재를 이용한 하이브리드 구조로서 외부 인클로저는 마호가니로 만들어지며 내부 인클로저는 메이플로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면 GS2000e는 바이올린 제작과 동일한 개념으로 개발이 되었다. 인즉 각각의 목재가 서로의 특징을 살려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 셈이다. 메이플은 소리가 가진 에너지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역할을 다 하고, 마호가니는 그렇게 받아낸 에너지를 열어 울리게 하고 음악이 띤 본연의 음색적 구조와 예술가가 의도한 공간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그러하기에 필자에게 있어서 GS2000e의 소리는 마치 자연으로 초대하는 ‘나뭇결’과 같은 것이었다. GS2000e의 마호가니와 메이플 우드를 결합시킨 인클로저는 외관에서 느껴지는 포름의 진정성에 더해 GS2000e이 내재한 소리 그 자체였다. 이제 소리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GS2000e은 우리가 나무와 연관 지으며 어울릴 것으로 기대되는 사운드와는 모두 친화적인 헤드폰이랄 수 있다. 그러면 이제 나무로 깎아 만들어진 악기들로 이룬 작품들을 들어본다.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op.13, 2번의 1악장을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로 감상해 보았다. 18세의 멘델스존이 작곡한 이 작품의 서두에는 ‘사실인가?’라는 질문이 적혀있고, 젊은 날의 예술가가 가졌던 진지한 질문들이 음악 곳곳에 드리워 4대의 현악기를 통해 토로된다. 제1 바이올린의 날 선 질문에 바짝 붙어 대응하는 첼로의 고뇌하는 자문. 또 이 두대의 악기 간의 열띤 토론은 작품의 외관 라인을 그어 주며 그림을 짙게 그려간다. 고음역대와 저음역대의 개성을 뚜렷하게 내세우면서도 견고하게 틀이 잡힌 밸런스는 물론 노부스 콰르텟의 노련미가 출발점이겠지만, 같은 나뭇결을 가진 GS2000e의 동질감과 같은 것이 이들의 음악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능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우러져 중재하는 중음역대의 조화 그리고 작품 전체에 따스한 옷을 입히는 온기 감은 살아있는 나무의 생기 넘치는 결을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GS2000e은 4대의 현악기가 내뱉고 있는 직선적 질문의 선율이 난무하는 무대의 진지함을, 결코 미화하거나 가리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는 그대로 가림 없이 드러내 준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거침없음은 결코 귀에 부담을 주거나 피로를 느끼게 하지 않았고, 촘촘하게 엮어가며 쌓아 올리는 아름다움에 홀려 음악 깊음으로 온전히 소환당하게 해 준다. 4대의 현을 감싼 나뭇결을 울리고 공간의 공기층을 모조리 파동 시키는 그 미세한 흔들림 들을 살아 숨 쉬게 들려준다. 숨조차 잊게 하는 GS2000e의 능력에 필자는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또한 GS2000e는 공간의 사실성에 있어서도 충실하다. 공간의 크기와 청중석의 빈자리가 만드는 사운드의 변질조차도 연출 없이 들려줄 줄 아는 솔직한 성격을 띤다. 결코 공간을 부풀리거나 혹은 조화라는 명분조차 무색해질 정도로 미화를 하지 않는 GS2000e의 정직성은 마치 음악에 대한 진실성과 진지함을 가진 곧은 나무의 결처럼 느껴져 마음이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결코 드러 내지 않으며 묵묵히 좋은 악기들을 투명하게 형상 지어주는 또 하나의 악기라고나 하면 적절하겠다.  



