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진처럼

by 우럭

며칠 전, 부모님과 함께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 다녀왔다.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삼보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매우 크고, 유서 깊은 절이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자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는 절이라는 공간이 지루하고 따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고요하고 아늑한 절의 분위기가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주는 안식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래 이번 주에는 '기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이었지만, 송광사를 다녀온 후부터 '절제'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자꾸 맴돌았다. 그래서 이번엔, 절제라는 키워드로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살다 보면 절제가 필요한 순간이 정말 많다. 건강을 위해 참고 있는 식욕, 계획했던 일을 미루고 싶은 유혹, 감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 감정에 휘말리는 습관,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질적 욕망까지. 이 중 몇 가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내가 요즘 특히 절제하고 싶은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1. 생각을 절제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사고는 인간은 발전을 이끌었고, 우리는 생각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설계한다. 그런데 때로는, 생각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순간이 있다. 하나의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낳고, 그 걱정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루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또한 생각이 많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시선뿐 아니라, 타인의 평가, 비교, 눈치를 필요이상으로 신경 쓰게 된다. 심지어 나와 가까운 이들까지 비교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괜한 열등감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최근에 나는 '쉬는 것'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제대로 쉬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쉬고 싶다는 마음과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양각에서 나를 괴롭혔다. '잘 쉬어야 해'라는 생각이 집착으로 변했고, '그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는 불안과 충돌하며 결국 쉬지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원만 소비되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럴 때는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는데 꽤 유명한 주문이다.


프로그래밍에는 계층적 사고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계층에서 모든 걸 다 처리하기보다, 지금 내가 맡은 계층의 일에 집중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단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생각을 절제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2. 감각과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감각적 쾌락과 물질에 대한 욕망은 솔직히 내가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적당한 욕망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 욕망이 어느 순간 나를 조종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욕망이라는 가속 페달을 내가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다이나믹듀오의 노래 가사처럼 나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이 되고, 나도 모르게 주변사람들 까지 사건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


주식을 시작한 지 1년이 살짝 안됐다. 주식을 시작하고 느꼈던 경험도 이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 있지만, 조금 수익이 생기자 더 높은 수익을 기대했고, 욕심은 점차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더 높은 수익률을 보면 질투심이기 나기도 했다. 절제하지 못한 순간들이 쌓이면 욕망은 피로가 되고, 피로는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이런 욕망을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가끔 의도적으로 멈춰서 지금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려 한다. 절제는 매번 성공하는 게 아니라, 매번 다짐하고 시도하는 반복이라 생각한다.


3. 말과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생각과 욕망의 절제가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말과 감정의 절제는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이다. 감정에 휘말려 말을 내뱉고 나서 뒤늦게 후회했던 순간이 나는 꽤 많다. 그 순간에 후련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체하게 만든다. 특히 감정에 휘둘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뱉은 경우는 상대방뿐 아니라 내게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글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인터넷상의 마녀재판과 수많은 누리꾼들의 악플 역시, 절제하지 못한 감정이 자판을 통해 퍼져나간 결과다. 개인적으로 말과 감정의 절제는 생각이나 욕망의 절제에 비해 조금은 수월한 편이라고 느낀다. 처음엔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삼켜야 하는 것을 몇 번 삼키고 나면 다음엔 더 참을 수 있게 된다.


최근 여행 중, 부모님께 사소한 짜증을 낸 적이 있다. 크게 다툰 것도 아닌데 지금 돌아보면 괜히 후회가 된다. 그냥 흘려보내도 될 말을 굳이 붙잡아 꺼낸 내가 아쉬웠다. 앞으로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 전에 한 번쯤, 숨을 고르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4. 진처럼

'절제'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롤 챔피언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 중 하나인 '진'이다. 진은 멀리서 적을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딜처럼 무한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총은 네 발로 제한돼 있고, 네 발을 모두 소진하면 꽤 긴 재장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의 한 발, 한 발은 훨씬 강력하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쏴야 한다. 한순간의 무리한 욕심은 포지션을 망치고, 필요한 한 발을 쏠 수 없게 만든다.


진은 늘 절제하면 싸운다. 기회를 기다리고, 알맞은 순간에 정확히 쏘고, 탄이 다 떨어지면 잠시 포지션을 재정비하면 숨을 고른다. 그런 진의 모습에서 내가 닮고 싶은 절제의 태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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