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빚어낸 꿈: 마음이 머무는 한옥 카페, 다시 찾은 쉼의 공간
쉼을 담았습니다.
마음을 담았습니다.
나를 다독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요한 숨 하나가 내려앉아 감쌉니다.
그녀는 품이 넓었다. 고갯길을 달리던 차가 ‘쿵’ 하는 순간, 두 아이를 날개처럼 감쌌다. 찰나의 정적 뒤, 세상이 날카롭게 흔들렸다. 금속이 울부짖고, 눈발은 유리창 위로 흩어졌다. 곧 어깨에 불이 붙은 듯 얼얼한 통증이 파문처럼 퍼졌다. 몸과 마음의 경계가 무너졌다. 잠시 세상이 멈춘 듯,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눈길에 미끄러진 아홉 대의 차량이 연쇄로 부딪친 추돌사고였다. 그 품 안에서 두 아이는 무사했다.
아늑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은 사치였다. 오른쪽 팔이 꺾이고 빠지는 극심한 통증 속에 그녀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빠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긴급히 수술을 받고 병원에 묶여 있는 동안, 남겨진 세 아이와 가족의 하루는 제자리를 잃었다. 집 안에는 엄마의 목소리 대신, 시계 초침만이 ‘또각또각’ 시간을 세고 있었다. 아이들은 방문 모서리에 숨어 엄마의 냄새가 없는 집을 서성이거나, 서툰 숨을 쉬며 현관문만 바라보았다. 이모가 들러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었지만, 아이들의 흩어진 하루는 쉽게 모이지 않았다. 엄마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는 수묵화 속의 여백처럼 텅 비어 있었고, 그 여백은 숨 막히는 침묵과 기다림으로 가득 찼다.
쌀쌀한 저녁엔 고등어조림이 제격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려면 무엇보다 먹는 것이 중요했다.
“오늘은 고등어조림입니다. 도와줄 사람?”
“저요, 저요!”
아이들은 손을 높이 들었다. 작은 손들이 부엌의 불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이모는 아이들이 주방의 주인이 되도록 도구와 재료를 하나씩 맡겼다. 냄비 속에서는 생선과 양념이 만나, 흩어진 슬픔을 보글보글 끓여내듯 울었다.
“파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베란다 문을 열어 파를 안겨 주었다. 차가운 파를 쥔 손끝에서, 이모의 든든함과 함께 가족의 온기가 다시 피어올랐다.
맛있게 끓는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부엌 가득 퍼진 냄새 속에서는 하루의 피로가 김이 되어 흩어지고, 아이들의 웃음이 다시 모였다.
“수저를 놓아주시오.”
이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저와 물컵이 식탁 위에 놓였다.
“이모, 엄청 맛나요!”
아이의 찬사에는 엄마가 함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조용히 섞여 들었다.
“이모가 넉넉하게 했으니, 엄마도 맛보게 병원에 가져갈까?”
두 아이는 참새들의 합창처럼 힘차게 움직였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집 안 공기마저 따뜻하게 데웠다.
그녀는 병실의 하얀 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스며든 햇살이 이따금 시계를 스쳤다. 가족을 위해 온몸을 던졌으나, 정작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무력감. 그녀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았다.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허무함과 맞닿았다. 이모는 그 허무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감의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공허함 속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공부해 볼래?”
내년이면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학원도 갈 수 있을 테니, 공부하는 엄마가 멋지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숨결이 되어, 바쁜 일상의 루틴 속에 스며들었다.
만학도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다가도 이내 아이들을 불렀다.
“엄마 좀 도와줘!”
아이들은 만화를 보다가도 곧장 달려와 용감한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방 안에 흩어지고, 공책 위에는 지우개 가루가 하얀 눈처럼 소복이 내려앉았다. 느리게 흐르던 나날 속에서, 페이지마다 재도전의 땀방울이 번져 있었다. 계절이 바뀌자 그녀의 성적이 쑥쑥 올랐다. 더욱 신이 난 아이들은 이모를 만나면, 서로 다투듯 자랑했다. 드디어 졸업식 날, 그녀는 상담심리학과의 과탑으로 졸업했다. 학사모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모두의 웃음이 봄날의 햇살로 눈부셨다.
그녀의 꿈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의 길을 걷는 것, 또 하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 자주 들르던 카페를 여는 것이었다. 한쪽엔 마음을 돌보는 책들이, 다른 쪽엔 향긋한 커피 향이 있었다. 청소년 상담에도, 커피 한 잔의 온기에도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두 길을 동시에 달렸어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길과 은은한 향기, 그 끝은 모두 ‘사람’이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이들은 엄마를 가르친 선생님답게 질문을 쏟아냈다. 각자의 재능으로 돕겠다는 격려와 응원까지 이어졌다. 가족회의 끝에 그녀는 결국 두 꿈을 합쳐 한옥 카페를 열기로 했다.
그녀의 가을에 단비가 내렸다. 마당 한쪽 수로로 빗물이 졸졸 흐르고,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노래를 만들었다. 단풍나무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붉게 물들고, 소국향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니 빗방울을 톡톡 떨궜다. 아담한 텃밭엔 지푸라기로 묶인 배추가 알이 차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봄에 피었던 복사꽃은 여전히 기억 속 어딘가에서 분홍빛으로 흔들렸다. 도라지 또한 보랏빛 꽃봉오리를 예쁘게 터뜨렸으리라. 수국은 피었다가 지고, 장미는 울타리 곁에서 여름의 잔향을 지켰다. 전등은 제자리를 지키며 잔잔한 빛을 내고, 청명한 하늘은 창틀 위에 내려앉아 하루를 다독였다.
만화 축제가 열렸다. 그녀의 카페도 후원으로 참여했다. 사람들은 오색 풍선을 들고, 티켓을 손에 쥔 채, 색색의 웃음이 번지는 축제의 물결 속으로 들어섰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웃음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창가에는 ‘카페의 매력에 빠졌다’는 메모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원두를 사러 오는 사람, 사과를 건네는 사람, 캐리커처를 들고 온 사람, 그리고 카페를 수채화로 그려 붙여주는 사람까지.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따스함을 남겼다. 그녀의 한옥 카페는 그 온기로 숨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커피를 내린다. 엄마가 처음 연 한옥 카페는 이제 작은 무대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게시글부터 이벤트, 선물 포장, 인테리어까지 아이들의 손끝이 바쁘다. 손님이 많으면 그녀는 잠시 첫눈을 맞은 아이처럼 당황하지만, 아이들은 오랜 시간 맞춰진 오케스트라처럼 착착 일을 이어 간다. 이모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커피 향과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엉켜, 한옥의 숨결로 대들보까지 스며든다. 이제 이곳은 가족이 함께 빚은 쉼을 완성하는 공간, 마음이 머무는 집이 되었다.
쉼을 담고 갑니다. 마음을 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