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때쯤, 뜬금없이 엄마에게 카톡 하나가 왔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먼저 연락 한번 한 적이 없어 모니터 밑에 뜬 엄마의 카톡사진이 반가웠다. 매일 본인이 키우는 꽃과 나무들을 프로필 사진에 올려두고선 채팅창에는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말들을 적어 놓는 우리 엄마. 내가 찍어준 예쁜 엄마의 사진도 이제는 늙어 주름살이 보기 싫다며 저리 치우라고 말한다. 내 눈에는 작은 들꽃사진보다 쉰이 넘었음에도 또렷한 이목구비와 발그스름한 양 볼을 가진 엄마가 더 곱다.
난 곧바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작은 메시지 박스를 눌렀다. 그리고 이내 채팅창에는 도톰한 니트 카디건을 입은 모델의 사진과 쇼핑몰 유알엘이 띄워졌다. 연달아 날아온 카톡에서는 귀여우면서도 어느새 세월이 지긋하게 묻은 부탁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울린다.
- 이거 하나만 사서 보내주라. 엄마가 계좌이체 시켜줄게.
엄마가 고른 카디건은 옅은 회색에 그녀와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카디건 외에도 원피스와 다른 옷가지들을 몇 개 골라 10분도 안 되어 엄마네 집으로 주문을 시켜주었다. 내게는 클릭 몇 번이면 끝나는 일들이 이제 엄마에게는 어려운 숙제이자 골치 아픈 작업이 된 것이었다.
난 새삼 엄마의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했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한 엄마와 난, 나이차이가 21년 밖에 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 중에 가장 젊고 트렌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했고, 또 감사했다. 유치원 작품 전시회를 할 때에도, 다른 엄마들이 자기 자식 작품에 초콜릿과 사탕을 놓아줄 때 우리 엄마는 근사한 장미꽃 한 송이를 하나하나 꽂아주었고, 유행하는 신발과 신기한 음식들도 엄마는 어디서 알아오는 것인지 갑작스럽게 구해와 나와 동생을 놀라게 해 주었다.
꾸미는 것에 한참 관심이 많았을 사춘기 시절에는 계좌이체하는 법을 몰라, 매번 옷을 살 때면 내가 엄마에게 조르고 부탁했었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고, 택배로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때 나에게는 지금의 엄마처럼 어려운 숙제였고 어른들만 할 수 있는 일종 음주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자동결제나 모바일뱅킹을 할 줄 모르는 엄마가 부탁을 해온다. 내게 저 말을 하기까지 주저하기도 하고, 또 혹여나 딸인 내가 귀찮은 내색이라도 보일까 걱정했을 것이다. 나도 10대 시절 엄마나 아빠에게 저런 부탁을 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고 마음을 졸였기 때문에 저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내가 우려하던 예상처럼 거절당하거나 '나중에'라고 말하며 사람을 간절하게 기다리게 하는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고 힘든 건지도 알기에 지체 없이 엄마에게 답장을 했다.
- 시켰어 엄마. 돈은 괜찮고 이런 거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바로 주문해 줄게.
그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과 빠른 행동들. 조금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간단한 일로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어린 시절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는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바뀌어버린 우리의 역할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제는 내가 엄마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부탁 한 마디가 밀린 일들을 좀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다음 부탁도 거뜬하게 들어줄 수 있도록 경제력을 갖추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만든다.
아마, 그 시절의 엄마도 지금 내 마음과 같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오느라 시대의 흐름을 놓쳐버린 걸 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놓친 엄마의 시절과 배움을 앞으로 내가 대신 보상하고 채워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