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널 좋아하지 않는 이유
독일어 시간
1. 독일어 시간 때 갑자기 수학 시험 어땠는지 물어보는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2. 너와 나는 같은 독일어 반에 있었다. 그 수업 첫날만 해도 나는 너의 존재를 몰랐다.
3. 네가 내 앞의 책상으로 옮겨 앉던 어느 날, 넌 나에게 갑자기 수학 시험이 어땠냐고 물었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 어색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 눈을 피했다. 너랑 한 번도 얘기를 해보지 않았고 네가 다른 애들과도 별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난 당황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난 널 인식하기 시작했다.
4. 한 명씩 짝지어져서 독일어로 얘기하는 과제를 할 때, 내 대각선 앞에 앉아서 너의 짝꿍과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고 나와 내 짝꿍이 웃으며 떠들던걸 바라보던 네가 기억난다. 너는 무언가에 대해 웃을 때마다 나를 쳐다봤고, 그때부터 너의 시선을 자주 만났던 것 같다.
5. 그렇기에 나에게는 독일어반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수학 시간
1. 수학은 우리가 같은 반에 있었던 또 다른 반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때, 즉 10학년때, 거의 대부분의 수업에서 나는 조용하고 주늑들어 있었지만 독일어와 수학만이 내가 활발했던 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슨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너라는 거다.
2. 수학 반에서 너는 항상 너의 친구 2명과 내 뒤에 앉았다. 가끔씩 너는 너의 한국인 친구에게 한국어를 배워서 말하곤 했다.
3. 어느 날 네가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왓츠앱으로 자기소개하며 수학 문제를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직도 그 화면을 스크린샷한 사진이 있다. 저녁 6시 55분이었다.
영어 수업
1. 10학년 영어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당시 나는 혼자 영어 A반으로 올라왔기에 영문학 분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새로운 반에 왔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난 우리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영어 선생님께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괴롭힘을 당한다는 말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문학 분석을 시키고 독백 발표를 시키고 답을 모른다고 답했는데도 계속 몰아붙이는 수업들은 나에게 분명한 괴롭힘이었다.
2. 선생님은 동정심이 없으신 분이었다. 그분은 조별과제를 할 때면, 팀을 정할 때 항상 랜덤으로 몇 명을 뽑아서 직접 팀원을 정하게 하였고 각 팀 중 가장 못하는 학생에게 조별과제 발표를 시켰다. 그날도 조별과제를 하는 날이었다. 팀을 정하기 위해서 선생님을 몇 명을 호명했고 너도 호명되었다. 호명된 애들은 반 앞에 섰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문학 분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들어가서 반에서 가장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원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뽑히고 그저 팀한테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때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총 3명을 뽑을 수 있는데 앞서 2명은 너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한 친구였고 그 뒤에 내 이름을 불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수업이 별로 안 남았지만 조끼리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내 옆에 앉았던 네가 기억난다.
생일 축하
1. 우리 학교에선 4월엔 봄방학이 있다. 내 생일은 개학 후이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방학 후 일주일간 더 한국에서 지내야 했다. 내 생일날의 어두운 밤, 가족들과 함께 케이크를 밖에서 나눠먹으려고 준비하고 나가던 찰나에 너한테서 문자가 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셀카와 생일 축하한다는 장난스럽지만 진심 어린 메시지였다.
2. 그때 어느 정도 확신했던 것 같다.
독일어 시험
1. 너는 수학문제 말고도 나한테 많은 걸 물었다. 네가 체육 경기로 수업을 빠지게 될 때면 너는 나에게 독일어 노트 필기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항상, 매번, 나에게 모든 게 완벽하다고 너무 고맙다고 칭찬을 했다.
2. 그때부터 문자 채팅 속 담백한 말투의 너는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길게 늘어트리며 날 친근하게 불렀다.
3. 학교가 끝나가는 6월에 독일어 스피킹 시험이 있었다. 체육 경기로 나보다 그 시험을 늦게 치게 된 네가 나한테 인스타그램으로 시험에 관해 물어보았다. 간단하게 끝내지 않고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며 대화를 계속 이어나간 게 기억난다. 너의 시험이 끝나고 너는 나한테 시험 후기를 알려줬다. 나 덕분에 잘 쳤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어 선생님이 시험에 아무 상관없는 미국 선거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봤다고 말해줘서 너무 웃겼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화는 계속되고 여름방학 때 인턴으로 무엇을 하냐고 물어봐서 알려주고 서로 여름방학 잘 보내라고 하고 그렇게 10학년이 끝났다.
