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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Jan 04. 2023

영화는 거들 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서올리


사각사각 펜 소리에 송태섭, 정대만, 서태웅, 강백호, 채치수 등 북산고 5인방 한 명 한 명이 깨어난다. 채색이 이뤄지고, 커다란 스크린에서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벌써 가슴 벅차오르는 기분, 추억은 이내 감격이 된다. 일본에선 개봉 첫날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슷한 시기 개봉한 ‘아바타2: 물의 길’을 압도했다.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다분히 1990∼2000년대 청춘을 사로잡았던 원작의 추억에 기대고 있다. 인물 소개 하나 없이 다짜고짜 북산고 대 산왕공고의 시합으로 시작한 것부터 그렇다. 영화를 찾은 대다수 관객은 이미 코트 위 선수들의 이름을 알 테니까. 


그리고 몸이 먼저 기억하는 명대사, 명장면을 압축해 풀어놓는다. ‘넘버1 가드’가 적힌 송태섭의 손바닥이나 강백호의 풋백 덩크와 채치수의 고릴라 덩크, 산왕의 에이스 정우성의 ‘정우성 레이업’까지. ‘불꽃 남자’ 정대만이 “나는 누구지.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며 3점 슛을 꽂을 땐 전율이 인다. “포기하는 순간, 시합 종료”라는 안 감독의 말과 “영감님(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죠? 난 바로 지금이라고요!”란 강백호의 말엔 여전한 울림이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마냥 만화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림이 산뜻해졌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 특유의 날카롭고 세밀한 필치를 살리면서 3D 컴퓨터그래픽(CG)으로 실감 나는 현장감을 구현했다. 


원작에서 조연 역할이었던 송태섭을 서사의 중심에 놓은 것도 새로운 변화다. 170㎝도 안 되는 문제아 송태섭이 형의 그늘을 벗어나 농구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원색의 농구장과 파스텔 톤의 오키나와(沖繩)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여기에 방황했던 정대만과 동료 복 없었던 채치수의 과거사가 겹친다. 문제아, 풋내기, 모범생 등 서로 다른 5명이 농구 하나로 뭉쳤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각자 다른 미용실을 다니는 것 같다.


북산고 대 산왕공고, 원작의 마지막 시합에 집중한 선택은 영리하다. 


이 한 경기에 북산 5인방 각자의 우주가 담겨 있다. 원작자이자 감독인 이노우에는 125분이란 빠듯한 상영시간 속에 저마다의 캐릭터를 한 컷 한 컷 보듬으며 관객의 추억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이미 관객이 ‘슬램덩크’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터라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만화책으로 예습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더빙판뿐 아니라 자막판에도 한국식 이름이 쓰이는데, 익숙하기에 그리 불편하진 않다.



시합 종료 5초 전, 영화는 갑자기 모든 음향을 배제하고 만화의 한 컷 한 컷을 숨 가쁘게 담는다. 강백호가 서태웅의 처음이자 마지막 패스를 받기 위해 림 근처에 서 있고, 관객은 되뇐다. ‘왼손은 거들 뿐’.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거들 뿐이다. 영화를 완성하는 건 가슴속에 새겨 있는 청춘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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