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한 해를 되돌아보며...

by Sue

어렸을 적엔 한 학년 올라가는 설렘, 가족들과 자기 직전까지 연예계 시상식을 볼 기대감 등으로 가득 찼었던 때가 이젠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다음 연도를 지친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다.


2025년을 되돌아보면, 안쓰러움과 동시에 잘 버텨준 내가 너무 대견하다. 길지 않은 18년 인생이지만 올해가 가장 힘든 한 해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5월 한 달 내내 이어진 모의고사가 끝나자마자 물리 실험 보고서와 경제 소논문 같은 과제들이 몰려왔고, 그 부담을 한 달 내내 감내했던 6월이 당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12학년은 개학하자마자 방학에 들어갈 때까지 거의 같은 강도의 일정이 이어졌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그냥 고통에 익숙해지듯이 지내다 보니 결국 시련은 그게 아니라 다른 거였다는 듯이 10월부터 11월까지 몰아친 감정과 생각들이 결국 올해 가장 힘든 시기로 남았다. 마지막 12월에는 한국으로 출국하는 날 하루 전에 갑자기 심한 독감에 걸렸고 혼자 약 먹고 열을 내려가며 집을 정리하고 짐을 싸고 새벽에 잠들어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향했다. 일주일 조금 넘게 아팠던 독감이었고 코로나 이후로 가장 아팠던 것 같다.



12학년이 되자 저녁에 공부할때면 뭔가 울고 싶다는 감정을 자주 느꼈었다. 슬프거나 우울해서가 아니라, 내 원룸 침대 위에 앉아서 과제를 하고 있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하는 내 모습이 기특함과 동시에 너무 안쓰러워서이다. 특히 언니가 대학에 간 뒤로,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내 주변에 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나는, 인생엔 노력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결과와 가끔씩 그걸 능가하는 행운과 조금 갉아먹는 불운이 따라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2025년의 나는 자취를 시작하며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창 시절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다음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시야가 넓어지자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엔 양옆에 보이는 게 많아졌다. 두 다리를 멈추지 않고서 둘러본 주위는 낯설었고 낙천적이었던 내가 기억하던 풍경이 아니었기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생각보다 큰 무게로 다가왔다. 대학 생활이 마냥 기대되기 보다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더욱 더 박차를 가해야하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니,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끝나지 않을 경주에 미리 겁먹고 지쳐버렸다. 그래서 서러운 감정을 빨리 울어서 털어버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생각의 파동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믿음의 기둥 여러 개가 흔들리다 바닥으로 꺼졌고, 그 부재로 쏟아져내리는 마음의 지붕을 일시적인 자기 합리화로 지탱하려니 쉽지 않았다. 얼른 굳건한 믿음을 만들어야 했지만, 잠시 유체이탈을 하듯 내 인생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현생의 책임감들을 일시 정지하고 새로운 믿음을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릴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믿고 있던 나를 배신하고 사라져 버린 그 믿음의 기둥들은 내 미래에 대한 믿음들이었다.


영어 자체만 따라가기에도 벅차서 영어 실력을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늘리고자 열심히였던 8학년의 나는 졸업만 해도 무사하다고 생각했고 그 노력을 세상이 알아줄 거라고 마음이 아플 만큼 순수하게 믿었다. 하지만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에 따라 자동으로 주어지는 대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무렵 나는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줄 알았고 이젠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게 목표인 9학년이었다. 그래, 이 노력을 성적, 즉 final IB 점수로 증명해야겠다 마음먹은 10학년의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각 대학마다 요구하는 지원과정을 놓치지 않고 전략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열심히 했든,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었든 간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 11학년의 나는 혼자서 내가 목표한 대학을 리스트업 하고 각 대학마다 요구하는 것들과 지원시기, 인재상 등을 체크해서 틈틈이 그에 맞는 활동들을 하고 성적을 맞추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1학년이 끝나갈 쯤엔 44/45점이라는 점수를 얻게 되었다.


성적이 중요한 대학이었던 터라 안도가 되었다. 하지만 12학년이 되자 이때까지는 한 번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12학년이 되어 온전히 혼자 살게 되어 그런지, 이제 졸업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현실적인 졸업 후의 삶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 이미 원하는 대학과 전공 둘 다 생각해 놓은 상태였지만 갑자기 내 머릿속을 종처럼 울린 건 '내가 유학을 계속하고 싶은가'였다.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해야지,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가늠하지 못했던 것은 유학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좋은 취업을 위해 유학을 한다고 한다면, 나는 4-5년 동안 미뤄놓았던 것들을 또 4-7년 뒤로 미뤄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또 7년을 공부하고 일하며 내가 미뤄놨던 것들을 미뤄놓으면 이게 끝나기는 할까? 미래를 위해 현재 참는걸 끝 없이 참는건 아닐까? 20대도 훅 가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미뤄왔던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 정말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에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좋은 취업 기회가 있는 유학을 포기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딜 가든 힘들다면 내 땅에, 내 가족이 있는 그 땅에서 힘들고 싶다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이 고민을 하게 된 이유도 전 세계적으로 취업난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유학생들이 비싼 유학비를 내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수없이 목격한 뒤론 유학과 취업의 상관관계에 회의감이 생겼다. 취업을 어디서든 하지 못한다면 그 고난한 취업난을 마주할 때, 또는 그때까지의 내 삶이, 등굣길에서 봄엔 벚꽃이 흩날리고 가을엔 단풍길이 보이는 한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그것만은 또 아니다. 이 글은 이에 대해 논의하기엔 적합하지 않으니 이번 연말은 졸업 후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가족들과 함으로써 굳건한 믿음을 하나씩 쌓아 올리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 짓겠다.



비록 슬픈 새벽에 글을 쓰게 되는 것처럼 글을 쓸때면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가 적히지만, 올 한 해를 가만히 돌아보면 서러운 일만큼이나 행복하고 기쁜 순간들도 분명히 많았다. 올해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학교엔 날 믿어주는 선생님들과 사랑스런 친구들이 있었고, 비록 내 깊은 고민까지 털어놓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상대는 없었지만 이유 없이 힘들다고 해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위로해 줄 친구는 즐비했다. 적어도 나름의 방식으로는 재미있고, 또 평화롭게 보낸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는 내 삶에 대해서만 고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유학 온 뒤로 생긴 버릇인데, 슬프거나 서러운 일이 있으면, 이보다 더한 상황에 처한 이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유학 생활 속에서 인맥이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아무것도 기대어볼 연줄조차 없이 홀로 버텨야 하는 이들을 떠올리고, 혼자 자취하며 감당해야 할 것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선택의 여지조차 없이 더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제 2025년과 함께 나의 세상에서 한국나이 열아홉이 저물어간다. 나는 이렇게 내면이 요동치는 경험을 삶의 외형이 비교적 안정된 시기에 겪을 수 있었음에 오히려 감사해진다. 앞으로의 삶에서 올해 2025년 애증의 해로 남겠지만 나는 나의 남은 삶을 유연한 태도로 대하는데에 조금 감이 잡힌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19살에게, 수고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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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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