너의 아버지
1. 너의 아버지였던 우리 반 체육 선생님은 악명이 높았다. 선배, 친구, 모두에게 그분은 체육에 진심이신 스파르타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나는 그분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스파르타식의 체육 수업을 하긴 하지만 나와 학생들에게 진심 어리게 체육을 잘하도록 응원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느 날 체육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냐, 모든 걸 잘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보신 기억이 있다. 체육 시간에 나의 되지도 않는 처절한 몸짓만 보시는 분인데 내가 다른 과목에서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아셨는지 의문이었지만 정말 감사했다.
2. 11학년이 되고 나는 학교 주변에서 언니와 자취를 시작했다. 가족 다 같이 새로 들어갈 집 계약을 하고 마을 주변을 산책한 후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너에게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오늘 너 본 것 같은데 이사 왔어?'라고 연락이 왔다. 사실 그 마을은 네가 사는 마을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 집에서 너의 집까지 걸어서 30초면 도착하는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3. 너의 그 연락에 내 이사 소식을 알리고 며칠 후 하교할 때 너의 아버지를 만났다. 11학년부터는 체육이 없기에 정말 오랜만에 마주쳤다. 그분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시면서 나를 부르셨고, 내가 뒤 돌아보았을 때 이사 왔다며 이제 이웃이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4. 네가 너의 아버지에게 내 얘기를 했다는 사실은 날 꽤나 기쁘게 했다.
칭찬
1. 지금에서야 깨닫는 거지만 11학년은 나에게 큰 전환점과 같았다. 계속 도움만 대부분의 수업에서 조용했던 내가 학업적으로도 우등생로 거듭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내 자존감과 자신감에 너의 말들은 정말 큰 역할을 했다.
2. 점수를 잘 받던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직접 점수를 물어보지 않게 되었고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좋은 점수를 받아도 밝히지 않고 혼자 기뻐해야 했다. 그런데 너는 항상 시험이 어땠냐고 물어보고 매번 너무 칭찬을 잘해줬다. 그때 네가 해준 칭찬 덕에 다른 칭찬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The Office
1. 더 오피스는 내 밥친구였다. 모든 에피소드가 기억날 정도로 좋아하고 내 친구라면 나의 인생 시트콤은 더오피스라는 사실은 당연할 것이다. Dwight이 나의 최애이지만 더 오피스의 초반 시즌은 Pam과 Jim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나는 Jim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는 Jim을 정말 닮았다. 너도 미국인이라 그런지 Jim의 제스처나 말투도 나에겐 너무나도 비슷하게 느껴졌고 지루한 회사 생활을 하는 Jim의 모습이 10학년 독일어 시간의 너를 떠올리게 했다.
2. 더 오피스의 시즌 2에선 Jim이 다른 지점으로 옮겨 Karen을 만난다. 잘 통하던 Karen과 Jim은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만 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Jim이 Pam을 못 잊어서 둘은 헤어짐과 동시에 Jim과 Pam은 연인이 된다.
3. 나는 Karen을 처음 본 순간부터 Pam보단 Karen에 더 공감되고 Jim과 Karen의 관계를 응원했다. 운명이었을까.
영혼으로 안내하는 문
1. 널 정말 편하게 대하던 때도 있었는데.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때.
2. 너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됐을 때 우리가 우연히 나란히 서면, 너의 큰 키로 만들어지는 키 차이가 설레었다.
3. 언제부턴가 영어 시간에 너의 대각선 옆의 자리에서 너를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너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발견하며 너를 알게 됐기에 너를 바라볼 때마다 나와 외적으로 다른 점이 많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일단 너는 키가 크고, 머리가 복슬거리는 곱슬머리고, 속눈썹이 길고, 무언가를 읽어야 되면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폴로 니트를 자주 입고, 추운 날씨에도 반팔과 반바지를 자주 입었다.
