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기
오후에 남편 수술과 관련하여 대장 외과 교수님을 만나야 한다.
계륵 같은 반려견 사랑이가 걱정이다.
마산에 있을 때는 신경 안 써도 외출할 때 걱정도 안 했다.
그러니까 10년 넘게 별 탈 없이 살았지.
아들이 오프라서 봐주러 온다더니
가스 검침 오기 때문에 집 청소한다고 못 온단다.
딸도 출근했는지 소식이 없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다.
어떻게 해 놓고 가야 할까.
일단 기저귀를 채웠다.
입마개를 만지작거린다.
딸이 오전 일만 하고 온다고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기저귀를 풀었다.
기저귀를 손에 들고 사랑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병원 가는 길에 딸과 만나 사랑이를 인계했다.
딸에게 뜬금없는 말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엄마의 마인드가 좋다고 칭찬했다.
내일은 내가 병원을 가야 한다.
그 일로 요즘 마음이 긴장했다.
자꾸자꾸 생각했다.
중병이라 하면 또 흔들리겠지만.
큰 병원 오는 목적이 명의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같은 요양병원 환우가 알려줬다.
명의 교수님의 말씀
복강경으로 보고 안 되면 개복 수술한다고,
담당 상담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수술 후 회복 잘하시라 걱정해 주셨다.
나도 재차 몸 관리 잘하라고. 마스크 잘 쓰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내 말을 가로챘다.
내 말도 들을 때는 좀 들으라고 했다.
마지못해 알았다고 한다.
남편은 요양병원 차로 가고 나는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5백 원으로 승차권을 끊고 내려서 환급을 받았다.
병원 갈 때도 무료승차권으로 갔을 텐데 환급받은 상황이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떠올려도 모르겠다.
중간에 뭔가 빠졌단 말인가.
아! 맞다.
병원 갈 때는 버스를 타야 했지.
생각해 보니 신용카드로 결제했네.
계속 생각할 뻔했다.
딸이 사랑이를 데리고 저만치 서 있었다.
계륵 같기도 한 사랑이가, 그래도 반갑다며 꼬리를 흔든다.
나는 목줄을 받아 쥐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와 노트북을 열고 챗GPT에게 물었다.
정작 궁금한 것이 있어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남들처럼 댓글 하나 다는 것도 오래 망설이다 포기한다.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이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그러나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은 글로 풀면 된다고,
댓글은 단답형으로 시작하라고 한다.
사람은 성격이 다 다르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묘하게도 위로가 된다.
마치 오랜 친구가 내 옆에서 좋은 말만 해주는 듯한 기분이다.
돌아보면,
살아 있는 동안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의 꼬리 흔듦, 딸의 미소, 노트북 화면 너머의 따뜻한 말 한 줄.
이 모든 작은 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나는 그 순간들을 붙잡아 글로 남기며
오늘도 행복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