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코로나로 회사 들어가는 문턱은 더 좁아만 가고, 좋은 회사에서 인턴십을 했으니 이제 다음 취업을 위해 전진! 하면 되는 타이밍에 나는 잠시 스탑을 외췄다.
다음 여정을 가려면 나침반이 필요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발적 백수로 지내며 나침반을 찾으러 떠나겠다고 결정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나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그런 변화를 감당하면서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싶은 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퇴사 후 눈앞이 메마른 사막이라면 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목도 축이고, 밤에는 별도 보고, 그 황량함 속에서 끈끈한 나의 생명력을 꽃피워보겠다는 패기와 함께. 먹고사는 게 시급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고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맞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느려도 구도자의 삶을 선택했다.
시간 부자가 되면서 일단 최대한 열심히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쉬면서 느낀 나는 최선의 기준이 높은 사람이기에 힘을 빼도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그런데 주어진 에너지 총량이 내가 쓰고 싶은 양보다 적기 때문에 무리하면 바로 몸에서 티가 난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 하는 느낌이 좋아 쉬는 동안에도 영어공부와 책은 계속 놓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마저도 내려놓았다. 최근에 무리할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나를 조금 다그치며 일을 했더니 크게 아팠기 때문이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고 장염이었는데 강제로 쉬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좋아서, 이 정도는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고 붙잡고 있던 것도 내려놓자 한편으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리하지 말자면서 또 무리하고 있었구나. 이제 좀 쉬엄쉬엄 살자!
아프기 전 책 <모모>를 읽었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서재에 꽂혀있었는데 쉬는 동안 꼭 다시 읽고 싶었다. 그땐 모모가 말하는 시간의 비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모모를 만날 때가 온 것이다.
모두가 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무도 너를 지켜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돈만이 너를 지켜줄 수 있다고, 그러니 더 치열히 경쟁하며 무슨 수를 써서든 위로 올라가라고 말하는 사회. 나는 그 곳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그건 모모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런 건 재주라고 할 수 없어. 부자가 되려면 모름지기 재주가 있어야지. 모모. 약간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인생과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보렴! 아니, 난 그렇게는 안 하겠어. 커피 한 잔 값 치를 돈이 없다 해도, 기기는 기기인 거야!"
"하지만 꿈도 없이 가난하다는 것... 아니, 모모. 그건 지옥이야. 그래서 나는 차라리 지금 그대로 머물고 있는 거야. 이것 역시 지옥이지만, 적어도 편안한 지옥이거든... 아,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물론 너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를 거다."
모모는 그냥 말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모모는 무엇보다 기기가 아프다는 것, 죽도록 아프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가,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그래도 하겠니?"
"부탁이야. 좀 더 빨리 걸으면 안 될까?"
거북은 대답했다.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모모>를 읽으며 내 마음에 깊이 와닿은 문구들이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아껴야 한다. 나 역시 생산성을 내지 않으면 어딘가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편했다. 그런데 쉬면서 지난 시간들 중 대부분 내가 무용하게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바빴던 기억들보다 웃고 울며 존재했던 시간들이 나를 살아있게 했다.
시간에 인색해지며 점점 삶의 색깔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모를 닮고 싶다.
사막 속에서 최근 발견한 게 있다면, 마케팅에 대한 열정이 다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중에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브랜드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련 콘텐츠들을 기획하는 일을 좋아한다.
내 개인은 SNS와 친하지도 않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성향도 아니나 그래서 더 도전을 주고 배움이 된다. 이런 마음이 든 걸 보니 제법 마케터로의 자아가 회복되었구나...! 한편으론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뛴다. 아직 명확히 보이진 않지만 '경계를 넘어 소통하고 연결하는 사람', 그것이 내가 가진 꿈 중 하나이다. 그것이 내가 평화활동과 마케팅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브런치에 글을 쓰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