4. 모든 건 너의 영혼으로 안내하는 문이었기에 모든 게 좋았다.
Daniel Ceaser
1. 너는 Daniel Ceaser 음악을 좋아했다. 정확히 어떻게 내가 이 사실을 아는지, 또는 이 정보가 사실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네가 스토리에 올렸던 Daniel Ceaser의 get you를 스포티파이에 검색해서 가사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있다.
2. 내가 Ceaser의 japanese denim을 인스타그램 노트에 올렸을 때 나한테 Daniel Ceaser 노래라고 들떠서 답장하고는 그 뒤 얼마 안 가서 너는 점점 내 답장을 오랫동안 안 읽지 않았다.
2. 한동안 Ceaser 노래는 안 들었다. 네가 생각나서는 아니고, 네가 날 좋아한다고 확신했던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Daniel Ceaser를 다시 듣는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좋은 노래를 많이 알게 되었다. 가사가 예쁘고 잔잔한 멜로디가 마음이 가난한 밤에 유독 외로울 때 듣게 된다. Who knows.. Cool.. Always..
읽지 않는 메시지
1. 나는 보통 너의 연락에 답장이 늦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미국인이라서 더욱 힘들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너에게 내가 한 말이 문맥상 어색하게 들리면 어떡하지, 문법이나 철자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런 내가 답장을 늦게 하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답장이 빨랐기 때문이다.
2. 너의 연락빈도가 낮아지고 답장 시간이 늦어졌을 때야 내 연락 스타일을 되돌아보았다.
여자친구
1.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2학년 개학식 며칠 전,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그녀의 포스트에 댓글을 단 너를 보고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너희 둘이 사귀고 있다는 것을. 너는 그런 걸 별로 안 하는 사람이니까.
2. 그렇게 12학년 시작부터 그 둘은 사귀는 상태로 나타났다. 둘 다 미국인이라서 여름방학 동안 같이 미국에서 시간을 보낸 걸까? 그러다 사귀게 된 걸까? 11학년때는 전혀 몰랐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걸까?
3. 12학년은 나한테 많은 변화가 있었다. 11학년의 큰 변화들이 긍정적이었다면 12학년의 변화들은 부정적이었다. 사실은 많이 부정적이었다. 언니가 대학에 가고 자취를 혼자 하게 되면서 동시에 난 입시의 무게를 온전히 혼자 견뎌야 했다. 내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불안함인지 그리움인지 외로움인지 슬픔인지 화인지 모르겠는 감정들을 처리할 때 너는 점수를 점점 잘 받기 시작했다. 네가 11학년때 지금 레벨의 수학 수업에서 더 낮은 단계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을 때 내가 널 응원했던 날들이 우습게 상황은 역전되었다.
4. 난 그때 네가 내 연락을 점점 안 보던 그 시기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때에 비해 너무 무거워진 삶의 무게에, 너에 비교되는 내가 점점 축 처지고 벅찬 기분이었다. 한때 우리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옥토버페스트
1. 옥토버페스트는 독일의 큰 맥주 축제다. 9월에 약 3주간 열린다. '옥토버'페스트—옥토버는 독일어로 10월이다—인데 9월에 열리는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날씨가 안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9월의 날씨가 환상적인 건 아니다. 내가 간 옥토버페스트엔 항상 비가 오긴 했기에 내후년엔 8월에 할 수도 있다.
2. 지구온난화가 옥토버페스트를 점점 여름으로 끌어당기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던 9월의 나는 어느 토요일 아침에 장을 보러 갔다. 주중엔 시간이 없고 일요일엔 마트가 문을 닫는 데다 주말 오후엔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나는 매주 토요일 아침은 장을 보는 데에 집중했다. 평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저렴한 마트인 penny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잔뜩 본 후 양손 무겁게 버스정류장에서 40분간 기다리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릍 탔다.
3. 그때, 내가 내릴 정류장 바로 앞의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을 때, 네가 옥토버페스트에 가기 위해 전통의상을 입고 버스에 탔다. 너는 모자를 푹 눌러쓴 나를 못 본 듯했다. 내 손은 장바구니를 움켜쥐었다. 장바구니에 다 담기지 않고 넘쳐나는 채소들. 난 그 자리에서 나는 식은땀으로 그대로 증발하고 싶었다.
