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짓는사람 Apr 30. 2023

작은 집이라는 한계가 가진 힘.

취향의 단순화

여섯 평 짜리 바퀴 달린 작은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후, 나는 매일매일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했다. 구글과 유튜브에 ‘tiny house’를 검색해서 수도 없이 많은 사진과 영상을 봤다. 구조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꿔보다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공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작업실. 나는 집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하기 때문에 거실과 분리된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했다. 사실 복층을 제외한 여섯 평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별도의 방을 하나 나누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리가 되어있지 않은 원룸 같은 공간에서는 휴식과 일이 한 데 섞여서 이도 저도 안된다는 것을 이미 몸소 느껴봤기 때문에  아주 작은 방이라도 따로 설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거실과 화장실을 조금 줄이고, 작지만 책상이 딱 들어가는 아늑한 작업실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두 번째는 벽난로. 

벽난로를 설치할 집이 필요해서 집을 지었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나에게 벽난로는 1순위, 무조건이었다. 굳이 작은 집에 벽난로를 해야 하냐, 과하다, 먼지 많이 난다, 위험하다 등등 온갖 걱정과 만류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이 한결같은 고집이었다. 사계절 중 유난히 겨울을 좋아하는 데다가 벽난로 소리는 수시로 찾아 들을 정도였기 때문에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문제들도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나는 이 집을 겨울 숲 속 오두막 컨셉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벽난로는 더더욱 필수적이었다. 벽난로 없는 오두막은 상상만 해도 재미없고 허전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 집의 스펙에 비하면 굉장히 비싼(?) 벽난로를 한 달 전부터 주문하고는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세 번째는 돌출된 창, 다른 말로 윈도시트. 

어릴 때부터 텐트나 이불, 장롱 등 내 몸이 꽉 차게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좌식으로 아늑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을 좋아해서 이전 집에서는 기어이 방에 평상을 들였었다. 이런 취향의 연장선이었을까? 늘 윈도시트가 있는 집을 꿈꿨는데 어쩌다 보니 바퀴가 달린 집을 짓게 되었고, 바퀴 달린 집에는 구조상 큰 무리 없이 실현 가능해서 설계에 넣게 되었다. 창 앞에 쏙 들어가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풍경을 보며 멍 때릴 생각을 하면 그냥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물론 이 공간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공정이 추가되었지만 그 수고로움은 행복감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즉, 이 세 가지 로망은 모든 것을 빼고 빼서 남은 나의 최종적 취향이었다. 집이 넓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세 가지로 줄일 수 있었을까? 아니, 줄일 필요가 있었을까? 


집을 짓고 싶긴 했어도 작은 집을 짓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집을 짓기 전에는 작은 집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저 금전적인 이유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해지자면, 작은 집이 조금은 궁색맞고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작은 집을 짓지만 10년쯤 후에는 멋지게 성공해서 방이 네다섯 개 있는 넓은 집을 짓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작은 집이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많았다. 작은 집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은 것이다.


작은 집은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두어서 결국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것만이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가 지은 이 집에는 작지만 책상 옆에 큰 창이 있어 답답하지 않은 독립된 작업실이 있고, 벽난로 ASMR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벽난로가 있고, 한참을 앉아서 멍 때리게 되는 윈도시트도 있다. 나는 이것이면 족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실현되니 이상하게, 괜찮은 걸 넘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이 단출한 여섯 평의 집과 세 가지의 취향이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하다니. 

그토록 멀고도 어려웠던 행복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싶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왜 나는 행복했을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을까.


어쩌면 반 강제적으로 시작한 단순화의 과정은 취향은 물론이고 삶의 온갖 데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잔여물들 또한 말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의 본질에 가까운 것들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그래서 나는 그 선명한 것들 몇 개만 꽉 쥐고 집을 지었고,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 눈앞에 실현시켰다. 이것을 행복이 아니면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은 집이라는 한계가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든 셈이었다. 


나는, 다음 집도 작은 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작가의 이전글 고향이 없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