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사적인 기록장의 필요성

by Sue

염세적 낭만주의로 살다 보면 사적인 기록장이 필요하다.


일기장을 처음 쓰게 된 건 5학년이었다. 12살짜리 꼬마가 무슨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다면 정확하다. 그 당시 일기는 지금 내가 쓰는 일기와는 확연히 다르고 자신의 감정이나 그날 있었던 사건 등을 잘 표현하기는커녕 맞춤법부터가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의 내가 남긴 기록은 너무나 소중하다. 5학년일 때면 몰라도 점점 나이가 들수록 휘발되는 순간의 감정을 그 당시의 내가 기록한 문장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나를 더욱더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일기장이 아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8살부터였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게 내 안에 있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형용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행위로 내 생각이 ‘그저 쓸데없는 하찮은 생각’이 아니라 ‘언젠가 내가 다시 읽게 될 누군가에게 읽힐’ 글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되어서 쓰는 행위 자체로 내 생각을 제3의 입장을 조금 빌려서 인식하게 되니까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결국 읽고, 보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는 기록이 가진 힘에 대해 믿게 되었다.

기록은 휘발하는 생각을 담아 둘 수 있는 것.

글을 쓰는 지금의 나와 그 글을 다시 읽을 언젠가의 나를 잇는 것.


생각의 정리와 위로의 역할을 하는 이 브런치북은 내 사적인 기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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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