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스무살이야
지금은 12월 30일에서 31일이 되는 자정이다.
방금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친했던 친구, H와 7-8시간쯤 같이 있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다.
H와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다.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고 심지어 고등학교는 다른 대륙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스무 살이 되는 지금까지도
H와 나는 우정의 영원을 약속하는 사이다.
H를 만나면 초등학교 때 같이 만들었던 추억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H의 반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애들이 H를 부를 정도로 나와 H는 모두가 아는 베프였다.
'베프'라는 말이 우리의 우정을 한 순간에 진부하고 일반적인 관계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우리만의 유치하지만 낭만적인 서사가 쌓여있다.
초등학생 때는 다른 반임에도 불구하고 학원 등을 같이 다니며 일주일 내내 만났었던 기억이 있다.
랜덤으로 정해지는 중학교 배정에 내가 다른 중학교에 배정된 뒤에도
우리는 장기 봉사활동을 같이 하며 거의 매주 만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연인처럼 생일은 물론 매년 크리스마스 때도 만났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부모님 주재원으로 내가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사실을 어느 겨울날 저녁에 갑자기 H한테 통보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내가 H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축하해야 할 일이면서도, 분명 서운함과 당혹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함께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나조차도 유학을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아
H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통보했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갑작스럽고 짧은 마지막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독일로 떠났고 H는 한국에 남았다.
유학을 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인연들이 너무 소중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젠, 어떤 관계는 자주 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지금 우리가 그때의 우리를 돌아볼 때면 항상
어쩌면 인생에서 서로를 너무 일찍 만났나 봐 한다.
멋도 모르던 초등학생 때 서로를 만나서
함께할 시간을 다 쓰고,
막상 힘든 시기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우리 사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때가 있으니 지금이 있겠다 싶다.
H를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미래에 대한 말이다.
옛이야기를 추억하는 말도 한다.
미래에 대한 말을 할 땐 희망이 싣고
옛이야기를 추억할 땐 옛날 행복했던 그때 기억이 떠올라
헤어질 때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작용을 한다.
이건 독일에 다시 돌아가서도 잊지 않아야겠다.
현실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생각해야겠다.
응원하는 우리를 생각해야겠다.
오늘 H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 나는
우리가 벌써 9년 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6개월 후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를 사야겠다.
그리고 매년 기념해야겠다.
우리가 항상 말했던 각자의 결혼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