다음으로 레브런 오보에 협주곡 1번, D minor를 프랑수아 를뢰의 연주로 감상한다. 대표적 목관 악기인 오보에의 나뭇결을 GS2000e는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허밍을 하듯 콧소리의 울림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보에는 오케스트라 목관악기 군에서 가장 돋보이는 악기이기도 하다. 오보에 특유의 사운드는 언제나 온기가 넘치고 우아하면서도 수줍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외롭기도 한다. 때론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한 오보에. 오케스트라 속에서 이 중음역대의 악기가 다채로운 표정들을 어떻게 담아낼까 궁금해진다. 사실 조화로우면서도 분리력 있는 존재로, 한 악기의 사운드를 본연의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으려면, 악기 자체의 ‘악기스러움’을 제대로 끄집어내야 한다. 오보에의 드러난 특징이기도 한 부드럽지만 다부진 소리만이 아니라, 속살 같은 섬세함까지 결결이 듣고 싶어 진다. GS2000e는 오보에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다. 섬세한 이중 리드의 진동을 시작으로 악기통을 통과하며 흘러나오는 과정마저 보여내고야 만다. 악기 관 입구에서 조절되어 나오는 공기의 양의 많고 적음도 숨결로 느껴지듯 가깝게 다가오게 한다. 오보이스트가 오보에를 연주하며 이리저리 악기를 지휘하듯 흔들 때마다 생기는 사운드의 흐름의 방향 전환까지 들려버리고 만다. 진정 GS2000e는 오보에의 민감한 리드만큼이나 소리결에 대한 민감한 감지력을 가진 듯하다. 오보에의 관에서 완급 조절되어 나오는 선율의 호흡에 따라, 함께 숨 쉬며 연주를 하듯 감상하는 시간이 된다.



GS2000e와 어울릴 것 같은 다른 음악들은 어떨지 들어본다.

필자는 지난 쇼팽 피아노 콩쿠르 1위 우승자인 Bruce Liu의 연주 중에서 특히, 론도 알 라 마주르 op.5, F major를 자주 듣고 있다. GS2000e는 이탈리아의 야심차고 옹골찬 피아노 FAZIOLI의 명랑하면서도 쾌활하고 다부진 소리와 함께 만나 마주르카의 매혹적인 리듬 사이사이의 빛을 들려주었다. Bruce Liu의 밀당하는듯한 손끝으로 표현하는 발레가 방울방울 빛나며 홀을 춤추는 사운드가 GS2000e로 흘러넘쳐 들어왔다. 에어감 넘치는 상쾌함을 준다. 개방형 헤드폰의 열린 공간에서 듣는, 선율의 춤사위는 사랑스럽기까지 한다. GS2000e는 FAZIOLI의 찰진 사운드가 피아니스트 Bruce Liu의 손끝에 감겼다 튕겨졌다 하는 탄력감을 고스란히 실어 준다. 이 3개의 조합으로 듣는 손끝 맛은 단연 일품이다. 



다음으로 Chie Ayado의 vocal과 기타의 앙상블을 들어 본다. GS2000e로 보컬을 들으면 목소리의 질감을 제대로 듣게 된다. Chie Ayado는 소나무 껍질 같은 질감인데, 곱게 칠이 된 기타의 손길을 따라 두 개의 질감이 묘하게 어우러져 더욱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 GS2000e가 담아 들려주는 2개의 선율의 결로 인해 뜨거운 커피 한 모금보다 더한 따듯함이 느껴졌다.



필자가 칭찬으로 일관한 GS2000e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 그릇으로 담아서 맛이 안나는 음식도 실제 있듯이 GS2000e는 묵직한 저음의 무게를 단단하게 담지는 못한다. 대편성의 교향곡의 무게감이라든가, 펀칭 감과 어택 감 있는 팝 음악들의 가격이라든가, 담아보아도 귀를 기울여도 충분한 맛이 나지 않는 음악도 있다.  GS2000e에는 나무의 결이 있다. 플레이팅 하는 그릇의 재질에 따라 음식의 풍미와 온도가 달라지듯, 나뭇결과 어울리는 음악으로 GS2000e를 만난다면 분명 최고의 정찬이 될 것이다.







https://gradolabs.com/headphones/statement-series/item/63-gs200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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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 이미지는 제조사 상품 페이지와 본 글의 기고 매거진에서 발췌한 것임

https://www.audiopie.co.k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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