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전해준 기억

by 복덕


장마가 끝났는지 하늘이 푸르게 뭉게뭉게 구름을 머금고 있다. 할 일 없이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공원의 풀잎 위에도 꽃잎 사이사이에도 사뿐히 내려앉은 빗방울들이 방울방울 노닐고 있다. 그림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던 닭의장풀에도 빗방울이 내려앉았다. 공원 구석진 곳에서는 아직도 지지 않은 수국들이 수국수국 속삭인다. 많은 피해를 낸 긴 장마와 때 이른 태풍을 견디며 숨어 있는 작은 풍경들이 아름답기조차 하다. 이런 풍경들을 뒤로한 채 해마다 태풍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아득한 옛날 젊었던 한 시절을 기억해 보게 된다. 결혼할 때 혼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다. 기본이랄 것도 없게 겨우 인사치레 정도만 했던 것이다. 그래도 손윗동서가 원했던 한복은 해 준 것이 그나마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손윗동서는 무엇이 불만인지 내가 해 온 이바지 음식을 두고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조금 귀 기울여 들으니 커다란 돔에 비늘이 붙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아직도 귓가에 구시렁 소리가 맴돌고 있다. 한번 마음에 박힌 소리는 쉬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손윗동서의 불만도 이해가 된다. 혼수 예단 대신 책만 한가득 가져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생뚱맞은 일이었을까. 세계명작전집, 한국 명작전집 이런 식으로 이름 있는 여러 전집을 싣고 왔으니 누가 좋아했을까.

신혼살림은 큰 시누 집에서 차렸는데 단칸방에 책들은 포장도 풀지 못한 채 다락으로 옮겨졌다. 큰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는데 그때도 노는 방은 세를 내는 바람에 나의 전집들은 또 쟁여져 있었다.

세월이 얼마쯤 흘러 온전히 우리 집이 되었을 때 나의 전집들을 책꽂이에 꽂아서 그때야 빛을 보게 되었다. 내가 돈을 모아 틈틈이 사 모은 책들이다. 나는 특히 김동인 작품들을 좋아했다.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네, 광염 소나타, 광화사, 운현궁의 봄, 붉은 산 등, 작가가 반민족 행위자라고 해도 내가 그의 소설에 빠졌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책은 더욱 늘어났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나도 학습지 방문판매 교사를 하면서 판매를 잘 못하면 내 돈으로 내 실적을 올리곤 했었다. 자연도감, 뮤지컬 시리즈, 옛날이야기, 삼국지, 영어 오디오 북 등등, 이천만 원도 넘게 책값으로 나갔다. 돈을 벌러 간 게 아니라 돈을 쓰러 간 것이었다.

2003년 9월, 추석 연휴에 매미 태풍이 터졌다.

그때는 휴일도 없이 장사를 하던 시절이라 일을 마치고 저녁에 이불을 펴고 잘 준비를 하는데 축담까지 물이 차올랐다.

“앗,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재빨리 애들 교과서와 교복을 책장 꼭대기로 던져 올렸다. 그때 딸은 고3이었고 아들은 중 1이었다. 순식간에 냉장고가 물에 둥둥 뜨고 안방까지 물이 차고 들어왔다. 마당에 있던 강아지는 어느새 옥상 계단에 올라가 제 살길을 찾았고. 방에도 물이 허리를 넘었다. 아이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어디로 피할 수도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 살려”

가냘픈 소리도 들렸다. 뒷집 할머니 소리였다. 남편은 벽을 더듬어 뒷집 담벼락을 넘어 할머니를 모시고 나오고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물이 쫙 빠져나갔다. 바닷물 때가 만조인 데다가 웃비가 쏟아지니 동네를 가르는 하천이 넘쳐 물길이 동네로 쏟아진 것이다. 온 동네가 뻘 탕이 되고 가재도구도 하나 쓸만한 것이 없게 되었다. 그날 밤은 장롱 위쪽의 안 젖은 것으로 대강 쓸고 닦아서 밤을 보냈다. 엉망진창의 아침이 밝았다. 가까이 사는 친척들이 뉴스를 보고 와서 짐을 정리해 주고 자원봉사자들도 나왔다. 소식을 듣고 아는 동생도 보리차 물을 끓여 왔다. 옷가지들이며 가재도구며 모두 집 밖으로 실려 나가고 휘어진 책꽂이들도 실려 나갔다. 나의 전집들도 나를 떠나 버렸다. 모비딕도 가버렸고 감자도 광염소나타도 다 가버렸다. 애지중지 나와 함께 살아온 나의 전집들을 태풍매미가 삼켜버렸다. 모두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굳건하게 나의 손길을 기다리던 나의 뿌듯함이 이제는 없어졌다. 책꽂이를 빠져나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널브러져 있는 나의 책들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나의 기억에는 전집도 없었다. 내가 김동인 소설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불현듯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내가 그들을 잊고 살았을까 싶다. 해마다 장마가 와도 태풍이 와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불현듯 기억이 났을까. 해마다 오는 태풍이 기후 위기 시대인 올해는 빨리 왔다고 한다. 나에게 이런 기억을 일깨워 주려고 빨리 왔을까. 태풍은 기억을 나게도 잊게도 하는 묘한 심술이 있는가 보다. 이제 나의 전집, 나의 책들은 정식으로 보내 주어야겠다.

인터넷에 나의 서재를 만들었다. 아들이 엄마를 위해서 만들어 준 서재다. 신식서재인 셈이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우리 집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세계 명작, 한국 명작 이런 책만 읽다가 젊은 작가들의 책을 읽는다. 이 서재에서 또 다른 책들을 새로운 안목으로 만날 것이다. 아무리 비가 와도 태풍이 불어도 헤어지지 않는 나의 뿌듯함을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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