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우주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인생에는 예술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인간의 본성인지, 내 천성인진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종종 예술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글, 그림, 음악 등 예술의 어떤 형태이든
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고, 예술로 승화해서
팽창하는 내 소우주를 방치하지 않고 알아주는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기획'을 사랑하는 천성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잘 '기획'된 것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것은 전시회든, 인터뷰집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음악 앨범의 기획성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묶이고,
앨범 커버와 실물 앨범, 뮤직비디오, 곡 소개글까지 하나의 세계처럼 기획되는 방식이 좋았다.
내가 아티스트이면 내 삶의 이야기도 앨범으로 잘 기획해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데
나는 그냥 일반인 1이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아쉽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음악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 만 18살이고, 아직 삶의 초입에 서 있다.
공부를 계속해왔다는 이유로 느끼는 일시적인 권태 속에서
내가 잘 모르는 세계를 쉽게 낭만화하고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건, 내 삶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생기는 철학 또는 단상을 예술로 전달하는 행위가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 아닐까.
나는 하루 종일 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이야기와 연출을 분석해서 의미를 창출하고 남과 삶과 철학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가 예술가*가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등학생으로서 입시 생활을 하면서 공부 하나에 집중해야 해서 문화생활을 많이 못 하고 있는 것에 한이 맺힐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더 이상 아니다. 싱가포르 대학으로 유학을 가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유학을 하기에 난 제대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고, 외국인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성공뿐만 아니라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한계로 몰아붙여야 하는지 안다. 그런데 내가 그걸 할 용기가 있는가.
*예술가: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그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예. 작가)
**성공: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명성이 있는 직업을 가진 안정적이고 행복한 상태
지금까지도 아슬아슬했는데 내가 마음을 계속 다잡고 혼자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취업시장으로 모든 걸 또 온전히 혼자 알아내면서 문화도 언어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는가?
예술가라도 다를까. 내가 정말 예술을 그 정도로 하고 싶은 게 맞을까. 그 길을 걷는다면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안정을 줄 것인가.
정말 모르겠다. 이게 인생인 걸까.
경제적 자유와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이 욕구는 잊힐까.
매번 마음을 다 잡아도, 어느 형태의 예술이나 기획에 꽂히면 다시 이 모든 생각을 처음부터 한다.
가장 세속적인, 그러니까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해진 대학 공부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삶을 선택해도 나는 내 인생에서 마슬로의 욕구 이론에 나오는 '자아실현'을 이룰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아실현의 길을 터놓고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는 비록 사회에서 소수에 속하지만, 그 누구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각자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을 것이고 예술을 굳이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신의 그 소우주를 어떠한 길로든 표현하는 행위를 삶의 태도로 두는 그 과정이 결국 마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