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소통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영화 속 언어학자는 어느 날 지구 12군데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외계 생물체와의 소통·교감을 위해 그들의 언어를 분석한다. 그들의 언어는 표의문자로 소리와 무관하다. 문자는 모두 원형이다. 앞과 뒤, 순서가 없는 원은 시간 감각(시제)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목적론과 유사하다. 결과에 닿는데 가장 적은 작용량이 필요한 경로, 즉 가장 효율적인 경료가 실제 경로가 된다는 양자역학 체계와 같은 답을 주지만 다른 해석인 해밀턴 역학(페르마의 원리)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과거·현재·미래를 다 통견하며 산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 언어학자는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고 결국 '미래를 기억하다'의 문장이 성립된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컨택트(arrival)를 봤다.
다른 우주 영화 콘택트(contact)를 착각하고 30분 째보다가 다른 영화라는 걸 깨달은 후에서야 볼 수 있었다ㅎ
생각보다 우주생리학적인 부분보단 주인공인 언어학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골자로 영화가 흘러가
'인간이 결국 어떻게 그들의 언어를 학습했는지', '언어가 아닌 다른 측면에서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딸에 대한 서사가 있었기에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만큼 감동을 주고 영화의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외계 생물 — 영화에선 헵타포드라고 부른다 —을 보러 그들의 타원형 우주선에 들어가 그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은 정말 경외감이 들었고 광활하고 웅장한 것을 울림 있게 소개하는 영화 듄(DUNE)의 연출을 연상시켰다.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
영화에서 성립하는 미래를 기억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리적으론 사실 '현재'만 존재한다. 과거는 없고 미래도 없다. 과거는 기억이다. 미래는 예측이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페르마의 원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로에선 적용될 수 있지만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인 생명체와 자아를 가지고 매 순간 결정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도 과연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신기한 것은 우리 삶이 사실 전부 기억이라는 것이다. 내가 주방에서 컵을 들어 계단을 올라와 내 방 책상에 컵을 올려놓았다고 했을 때 컵이 내 방 책상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컵을 옮긴 것은 내 기억(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나'라는 사람 자체도 내 정신·기억뿐이다. 내가 현재 2023년 11월 14일 오후 1시까지 살아온 기억 중, 2020년 11월 14일 오후 1시까지 살아온 기억만 남겨둔다고 할 때 더 이상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고유의 나는 2023년 11월 14일 오후 1시까지의 기억과 경험과 감정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3년의 기억을 지운다면 외모는 같을지언정 더 이상 고유의 나는 없다. 사실 이 생각은 약 8개월 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굿 플레이스를 볼 때 생각했었던 주제이다.
사피아-워프 가설 (linguistic relativity)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고 언어는 의사전달이나 사고의 반영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우연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사실인즉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 (...) 우리의 공동체의 언어습관이 해석에 대한 어떤 선택의 경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처럼 주로 보고 듣고 아니면 경험을 한다.”
— 에드워드 사피어, 언어(1929, p207)
사피아 워프 가설은 언어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폭을 결정하고 사고에 영향을 끼치며
언어가 단순히 기존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인지 과정을 능동적으로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가설을 듣자마자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1984가 떠올랐다.
1984,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단일당인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많은 통제 방법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신어(Newspeak)이다.
영사 — 소설 속 디스토피안 사회 — 는 더 이상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 대신에 신어를 사용하는데
지속적으로 개정되는 신어는 빅 브라더 사상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단어·뜻들을 줄인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생각의 폭이 줄여지고 자율성이 억압되어 거대 권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어진다.
"Don’t you see that the whole aim of Newspeak is to narrow the range of thought? In the end, we shall make thoughtcrime literally impossible because there will be no words in which to express it." — Syme in chapter 5, <1984>
이처럼 언어가 사고를 규정짓는다는 게 일부분 맞을 수도 있다.
문화나 삶의 방식이 언어에 반영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기 전에 언어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실에 규정짓는 것.
표현의 자유 전 언어의 막대한 영향에 대한 개념이 신기하다…
그럼 다시 사피아 워프 가설로 돌아가면
다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온전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독일어나 공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