4.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널 좋아한 이유와 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이유
1. 10학년때의 네가 기억난다. 반 앞에서 발표할 때 말을 더듬지만 자신 있었던 너. 지금의 너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네가 보기엔 나도 그럴까?
2. 네가 아닌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상화한 너의 허상을 난 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다. 너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다. 난 너를 알긴 했을까. 너무 힘들어서 기대고 싶었던 내 영혼이 안쓰럽다. 가끔씩은 내가 지루했던 너에게 잠깐 이용 당했다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객관적이게 상황을 바라보자면 내가 먼저 한 것은 정말 없다. 오늘 하루 어땠냐고 몇 번 묻는 것 외엔 나조차 너의 문자를 기다리고 너가 직접 말을 걸지 않는 것에 속상해 할 뿐이었다.
3. 너를 보며 나를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해서 너와 졸업하기 전에 꼭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만 안다면. 정말 얼굴을 마주 보고 섰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앞으로 다시는 못 볼 너를 어린 날의 내가 아쉬워하겠지만 그냥 보낼 것 같다.
4. 나를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했었냐고. 맞다면 언제 어떤 모습을 좋아했냐고. 아니라면 나한테 왜 이런 것들을 했냐고 묻고 싶다.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너도 나를 보며 너를 발견했을 거고, 나를 잠깐 좋아했지만, 11학년이 되며 너는 다른 환경에 둘러싸였고, 너의 잘난 친구들 앞에서 나한테 와 말을 걸 정도로 나를 좋아하진 않았고, 점점 나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겠지. 나쁜 놈.
너에게
너를 보면, 내가 널 좋아한
이유가 떠올라.
결국 내가 너를 좋아한 이유는,
첫 연애를 너와 한다면 전혀 후회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너의 친구들 사이 너를 보면
넌 내향적이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신중함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뒤를 돌아볼 때 돌아보지 않는 다정함이 있고
수업시간에 너를 보면
학교를 대표할 만큼 체육을 잘 하지만 학업도 열심히 할 만큼 책임감이 강하고
채팅 속 너를 보면
담백한 말투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진실성이 있고
체육을 하는 너를 보면
윗학년과 아래 학년 사람들과 대인관계가 좋으며
네가 나를 좋아했다고 믿었던 그 기간의 너를 떠올리면
장난기 있지만 진중한 모습이 나를 닮았고
그리고 너의 여자친구 옆의 너를 보면
그 애를 묵묵히 응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솔직히 보기 힘들었어.
나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조차 힘든데 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이 잘 풀린 것처럼 보여서 왠지 얄미웠어.
얄밉다는 단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었어 사실.
난 12학년부터 정말 힘들었는데
넌 하필 그때부터 여자친구가 생기고 점수를 잘 받기 시작했으니까.
난 사실 많이 힘들었어.
혼자 자취를 하면서 자주 외로웠고
혼자 입시를 하면서 자주 불안했어.
그럴 때마다 내 무의식이
묵묵히 독립적으로 지내다가 무너지는 나를
위로하는 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어.
입시 기간 동안 한없이 그려졌어.
그만큼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나 봐.
근데 너랑 너의 여자친구를
학교에서, 복도에서, 교실에서, 집 앞에서
너무 많이 마주칠 때마다
나를 완전히 잊은 듯한 너의 모습에
속상했어.
지금에서야 깨닫지만 내가 너무 힘들어서
너를 이상화하며 그냥 보내지 못했나 봐.
마지막으로 이제 다시는 못 보니까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정말이지 앞서 말한 이 모든 내용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지만 너에겐 이 모든 게 기억도 안 나는 스쳐가는 일 일까봐
지금 상황에선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어.
내가 너를 바라보면서
네가 나와 매우 닮았다고 착각했지만
너 덕분에 순간순간 행복한 추억이 생겼어.
절대 평가하려는 의도 없이, 너에게
성격이 정말 좋고 멋진 사람이라는 말을 아주 예전부터 꼭 전해주고 싶었어.
진심으로 고맙고 또 2년 동안 정말 수고했고
미국에서 앞으로 하는 일 다 잘 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